“제 일상에 애정을 갖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에요”

무수히 많은 슬픔 중에는 언젠가 잊어버리게 될 것도 있겠고, 어떻게 해봐도 절대 잊지 못할 것도 있을 것이고, 그 슬픔의 맥락이라는 것도 날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변할 수도 있는 것이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 모든 것은 수수께끼를 향해서… 중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이거 힐링책 아닙니다. 멘토책도 아니고요. 그냥 화장실에서 읽기 좋은 수필이에요. 호흡이 길지 않아서 변비 걸릴 일도 없어요. 참, 이 책 원제는 ‘인생이 준비하는 것들’이에요. 한국판에서는 ‘준비’를 ‘알려준’으로 수정했는데 다들 제가 지은 제목인 줄 아시더라고요”
호탕한 웃음이 매력적인 방송인 정선희가 ‘인생이 알려준 것들’이라는 책을 통해 번역에 도전했다.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문장력을 인정받은 가와카미 미에코의 에세이를 번역한 만큼 정선희는 출간된 책을 보며 아쉬움과 후련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번역하는 동안 신경 써서 그런지 흰머리가 엄청나게 나더라고요. 역시 머리를 많이 쓰면 흰머리가 난다더니 사실인가 봐요. 번역은 이전에 일본어 실용서랑 교재를 만들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일본에서 문학상까지 탄 작가의 에세이를 괜히 내가 망치면 어떡하나 걱정도 컸고요. 하지만 번역하면서 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됐어요. 어찌나 고맙던지”
정선희가 번역에 도전한 건 우연찮은 계기였다. 일본문학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워진 출판사의 권유에서였다. 한사코 제안을 거절하던 정선희는 이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에 매력을 느껴 번역을 맡았다는 후문이다. 정선희는 “이 작가는 인생의 우여곡절이나 시련까지 여러 면에서 나랑 너무 비슷했다”며 “그래서 더 코드가 잘 맞은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스무 살 무렵부터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정선희지만 일본 특유의 문장을 우리식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녹녹치 않았다. 글이 풀리지 않아 몇날 며칠을 전전긍긍하다가도 갑자기 답답함이 사라지는 희열을 느끼기도 여러 차례. 그렇게 켜켜이 쌓인 문장들 사이로 가와카미 미에코와 정선희는 얽혀 녹아갔다. 글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는 정선희 특유의 개그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정선희는 “번역은 정말 뇌를 조금씩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작업이에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된 내용 중에서도 정선희가 유독 아끼는 글은‘라즈노그라시의 놀이’라는 이야기다. 심리적인 ‘극복’에 대해 냉철하게 꼬집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정선희는 “극복이라는 게 자신보다 사회적 인식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가 그랬거든요. 나한테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억울했어요. 근데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깐 점점 내 자신이 작아지고 초라해보였어요. 숨고만 싶었죠. 하지만 이 이야기를 번역하면서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용서하자고 결심한 내 마음이 떠올랐고, 나아가서는 심리적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이번 작품이 번역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써니사이드’라는 이름의 정선희 번역 팬클럽도 생겼다. ‘다음 번역을 기대 할게요’라는 팬레터와 선물에 부담감이 느껴지지만 그 관심조차 즐겁다는 정선희.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전해준 그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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