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해 런던올림픽 4강을 이끌었던 세계적 거포 김연경이 2년째 FA(자유계약)를 놓고 흥국생명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선수생명을 걸고 최후통첩을 날려 일명 ‘김연경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김연경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흥국생명, 대한배구협회(KVA), 한국배구연맹(KOVO)을 향해 강스파이크를 날렸다. FA논란에 대한 질의서와 이의신청에 대한 공식 답변이 25일까지 없을 경우 한국 프로배구 활동은 물론 국가대표 은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김연경은 국가대표 은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이번 사태 해결의 절박함을 드러냈지만 어느 쪽도 한발 물러서지 않고 서로 억울함만을 강조하고 있어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질의서에 대한 부분은 이사회를 거쳐 판단한 후 답변을 줄 예정”이라며 “기자회견이 없었어도 이뤄졌을 절차”라고 밝혔다. 다만 협회 측에서 김연경의 주장을 인정하고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해 주기는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연맹 측도 “입장변화가 있었다면 진즉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할 뜻을 내비쳤다.
쟁점의 한 축인 흥국생명 역시 기본의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구단 측은 “김연경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다면 언제든 해외로 보내주겠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우선 임대기간이 FA조건에 포함되는 지 여부다. KOVO규정에 따르면 FA신분을 획득하려면 원소속팀에서 6시즌 동안 활동해야 한다. 김연경은 흥국생명에서 4시즌을 뛴 후 일본(2시즌)과 터키(2시즌)에서 임대로 4시즌을 더 뛰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은 임대기간은 FA신분을 따지는데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김연경은 임대기간 역시 FA기간에 포함된다고 맞서고 있다. 국제배구연맹(FIVB)에서는 김연경이 흥국생명 소속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 하나는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계약 만료 여부다. KOVO규정에 따르면 “드래프트에 의해 지명된 선수의 계약기간은 드래프트 연도를 기준으로 1차 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는 5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김연경 측은 이를 근거로 지난해 6월 30일 계약이 만료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흥국생명은 FA자격 불충분을 이유로 여전히 김연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또 은퇴 후 해외진출을 노릴 수도 있지만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은퇴동의서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는 FIVB의 계약기간 중인 구단 즉 원소속 구단(Club of Origin)에 대한 문제로 직결된다. 원소속 구단은 새로운 구단과 선수의 이적을 놓고 협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 측은 김연경이 아직 FA신분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소속 구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연경 측은 흥국생명과의 계약기간이 이미 만료됐기 때문에 흥국생명은 김연경 이적에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은 평행선을 그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임의탈퇴로 압박하면서 해외활동 보장을 위한 조건으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내걸어 선수의 자존심을 건드린 상태다. KVA와 KOVO도 선수에게 다소 불리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악법도 법’이라며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김연경 역시 국가대표 은퇴라는 초강수을 두면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가 법정싸움으로 확대될 경우 한두 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최악의 경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김연경은 코트에 서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레프트’로 평가받는 김연경이 코트가 아닌 법정에 들락거리는 모습은 팬들도 배구계도 바라지 않는 바이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김연경 선수뿐만 아니라 배구계의 피해가 커지는 만큼 양측 모두 감정싸움은 중단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해결을 위한 양보를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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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