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배운 것,받았던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산악인 엄홍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산처럼 우직한 그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미 알려진 대로 엄홍길은 아시아 최초로, 인류 역사상 8번째로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 고봉을 등정했다. 이어 8천미터급 알룽캉과 로체샤르까지 완등해 세계 최초로 16좌 등정에 성공한 사나이로 이름을 남겼다. 그렇게 도전의 삶을 이어갔던 엄홍길 대장. 이제는 휴머니즘과 자연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약 히말라야가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정말 기적 같은 순간들이 많습니다. 매 순간 산에게 16좌의 꿈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로써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산에 되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엄 대장은 2007년 로체사르(8400m)를 끝으로 16좌 등정을 완성했다. 이후 그는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에서 배운 산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특히 엄 대장은 재단 활동 중에서도 교육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극한의 오지에 삶의 터전을 내리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그는 아이들이 부모의 가난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 기초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먼재단의 첫 활동으로 네팔에 학교를 짓기로 결정했고, 2010년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네팔 팡보체 마을에 첫 번째 휴먼스쿨을 완공했다. 이어 타르푸, 룸비니, 카스키 지역에 4개의 휴먼스쿨이 준공됐다. 2014년까지 세 곳의 학교가 더 문을 열 예정이다. 엄 대장은 “학교들은 각 지역마다의 기후와 지형적 특색에 맞게 건축됐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휴먼재단 측은 16좌 성공의 의미를 담아 총 16개의 학교를 건립할 계획이다.
엄 대장은 1988년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서 이후 20년 간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총 38번의 두드림 끝에 얻은 16번의 값진 성공. 그 과정에서 그는 10명이나 되는 동료를 잃어야만 했다. 자신도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게 수차례였다. 1997년에는 7000m에서 추락해 다리가 180도 돌아갔다. 이후 다시는 등산하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도 재활을 마치고 안나푸르나I(8091m) 등정에 성공했다. 멀쩡했던 몸으로도 4번이나 실패했던 곳이었다. 2000년 칸첸중가(8585m)에서는 로프에만 의지한 채 10시간을 절벽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엄 대장 스스로도 “살아남은 게 정말 기적”이라며 “산이 살려줬기에 더더욱 받은 것들을 되갚아야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신체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엄 대장에게는 ‘선구자’로서의 어려움도 컸다. 히말라야에 대한 인식도 관심도 희박하던 시절 원정경비를 마련하는 일부터 길을 개척하는 일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지금은 등정장비, 통신, 수송도구 등 모든 것이 발달했습니다. 산을 다녀오지 않아도 갔다 왔을 정도로 정보 수집도 가능합니다. 제가 등정을 할 당시만 해도 모든 것을 경험에 비추어 몸으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두 발로 걷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체력소모도 크고 등반 날짜도 길어져 사고 위험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성공확률도 낮았고요.”
이런 어려움에도 엄 대장은 ‘대장’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다년간의 경험으로 히말라야 산길을 개척했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히말라야에서 보낸 만큼 그는 최근 무분별하게 생겨난 상업원정대에 쓴 소리를 내뱉었다. 기본적인 체력도, 기술력도 갖추지 않은 사람을 돈만 받고 히말라야로 보내는 상업적 세태를 비난한 것이다.
“히말라야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원정대를 꾸미는 것까지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산을 알기 때문에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비를 합니다. 돈을 내더라도 선발과정부터 까다롭게 진행해 체력, 기술, 정신력을 갖춘 사람을 뽑습니다. 개인적 능력은 되지만 여건이 어려운 이들에게 꿈과 희망, 도전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돈에 눈이 멀어 아이젠 한번 안 신어본 사람들까지 원정대로 선발하는 상업원정대라는 겁니다.”
전문 산악인도 사고에서 예외일 수 없는 히말라야. 엄 대장은 2005년 ‘휴먼원정대’라는 이름으로 유례없는 등정을 시도했다. 고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전례 없는 일에 전 세계는 진한 인간애를 느꼈다. 이 이야기는 오는 9월부터 영화로 제작돼 내년 여름쯤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박 대원과는 4번 정도 함께 등정했었습니다. 2000년 절벽에 함께 매달려 있기도 했고, 2004년 등정 준비도 함께할 만큼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그런 박 대원의 시신이 정상으로 가는 외길에 매달린 채로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정상을 오를 때마다 그를 지나쳐가야만 했기 때문에 휴먼원정대를 꾸리게 됐습니다.”
엄 대장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났다. 그도 상상만 하던 일을 실제로 옮겨야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허리를 다쳐 며칠간 거동도 어려웠지만 그는 악조건을 이겨내고 박 대원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는 “당시 이야기가 영화화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낮아진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등정을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도전하는 건 히말라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저를 뛰어넘는 후배들이 나타나겠지요. 저는 휴먼재단을 통해 산에서 배운 것들을, 산에서 받았던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게 제 목표이자 도전과제입니다.”
앞으로 엄 대장은 휴먼재단을 통해 꾸준히 사회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네팔 아이들에게 ‘엄 사부’로 불리는 엄홍길 대장. 그의 아름다운 도전이 계속되길 바란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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