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며칠 후 A씨는 자신의 직장인 여주의 OO고등학교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자신이 ‘성폭행 미수’이기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요구였다. A씨는 결국 합의를 해주겠다는 학교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10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여기까지 A씨의 주장이다.
학교 측은 경찰 조사를 받는 선생을 학생들 앞에서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직위해제를 했다. 혐의는 주거 침입이다. “교사는 일반인에 비해 도덕적 잣대가 엄격하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 A씨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A씨가 학교 측에 합의를 도와달라고 해 받아들인 것이 전부”라는 것이 OO고등학교의 입장이다.
A교사의 사직을 둘러싸고 A씨와 학교 측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학교 측의 압력으로 인한 강압적 사직인지, 본인 스스로 제출한 자발적 사직인지 [일요서울]이 양 측의 주장을 들어봤다.
-국어교사 “주거침입을 성폭행 미수로… 학교 측이 사직서 제출 요구”
-학교 측 “교사의 윤리, 도덕성 문제로 인해 스스로 나간 것”
“왜 그렇게 교장선생님이 제 사직서를 요구하셨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15년차 교직생활을 이어온 A씨는 지난달 10일 5년 동안 정들었던 OO고등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술에 취해 자신이 저지른 ‘사건’때문이었다. 그날 새벽 만취한 A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경찰서였고 ‘사건’ 당시의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여주경찰서는 남의 방을 침입하려고 시도를 하고 창문을 깬 혐의(주거침입)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여기까지는 A씨와 OO고등학교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해명할 기회도 없이 일사천리 진행
A씨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지 2~3일 후 피해자 B씨와 B씨의 직장인 여주 OO중학교, 그리고 OO고등학교 교장이 자신을 주거침입이 아닌 ‘성폭행 미수범’으로 만들어서 사직서를 요구했다.
“사건 당시 기억은 없지만 제가 잘못한 거죠. 인정합니다. 여선생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런데 OO고등학교와 OO중학교 측에서 성폭행 미수로 사건을 몰아가더라고요. 양측에서 사건을 키웠습니다.”
단순 주거침입이 급작스럽게 성폭행 미수 사건으로 몰리자 A씨는 당황했다. 교사 입장에서 학생들 앞에서 얼굴을 들기 힘들었다.
거기에 OO고등학교 교장은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를 동원했다. 그리고 각각 회의에서 A씨의 해임결의안을 채택했다.
A씨는 이에 대한 해명의 기회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때 교장이 A씨에게 합의를 봐줄 테니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사직서를 냈지만 합의서를 주지 않을 경우를 염려하는 A씨를 교장은 자신이 책임진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사직서를 제출 한 이후 교장은 합의서를 주지 않았다. 결국 A씨는 B씨의 부모 측에 1000만 원을 주고서야 합의서를 받을 수 있었다.
평소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던 A씨가 짐을 싸자 학생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학생들을 위해 애쓰던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다며 학생들 스스로 재단 이사장에게 편지를 썼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우리와 함께 있게 해주세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선생님입니다.’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도 A씨를 위해 펜을 들었다. 모두 합쳐서 백여 장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진심어린 편지도 학교 측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A씨는 “OO고등학교와 OO중학교 측에서 단순 주거침입 사건을 성폭행 미수로 계속 부풀렸다”며 “사직서만 내면 합의를 봐준다고 해서 썼는데 막상 합의를 볼 때 발을 빼더라. 그때 내가 당했구나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교장이 나를 양아치로 보고를 한 것 같다. 단순히 교장의 보고서를 본 재단 측에서는 내가 나쁜 사람이니 아웃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반론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A씨는 지난 5월 학교생활지도우수교사로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1달 뒤 학교에서 쫓겨났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A씨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던 것을 지금 처한 상황의 이유로 꼽았다.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하다 보니 평소에 교장과 마찰이 많았다. 학교논문, 토론대회, 자치법정 등을 주관하면서 학교 현안문제 때문에 많이 부딪쳤다고 한다.
OO고등학교 한 학생은 “A씨는 모두가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라며 “학생들이 선생님을 위해 편지도 썼다”고 말했다.
현재 A씨의 SNS에는 학생들의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많은 분들이 선생님 응원하고 있으니 너무 힘들어 마세요. 사랑합니다.”, “모든 일에 힘내세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모두의 짱짱맨입니다. 힘내세요.”, “선생님 옆에서 힘내라고 말하려고 왔는데 주위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할 틈도 없네요. 선생님은 항상 최고였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A씨는 “내가 교직에 남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라며 “왜 학교 측에서 일을 키운 것 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 사직
그러나 OO고등학교는 이 일에 대해 ‘성폭행 미수’로 언급한 적도 없으며 A씨가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좋게 마무리 된 일’이라고 반박했다.
사회적으로 볼 때는 이번 사건이 ‘단순 주거침입’이지만 학교에서 교육자 입장으로는 가벼운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A씨가 사직서를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OO고등학교에 따르면 A씨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교사의 품위와 도덕성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OO고등학교 교장인 C씨는 “경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사직서를 수리할 수 없다”며 “검찰수사까지 다 끝나야 사직서 처리가 가능한데 왜 우리가 사직서를 요구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교 규칙에 ‘수사진행중인 사안에는 사직서 처리 불가’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C씨는 “선생님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 교육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의 믿음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자책하던 A씨가 사직서를 낸 것이지 우리가 요구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합의를 봐준다는 조건으로 사직서를 강요한 후 발을 뺐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전면으로 반박했다. 학교 측은 “A씨가 사직서를 낸 후 합의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OO중학교에 전화해 이미 A씨가 사직을 했으니 빨리 사건을 종결시키고 합의를 진행하자고 중간에서 중제 역할을 했다”고 해명했다.
학교 측이 합의를 봐준다고 한 것이 아니라 A씨가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사직과정에 학교 측의 강압적 요구가 없었다는 것은 경기도교육청 감사에서도 끝난 사안이라고 C씨는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이 재단 측에 ‘선생님을 돌려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저는 그런 편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정말 궁금해요”
C씨는 지난달 5일 오전에 A씨가 출근하지 않았고 현재 경찰서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곧 교감과 학생부장이 경찰서로 가 A씨를 데려왔고 A씨는 오전 수업을 진행했다.
그날 오후 경찰서에 간 이유가 주거침입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C씨는 곧 A씨의 모든 업무를 정지시켰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교사를 수업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후 A씨가 사직서를 내고 학교를 떠난 것이 이 사건의 전부라고 말했다.
C씨는 “조속한 합의를 위해 두 학교 교장끼리 중재를 한 것”이라며 “합의서는 B씨와 A씨의 문제인데 학교가 어떻게 알겠느냐. 게다가 B씨가 경찰서에 A씨를 위한 탄원서까지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성폭행 미수’로 일을 키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A씨가 어째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OO중학교 측 역시 “우리가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어떻게 사건에 대해 ‘성폭행 미수’라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라며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두 당사자의 진술에 따라 경찰에서 조사가 끝난 것이며 피해자 측 어머니가 사직을 조건으로 합의를 본 것이지 학교 측에서 요구한 적은 절대 없었다고 강조했다.
OO중학교 측은 “내가 강요를 한다고 해도 본인이 안 쓰면 그만”이라며 “A씨가 사직서를 내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OO고등학교와 내부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학교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입장에서는 사직서까지 냈으니 억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A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