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빌딩 실패 최악의 성적으로 추락…김응룡 감독 침묵
연례행사 우려 속 후반기를 위한 코칭스태프 전격 교체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최근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황해’라는 코너가 있다. 황해는 보이스피싱을 통한 소비자 피해 사례를 풍자와 해악으로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특히 코너의 재미를 이끌고 있는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고객님 많이 놀라셨죠”라는 멘트는 듣는 이들에게 웃음과 함께 씁쓸함을 전해주고 있다. 이 같은 씁쓸함은 개그코너에서 그지치 않는다. 다름 아닌 프로야구한화 이글스가 최악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치며 팬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는 시즌초반부터 13연패를 시작으로 부진에 빠진 채 표류하며 추락해 버렸다. 한화는 지난 17일 광주 기아 타이거즈전에서 2대6으로 패배하면서 22승 1무 51패, 승률 3할1리를 기록하며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1위인 삼성 라이온즈(43승 2무 28패)와는 무려 22경기차로 벌어졌고 8위 NC 다이노스와도 6경기 차다. 다른 팀은 5할 승률 사수를 위해 안간힘을 쓴데 반해 한화는 마지막 자존심인 3할 승률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승부사’ 김응룡 한화 감독도 민망하긴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올해 1476승 1138패 65무로 시즌을 시작했다. 역대 승수 2위인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의 1234승과 비교해도 격차가 꽤 크다. 이에 올 시즌 전반기에는 1500승 고지를 넘어 설 것으로 전망돼 한껏 야구팬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한화는 지난 15일까지 21승을 추가하는데 그치면서 전반기 내 1500승을 달성할 것이란 기대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소통과 신뢰가 무너진
꼴지 성적
더욱이 이 같은 성적보다 소통과 신뢰가 무너지면서 팀 내 분위기는 심각하다. 한화는 일찌감치 올 시즌을 리빌딩 시즌으로 삼고 대부분의 코칭 스태프를 교체했다. 하지만 이들과 선수단의 궁합은 최악의 결과를 만들고야 말았다. 김 감독 역시 여전히 단기전을 치르는 듯 선수교체로 눈앞의 성적을 올리는데 급급했다.
여기에 유망주들의 성장도 부진해 리빌딩이 잘 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투타 최고 유망주 유창식과 하주석은 부상으로 인해 사실상 전력에서 배제됐다. 1~2년차인 신인 투수 임기영과 조지훈도 위기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오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좌완 송창현·김경태, 우완 이태양 역시 9경기를 선발로 나왔으나 5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경기 중 조금이라도 실점하거나 불안하면 교체돼 버렸다. 포수 한승택, 내야수 조정원, 외야수 송주호도 줄곧 교체됐다.
이처럼 한화는 올 시즌 명확한 기준 없이 투타에서 선수기용과 교체를 감행하면서 선수들의 사기 역시 바닥을 맴돌고 있다. 야수들은 실수 한 번하면 경기 초반은 물론 이닝 중에라도 가차 없이 교체됐다. 올해 타율 2할9푼1리를 치고 있는 좌타자 한상훈의 경우 좌투수 타율이 3할3푼3리인데도 불구하고 좌투수가 나오면 어김없이 선발에서 제외됐다. 중심타자 김태완은 팀 베팅을 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선발 라인업에서 수시로 빠졌고 지난 13일 대구 삼성전에는 고교 이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3루 수비에 투입돼 망신만 당했다. 공격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팀 성적은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팀 타율 2할5푼7리로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득점은 274점인데 반해 실점이 무려 442점을 기록했다. 홈런도 26개, 도루 49개, 타점 255개 역시 리그에서 가장 적다. 더욱이 300타점을 못 넘긴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 시즌 초 김태완-김태균-최진행이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부활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지만 별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최진행(8개)을 제외한 단 한 명의 타자도 5홈런을 넘기지 못하면서 심각한 장타력 부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나마 최진행이 5월 이후 꾸준히 3할 이상의 월간 타율로 활약하고 있고 추승우(타율 .313)가 뒤늦게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또 공익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송광민(타율 .268)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점과 송주호, 이학준 등 신진 세력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일말의 희망은 남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후반기 성적아닌
재건 집중
초라한 전반기 성적을 놓고 한화는 분위기 쇄신을 통해 후반기를 준비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한화는 지난 18일 “전반기 침체된 팀 분위기 개선과 후반기 팀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코칭 스태프 보직을 변경했다”는 설명과 전면적인 보직 변경을 감행했다.
1군의 송진우(투수), 김종모(타격), 오대석(수비), 조경택(배터리) 코치를 2군으로 내렸다. 대신 2군에 있던 정민철(투수), 장종훈(타격), 강석천(수비), 전종화(배터리) 코치를 1군으로 올렸다. 이제 1군에 남아 있는 ‘해태맨’들은 김성한 수석코치, 이종범 작전주루코치, 이대진 볼펜 코치 등 3명이다. 물론 주요 4개 코치가 2군과 자리를 바꾼 변화는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연례행사인 탓에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코치진 전면 교체에는 김 감독 스스로 후반기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김종모 타격코치와 오대석 수비코치의 경우 김 감독이 야심차게 데려온 이른바 ‘자기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반기 실패를 임정함과 동시에 보다 젊은 코치진을 1군에 올려 다른 노선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감 감독은 수년간 꾸준히 한화 선수들을 지도해온 정민철 코치와 장종훈 코치, 강석천 코치를 불러들여 전반기 문제로 지적된 선수들과의 소통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 타이거즈 출신의 코치진을 상당부분 2부로 내려 보내고 이글스 레전드 출신의 코치들을 올려 시즌 성적에 집중하기보다 선수단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해태와 삼성 시절엔 이렇게 많은 코치들을 교체한 적이 없었다”며 “그만큼 팀 성적이 좋았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한화)는 성적이 너무 않 좋다. 이번 계기로 팀 분위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한번 (시도를) 해봐야 한다”면서 “올스타전이 끝난 뒤 바로 팀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휴식기동안 팀을 잘 정비해 후반기를 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후반기에도 한화는 암흑기를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포스트시즌 경쟁은 어려워진 가운데 수년간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리빌딩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최하위 성적에도 경기장을 찾는 팬들 역시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를 외치지만 원칙이 실종되고 무기력한 경기에 계속 환호를 보낼지는 의문이다.
이 와중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김 감독 역시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김 감독은 경기 전 덕아웃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꽤 됐다. 처음에는 “(3연전) 첫 날만 나오고 이틀은 안 나오겠다”고 했고 이후에는 “이기면 나오겠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모습을 감추고 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말을 많이 하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한 팀의 사령탑으로서 설명이 필요할 때도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코치진 개혁이라는 승부사를 띄운 만큼 이를 계기로 후반기에는 1승에 집착하기보다 원칙 있는 리빌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NC 믿음의 야구로
뒷심발휘
한편 전반기를 마친 8위·9위인 NC 다이노스와 한화와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프로야구 신생팀인 NC는 초반 부진을 딛고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이면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NC는 초반 롯데에 3연패 당한 것을 시작으로 개막 7연패 부진에 허덕이며 신생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5월이 되면서 서서히 1군 무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노장 이호준이 타선의 해결사로 자리 잡고 수퍼루키 나성범까지 뒤늦게 합류하면서 중심 타선에 파괴력이 생겼다. 여기에 넥센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지석훈, 이창섭, 박정분 등을 영입해 부족했던 내외야의 선수층을 확충했다. 또 아담 윌크-찰리 쉬렉-에릭 해커-이재학으로 이어지는 선발투수진을 구축하고 백전노장 손민한이 가세하면서 마운드가 살아났다. 팀 평균자책점은 4.27로 LG, 롯데, 삼성에 이은 부분 4위를 기록했지만 선발 평균자책점은 3.63으로 부분 1위에 올랐다.
특히 초반 부진에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선수단을 끌고 온 김경문 감독 특유의 ‘믿음의 야구’가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