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재계 순위 14위인 이재현 CJ회장이 지난 18일로 구속 기소됐다. 횡령·배임·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검찰 조사가 시작된 지 59일만이다. 그동안 이 회장은 재계의 은둔형 CEO로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격도 차분해 특별한 구설에 오르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아버지 이맹희 전 회장이 형제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이 회장의 이름도 함께 거론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현 정부 들어서는 재계 첫 타깃으로 이름을 올리며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들어선 경영공백을 우려해 자신의 아들을 그룹에 입사시켜 누나 이미경 부회장을 견제하려한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이 이 회장의 굴곡인생을 들여다봤다.
“책임질 부분 책임” 선제 대응…그룹 권력재편 움직임
‘은둔의 경영자’·‘현 정부 첫 타깃’…검찰 악연 이어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960억 원대 횡령과 560억 원대 배임, 540억 원대 조세포탈 등 총 2000억 원대 경제비리 혐의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 회장의 국내외 비자금 6200억 원을 확인했으며, 해외 페이퍼컴퍼니와 임직원명의 차명계좌 등이 비자금 관리에 동원된 사실을 밝혀냈다. 또 해외 금융자료가 오는대로 CJ그룹의 주가조작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다.
이 회장과 검찰의 악연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가 기업에서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를 받을 때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경복고 동문이었던 이 회장은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사법 처리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09년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수사했을 때도 수사망에 올랐다. 당시 대검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이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3차례나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관련 수사를 중단하면서 이 회장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과의 직접적인 악연은 아니지만 아버지 이맹희 전 회장 때문에도 검찰과의 악연이 이어질 뻔 했다.
현재 이 전 회장은 동생 이건희 삼성 회장과 유산을 둘러싸고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의 재판비용을 CJ가 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CJ 측은 “전혀 아니다”고 말했지만 관련 의혹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이 전 회장의 경우 경제 활동 없이 유량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금 출처에 대한 의구심을 떨추지 못했다. 이 회장 입장에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아버지 이 전 회장은 ‘비운의 황태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삼성 후계자로 점쳐졌으나, 1970년대 초부터 후계 구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등으로 이병철 창업주와 이 전 회장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 부사장을 끝으로 일찌감치 삼성家와 인연을 끊었고, 이후 삼성가에서 ‘이 전 회장’은 껄끄러운 존재였다.
이런 탓에 이 전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 회장 인생은‘후광’만큼 탄탄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창업주가 장남이라며 아꼈지만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부친인 이 전 회장이 그룹 승계 싸움에서 동생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밀려 ‘뒷방’ 신세가 된 게 결정적이었다. 부모 세대의 형제 다툼을 지켜보며 자란 이 회장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재계에서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 역시 이처럼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습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CJ그룹은 1995년 삼성家에서 분리됐다. 이후 이재현 회장과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의 공동 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5년 11월 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이 회장 단독 체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당시 재계는 이 회장의 대외활동 폭이 넓어지면서 명실상부한 총수로서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 전망했고, 현재까지 그 전망은 맞아떨어졌다.
이 회장은 그룹 경영 초기부터 복장자율화, 님 호칭제 등 창의적이고 수평적 기업문화를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다른 재벌 오너 2, 3세와 달리 사원부터 대리, 과장 등을 거치며 ‘풀뿌리' 경영을 익혔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를 바탕으로 설탕, 밀가루 생산 중심의 식품회사에서 출발한 CJ그룹은 식품·식품서비스 외에 바이오·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물류·신유통 등도 추가해 4대 사업군 체제를 완성, 현재 재계 14위의 몸집을 갖췄다.
삼성그룹 분리 직전인 1995년 1조7300억 원에 불과했던 CJ그룹의 매출은 2012년 26조8000억 원으로 15.5배 성장했다. 그러나 이번 구속을 계기로 다른 한편에선 “이 회장과 함께 CJ를 이끌던 외삼촌 손경식 회장(대한상공회의소 전 회장)과 회사 경영에 발을 담그고 있는 어머니에 이어 누나까지 가세함으로써 “이 회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경영공백을 우려해 만든 미래전략실과 아들 이 모군의 입사가 이 부회장을 견제하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기도 했다. CJ그룹이 수차례 이 회장이 만성신부전증과 희귀 유전병을 앓고 있어 건강이 위중한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병보석 또는 형집행정지가 가능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미 다른 재벌총수들이 구속과 함께 지병을 이유로 빠져나와 지탄을 받는 사례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제민주화’를 천명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집권 초기인 데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재계 수사 첫 작품이어서 이 회장이 맞은 시련의 계절은 꽤 오래 지속될 듯싶다.
그룹 측은 이번 문제가 ‘비자금’이 아니라 선대 회장부터 내려온 차명재산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으나 사안의 흐름이 심상치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