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스물일곱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국내 가전제품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쓴, 생활가전 전문기업인 한경희생활과학이다.
한경희 대표가 스팀청소기 사업에 뛰어들 당시, 한 대표는 모두가 말하는 안정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고, 정년이 보장된 중앙부처의 고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안정을 거부하고 사업에 뛰어든 걸까. 한 대표는 발전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안정된 삶은 평화로웠지만 재미는 없었다. 무엇보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열정과 에너지가 점점 사그라지는 느낌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직 젊고 여전히 뜨거운데, 너무 빨리 편안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대표는 “어느 단계쯤 이루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한다고 얼마나 알아주겠어?’ ‘어차피 승진까지는 몇 년이 걸릴 텐데 지금 힘 빼봤자 무슨 소용이야’. 바로 이런 생각들이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엔 더 이상 발전도 성장도 주어지지 않는다”며 “인생은 크고 작은 도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고, 그렇기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스팀 대걸레 만들자!
당시 직장에 다니던 한 대표는 살림을 함께 꾸려가는 게 힘에 부쳤다. ‘일한다고 살림은 뒷전’이라는 핀잔이라도 들을까 싶어 밤늦게 퇴근해서 반찬을 준비하고 빨래를 돌렸다. 녹초가 된 몸으로 돌아와서 집안일과 씨름하다보면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은 마음이 든 적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표는 모처럼 쉬는 휴일에 대청소를 하다가 짜증이 밀려왔다. 방 구석구석을 걸레로 닦는데, 장시간 무릎을 꿇고 움직이다보니 허리와 무릎이 끊어질 듯 아파왔다. ‘걸레질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보니 대걸레를 사용하면 힘을 덜 들이고 청소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대걸레로는 바닥에 묻은 얼룩까지 지울 수는 없으니 뜨거운 김이 나오는 대걸레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길로 한 대표는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디에도 한 대표가 원하는 청소기는 없었다. 외국 제품 중에 스팀이 나오는 청소기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의 카펫 문화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이라서 바닥을 닦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순간, 한 대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스팀이 나오는 대걸레를 만들자!’
걸레질에서 해방되고픈 마음은 어느 주부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분명 사업성이 충분한 아이템이었다. 갑자기 한 대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숨죽이고 있던 사업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심장을 두드리는 듯했다. 그날부터 전자제품 상가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혹시 걸레가 달린 청소기가 있나요?”
“아, 걸레 청소기요? 진공청소기에 걸레를 붙일 수 있는 제품이 있는데 고객 반응이 별로예요.”
“왜요?”
“걸레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생각만큼 깨끗하게 닦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하나라도 더 팔면 좋지만 어차피 팔아봤자 반품되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냥 다른 청소기 구입하시는 게 나을 거예요.”
“그래요? 그럼 사용도 편리하고 뜨거운 스팀이 나오는 청소기가 있으면 팔릴까요?”
“나오기만 하면 대박이죠. 손님도 걸레질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그 힘든 걸 간편히 해결해준다는 데 어느 주부가 좋아하지 않겠어요?” 한 대표는 시장조사를 할수록 확신이 굳어졌다. ‘그래, 이건 분명 승산이 있어’ 마음이 바빠졌다.
가장 시급한 건 자금 확보였다. 개발을 위해서는 유능한 기술자도 찾아야 했다. 현재 누가 비슷한 제품을 개발 중인 건 아닌지, 시중에 유사 제품이 나와 있는지, 제품에 관한 규제 관련 법규가 있는지 등등 확인할 것도 산더미였다.
이 모든 일을 처리하자면 직장생활은 무리였다. 한 대표는 결국 사직서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한 대표는 유일한 지원군인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여보 나 하고 싶은 사업 아이템이 생겼어요.”
“무슨 사업인데?”
“뜨거운 대걸레를 만들어볼까 해요. 주부들을 힘든 걸레질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제품이에요. 나 정말 자신 있어요.”
“하하, 해방이라니. 너무 거창한 거 아냐? 그래. 당신 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업 이야기만 하면 눈이 반짝거린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막겠어. 해봐요 내가 열심히 도울게.”
성공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었지만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살면서 이토록 가슴이 뛰어본 적 없었던 한 대표는 비로소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을 만났다는 환희로 가득했다.
당시 한 대표 나이 서른여섯, 오랜 시간 간절히 찾아 헤맸던 꿈과 마주한 순간 직감적으로 이 길이야말로 내 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대표가 잘 다니던 직장을 뒤로하는 일은 결코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정말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웠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대표는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남은 인생을 내내 후회하며 보내야할 것 같았다. 이에 한 대표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한 대표는 1999년 집을 담보로 자본을 마련한 후 ‘한영전기’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오랫동안 꿈꿔온 사업의 돛을 드디어 올린 것이다. 일단 제품 개발이 급선무였기에 유능한 기술자를 수소문해 찾아갔다.
“앞으로 6개월이면 되겠네요. 전극 방식을 이용하면 개발이 가능할 것 같아요. 자금은 한 5000~6000만 원 정도 들 것 같습니다.”
몇몇 제품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경험 덕분인지 기술자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6개월 내 개발을 확신했다. 한 대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어차피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으니 전적으로 그에게 일임하고, 이후 행정적인 문제 등을 처리하며 사업의 발판을 닦아갔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은 없었지만 제품이 완성되는 그날, 지금 흘리는 땀이 결실을 볼 그날을 생각하면 없던 힘도 솟아났다.
사업에 첫 걸음을 떼다
하지만 항해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6개월이면 가능하다던 개발이 한 달, 두 달 계속 미루어지는 게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시제품이 나오긴 했지만 안전성이 문제였다. 기술자는 이 정도면 출시해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미완성 제품을 내놓았다가 사고라도 발생하면 시작부터 회사 브랜드에 치명적인 손상이 입혀지는 것 아닌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첫걸음을 내딛고 싶어,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한 대표는 기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지만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아이디어의 발상지도 자신이었고, 더욱이 자신의 회사에서 판매할 제품이었다. 기술을 모른다는 생각에 발을 뺀 것이 화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한 대표는 공대를 나온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문했다. 사돈의 팔촌까지 공대 출신이라면 누구든 일단 찾아갔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불가능하다”, “어렵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모두가 ‘안 된다’고 일관할수록 마음속에 ‘된다’라는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라기보다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모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곧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제품이라는 뜻이고, 실현할 엄두도 내지 못한 기술이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한 대표는 시장에 나왔을 때 분명 반응을 끌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떻게든 성공시켜내리라.’
한 대표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한 대학의 전기공학과에서 관심을 보여 또다시 실험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친지의 소개로 유명한 기술자도 찾아갔지만 “이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비웃음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결국 하루가 다르게 빚만 늘어갔다. 1년 동안 2억 원 가까이 손해를 보면서 집을 담보로 마련한 사업자금을 모두 탕진했다. 가족들 보기가 민망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훗날 성공으로 보상하자고 결심했다. 이 정도 난관도 버티지 못하고 접을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원해주는 정부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격요건을 살펴보니 한 대표도 지원받을 자격이 됐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한 대표는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관련 기관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대를 안고 찾아간 기관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박수진 기자>
<출처=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中│한경희 지음│동아일보사>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