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석’문재인 vs‘왕특보’이강철 내가 2인자
‘왕수석’문재인 vs‘왕특보’이강철 내가 2인자
  • 김정욱 
  • 입력 2005-02-02 09:00
  • 승인 2005.02.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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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석’과 ‘왕특보’의 권력 2인자 경쟁이 시작됐다. 참여정부 왕수석으로 통하는 문재인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복귀, 왕특보로 통하는 이강철 시민사회 수석과의 경쟁이 불붙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굳힌 문재인 수석과 이강철 수석의 권력 2인자 경쟁이 시작됐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지난 1월 20일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참여정부 들어서 수석을 3번째 맡는 그는 ‘왕수석’의 자리를 굳혔다.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던 문 수석은 지난 해 2월 총선을 앞두고 수석자리를 사퇴했다.

지난 해 5월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문 수석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민정수석을 맡겼다. 노 대통령보다 7살 아래인 문 수석은 지난 82년부터 노 대통령과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운영하며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온 노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다.노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라며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문 수석을 평가하기도 했다.문 수석은 최근 “내가 청와대를 떠나면 대통령이 너무 적적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문 수석은 청와대에서 몇 안 되는 노 대통령의 말벗이자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을 꿰뚫고 있는 참모다. 문 수석의 민정수석 복귀에 이어 지난 1월 24일에는 이강철 열린우리당 집행위원이 시민사회 수석으로 기용됐다.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데 큰 역할을 해 ‘왕특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 수석이 청와대로 들어간 것이다.

지난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복역했던 이강철 수석은 87년부터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노 대통령의 핵심참모 중 한 사람이다.90년대 초 국민통합추진회의 활동을 하면서 이 수석은 노 대통령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때 노 대통령은 “나 보고 대통령 되라고 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 수석은 자신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횟집을 팔아 노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다. 그리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그는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이 수석의 청와대 입성을 두고 정치권은 “그가 청와대내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며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왕특보’와 ‘왕수석’은 과거 정권의 2인자들과 닮은 꼴이 많아 노무현 정권의 2인자는 두 수석 중 한명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이들의 2인자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과거 정권의 2인자들은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대통령의 마음을 잘 헤아렸던 인물들이다. 이런 잣대로 볼 때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 김대중 정권의 박지원 등이 과거 정권의 2인자로 통했다.문 수석과 이 수석 역시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노 대통령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참모들로 평가받고 있다.영향력은 문 수석이 이 수석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 그 동안 문 수석이 청와대의 중심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수석이 정무기능도 맡을 예정이어서 이 수석의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두 수석 모두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누가 2인자로 등극할 것인지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욱  j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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