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
[화제의인물]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3-07-15 11:17
  • 승인 2013.07.15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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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열고 치유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지난달 25일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됐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국내 첫 전문 치유센터인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숨’(이하 숨)이 개소식을 가진 것이다. 2011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김근태’의 이름을 딴 숨은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겪고 있는 이들을 치유하는 순수 민간 기구다. 

숨의 모태인 인권의학연구소(이하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이화영 소장은 2007년부터 대학에서 예비 의료인들에게 인권의학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2009년부터는 연구소를 통해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상담과 치유를 계속해왔다. 이 소장은 “고문은 전쟁, 성·가정·학교폭력 등과 비교해 상당히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는 무력감과 사회고립, 가정해체로까지 이어지게 되지만 그동안 이에 대한 심각성이 공론화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소를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치료를 지속해오던 이 소장은 고 김근태 의장의 영결을 계기로 본격적인 고문피해자 치유센터 개소 준비를 시작했다. 이는 고 김근태 의장의 영결미사를 집전한 함세웅 신부의 약속에서 비롯됐다.
 
“‘김근태’라는 인물에게는 민주화 투사, 정치인 등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고문 피해 생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고문 피해로 내·외적인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에게 청년시절의 열정을 강요했습니다. 이를 반성하고자 고문피해 치유센터가 공론화됐습니다. 그가 떠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에 김근태가 숨의 상징인 것입니다.”
 
숨은 민간 기구이기 때문에 국가지원이 없다. 오직 개인후원에 의해 운영 중이다. 이 소장은 이를 두고 “옥석을 가릴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숨의 개소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설립추진을 위한 후원행사도 진행됐지만 기업후원은 전무했다. 센터장소도 확보하지 못해 개소가 기약 없이 미뤄질 상황도 있었다. 다행히 천주교 성가소비녀회의 도움으로 수녀원 내에 숨을 개소하게 됐다.  
 
이 소장은 ‘고문은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폭력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국가의 책임 있는 행동이 당연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도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서야 국가폭력의 원인이 된 긴급조치1·2·9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얼마 전에야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세웅 신부님 등 16명이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는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어떠한 책임과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사례는 김대중 정부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유일하다. 당시 정부는 진상규명→피해자 명예회복→가해자 처벌→경제적 배상 순으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소장은 이 ‘유일한 사례’에서도 정신·심리적 지원이 빠져있는 점을 아쉬워했다. 국가폭력이 단순히 신체적 후유증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빨갱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일체 불가능하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치료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광주사례는 조금 나은 상황입니다. 특별법이 제정된 제주도4·3사건에 대해서는 가해자처벌도 경제적 보상도 없었습니다. 일부 의원들이 법률안을 발의해도 폐기되거나 상정되지 못한 경우도 다수입니다. 게다가 현재는 국가폭력 피해자 개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일일이 명예회복과 경제 보상 재판을 신청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 소장은 “제대로 된 과거사청산이 없기 때문에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민간인불법사찰과 용산참사와 같은 시위 강경진압 등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피해자 트라우마가 고문 피해자들 못지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함구하고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이화영 소장은 숨과 연구소 활동을 통해 국가폭력피해 재발방지 법제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 오는 9월부터 시작되는 제7기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에서는 피해자 개인뿐 만 아니라 그 가족에 대한 치료도 병행할 예정이다. 
 
“숨이라는 이름은 각자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는 숨을 통해 피해자 분들의 숨길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기를 바랍니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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