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수진 기자]계열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한일이 다음 달 7일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재계는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김 회장이 지난해 구속된 이후, 올해를 시작으로 계속해 연장신청을 해왔던 터라 이번에도 연장 신청을 할지에 이목이 쏠린 것.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연장 신청이 이번에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여론이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구속집행정지’를 악용하는 사례에 분노하고 있고, 김 회장의 차남이 대마초 흡연으로 조사를 받는 등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신청하면 구속 1년 중 절반은 병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유전무죄에 서민들 씁쓸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16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김 회장은 당뇨와 우울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됐다며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신청, 지난 1월 2개월간의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어 김 회장은 다시 건강악화를 이유로 들며 재신청을 해 3월 6일에 5월 7일까지로 구속 집행정지 기간을 연장받았다. 당시 주경섭 서울남부구치소장은 “폐렴·패혈증 등 돌연사의 응급성에 대비해야 하는 등 집중 치료가 시급히 요구된다”며 재판부에 구속 집행정지 건의서를 냈다.
문제는 김 회장이 지병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해놓고 계속해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지난 4월에 열린 항소심에서 김 회장은 징역 4년, 벌금 51억 원을 선고한 원심보다 낮은 징역 3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윤성원 부장판사)는 원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한유통, 웰롭 등 위장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관련 업무상 배임 부분을 유죄로 변경하고, 부평판지 인수 관련 업무상 배임 부분은 무죄로 변경했다.
특히 원심과 같이 유죄로 인정한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형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업무상 배임 등 나머지 혐의에 대한 형을 소폭 낮췄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은 한화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로서 책임에 상응하는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다만, 사비를 털어 계열사 부당지원 피해액 3분의 2에 해당하는 1186억 원을 공탁한 점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의 현재 건강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점을 고려, 구속집행정지 상태를 유지한다”며 “다음 달 7일 오후 2시까지로 연장된 김 회장에 대한 기존 구속집행정지 결정의 효력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5월 두 번째 구속집행정지기한이 끝날 쯤 김 회장은 세 번째 구속집행정지연장 신청을 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오는 8월 7일 오후 2시까지 연장한다”며 “주치의의 진술과 소견서 등에 나타난 김 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의 거주지는 종전과 같이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거지와 서울대병원, 순천향대병원 등 일부 병원’으로 제한됐다.
이처럼 김 회장이 계속해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하자 일각에서는 김 회장이 20여일 쯤 남겨둔 세 번째 구속집행정지기간을 두고 네 번째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하는 것 아니냐며 연장 신청 가능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네 번째는 힘들 것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이번 네 번째 연장 신청은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지난달 2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의 주모자인 영남제분 회장 부인 윤모(68·여)씨가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도 형집행정지 등을 이유로 병원 특실을 사용한 것이 방송된 뒤, 비난 여론이 거세진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방송에서는 이 같은 형집행정지 사례들을 예로 들며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에게 관대한 현 형집행정지 제도의 현실과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이목희(서울 금천) 의원은 현 형집행정지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문제가 된 형집행정지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현재 각 지방검찰청에 설치돼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형집행정지 심사위원회’를 법무부 소속 정부위원회로 확대해 형집행 심사의 객관성과 투명성, 전문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의원은 “각 기업들의 회장 등 유력인사가 형집행정지 제도를 활용해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이들 대부분은 의사의 허위진단서 및 검사의 무분별한 행집행정지 연장 허가로 말미암은 특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행법에는 형집행정지에 관한 허가를 검사장에게만 부여하고 검사장의 자의적 판단으로 인한 부정 또는 권한남용이 가능한 제도”라며 “가석방에 관한 법률만 보더라도 가석방의 적격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 법무부장관 소속으로 가석방심사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형집행정지에 관련해서는 법률뿐만 아니라 규칙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기존의 형집행정지심사위원회는 검찰청 소속위원회이므로 실효성 및 투명성에 의구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김 회장의 차남인 김모(28)씨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있을 김 회장의 대법원 재판이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김 회장의 네 번째 구속집행정지연장 신청 가능성과 관련해 서울에서 거주하는 최모(33)씨는 “이것이야 말로 또 다른 형태의 ‘유전무죄’ 아니냐”면서 “더이상 법이 가진 자의 편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비난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30)씨 역시 “법이 가진 자들에게 너무 관대해 화가 난다”며 “형집행정지의 제도적 문제점들이 빨리 시정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