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박주원 전 안산시장이 지난 2월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새로운 논란이 부상하고 있다. ‘대검 범죄첩보보고서 조작 논란’이다. 최초 제보자는 “조사 받기 전 대검에 제보한 적도 진술서를 낸 적도 없다”고 법정 증언했고, 대검 첩보보고서에 특정된 뇌물 공여 장소, 수단, 방법 등도 모두 바뀐 상태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박 전 시장과 일부 검사의 불편한 관계를 근거로 ‘이 사건은 박 전 시장의 구속을 노린 표적수사일 가능성이 짙다’이야기도 들린다. 또 이 사건 검찰수사의 배후에는 청와대와 국정원이 있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요동쳤던 이번 사건의 내막을 들춰봤다.

재판부는 “뇌물공여자 측의 수첩 기재 내용과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그 밖의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돈을 줬다는 시간에 자신은 현장에 없었다는 박 전 시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앞서 박 전 시장은 경기도 안산시 사동 복합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2007년 4∼6월 서울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두 차례에 걸쳐 건설사 회장 김모씨로부터 1억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 전 시장이 2010년 3월 2일 구속된 후 1년 3개월 넘게 끌어오던 검찰과의 혹독한 싸움을 끝내면서 이번 사건의 수사 개시 단서가 된 ‘대검 범죄첩보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수사개시의 단서는 첩보보고서와 고소, 고발, 진정, 투서, 민원 등이 있다.
대검 범죄첩보보고서 둘러싼 의문
이 사건의 중심축에는 제보자로 알려진 임모씨가 있다. 임씨는 김 회장의 건설회사에 사장으로 있는 김 대표 외아들의 운전기사다. 당시 임씨는 이 건설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비자금 조성, 로비 등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김 대표를 협박, 공갈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업무수첩에는 뇌물공여 등에 일지가 적혀있었는데 이 업무수첩은 1심과 2심에서는 신빙성을 인정받았지만 대법원과 최종심은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임씨는 법정증언에서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겁이 나 업무일지 원본을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공소장 등으로 볼 때 이 사건은 2009년 11월 3일 생성된 대검 범죄첩보보고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사정기관 소식통 등에 따르면 해당 사건 관련 첩보는 국정원에서 대검으로 이첩된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국정원은 입수한 첩보를 내부에 보고하거나 검찰 또는 경찰에 이첩한다.
2010년 4월 13일 수원지검 특수부가 법원에 낸 ‘피고인 박주원 보석과 관련 검찰 2차 의견서’를 살펴보면 사건 수사의 출발이 임씨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 의견서에 따르면 수사 착수 경위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 건은 2009년 11월 3일 경 수원지검 특수부에 피고인 박 전 시장과 김○○ 국장에 대한 대검첩보가 접수되어 2009년 11월 25일 제보자 임씨를 소환해 조사한 결과 안동시 사동 복합단지 개발사업과 관련해 위 사업에 참여한 ㈜○○건설 실제 운영자인 김○○회장 이 위 사업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사업자 선정 심사위원인 안산시 국장 김○○과 안산시장 박주원에게 금품 로비한 정황을 진술”
이 의견서로 미뤄볼 때 대검 범죄첩보보고서의 생성 시기는 수원지검 이첩시기인 2009년 11월 3일 이전이라고 볼 수 있다. 임씨는 같은 해 11월 25일에 수원지검에서 최초 진술을 한다.
재판과정에서 박 전 시장 변호인 측은 대검 범죄첩보보고서를 법정에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재판부 역시 제출을 권유했으나 검찰은 수사기밀의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2심에서 검찰은 변호인에게 사건 담당 검사실에서 비공식적인 열람을 허용해 박 전 시장은 해당 대검 범죄첩보보고서를 보지 못했다. 박 전 시장 변호인 측이 본 대검 범죄첩보보고서의 분량은 A4 40장 분량으로 임씨가 작성한 3장의 진술서를 비롯한 각종 증빙문서가 첨부돼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 관련 법정에서 임씨는 뜻밖의 증언을 내놓는다. 그는 2010년 4월 26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변호인이 “증인은 대검에 제보를 했지요”라고 묻자 “대검에 제보한 적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변호인이 “대검이 알아서 첩보를 만들었나요”라고 재차 묻자 “대검첩보라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라고 제보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임씨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제9회 재판 중 대검첩보보고 관련 증언에서도 동일한 증언을 한다. 임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최초 진술한 시기는 2009년 11월 25일이고 그 이전에는 검찰청과 접촉한 사실도, 대검찰청에 제보하거나 진술서를 작성한 사실도 없다고 증언했다. 변호인이 “대검찰청은 2009년 11월 초순경 이 사건 수사 개시의 단서가 된 대검 범죄첩보보고서를 작성했고, 변호인들이 이를 직접 확인했습니다. 2009년 11월 초경 작성된 대검 범죄첩보보고서 증인(임씨)의 명의로 된 진술서가 3부 첨부돼 있는데 이는 증인이 작성한 것 아닌가요”라고 묻자 임씨는 “제가 작성한 것은 맞지만, 대검첩보 이런 것도 금시초문이었고, 그 쪽에 제보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진술서는 있지만 대검 쪽에 적어준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재판장이 “증인이 진술서를 작성한 적 있지만 검찰에 준 적은 없고 언론사에 제보하기 위해 작성한 것은 있다는 것인가요”라고 묻자 “(진술서가) 3부라고 말씀하시는데 무슨 내용이 있는지 저도 보고 싶습니다. 따로 제가 요약해서 어디에다 제출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임씨의 증언대로라면 대검 범죄첩보보고서 이첩 시기인 2009년 11월 3일과 임씨의 최초진술을 한 2009년 11월 25일 사이에는 상당한 공백이 존재한다. 이는 다시 말해 이 사건 관련 대검 범죄첩보보고서 생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제보자 임씨가 아닌 ‘어떤 목적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가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더구나 대검 범죄첩보보고서에 첨부된 3장의 진술서에는 작성일자와 서명날인이 없다는 점도 의심을 더한다.
박 전 시장의 변호인이 본 대검 범죄첩보보고서에는 박 전 시장이 낚시가방에 넣은 17억 원을 사동 복합단지개발 사업과 관련해 도곡동 소재 오피스텔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2010년 3월 19일 박 전 시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며 “박 전 시장이 도곡동 소재 카페에서 시장용 가방에 담은 1억3000만 원을 뇌물로 받았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판의 최후변론에서 “대검 범죄 첩보보고서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수사 개시 단서가 왜 만들어졌는지 저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임씨 말대로 자신은 진술서를 작성하지도 않았는데 그 진술서가 어떻게 대검 범죄첩보보고서에 첨부되었는지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표적수사를 노린 그것은 아니었는지, 허위로 작성된 것은 아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검에서 첩보로 생산된 이 사건 수사 개시 단서가 된 범죄첩보보고서에 첨부된 임씨가 직접 자필로 작성했다는 진술서 3장만큼은 꼭 공개해주실 것을 검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당부드립니다. 그 진술서나 첩보보고서는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실에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약 7년 정도는 보존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진술서를 공개해주십시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대검 범죄첩보보고서는 박 전 시장이 무죄선고를 받고 자유의 몸이 된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표적 수사 의혹 ‘모락모락’
박 전 시장이 무죄로 풀려나자 사정기관 일각에서는 ‘표적수사’라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박 전 시장이 수사관 시절 ‘○○○ 게이트’와 관련해 일부 검사와 ‘불편한 관계’가 된 적 있어서다. 또 그 배후에는 국정원과 청와대가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당시 이 게이트에는 검찰 고위층도 연루됐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곤경에 빠진 A검사가 사건 무마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박 전 시장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사건무마 청탁을 거절, 조사 내용을 대검 중수부라인에 보고했다. 이 인사는 당시 이 사건으로 큰 불이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인사는 부하직원들에게 박 수사관(박 전 시장)에게 비리 혐의가 있다며 내사를 지시한 후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며 대검에 보고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진상조사를 했고 대검과 법무부가 감찰에 착수, 박 수사관이 “○○○게이트와 관련해 무마청탁을 받은 적 있다”고 진술하게 됐다. 결국 이 인사는 평검사로 강등조치 발령을 받게 됐다. 일각에서 “청탁을 들어주지 않자 벌어진 갈등으로 빚어진 악연이 보복수사·표적수사로 이어진 것”이라는 말이 나돌게 된 배경인 셈이다.
또 청와대와 국정원이 배후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국정원 고위간부 B씨와 A검사 모두 공교롭게도 ○○고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B씨는 ○○고교 출신자를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시장의 사건을 총괄 지휘한 수원지검 고위급 C검사 역시 B씨와 같은 동향에 ○○고교 출신이다. 국정원과 검찰에 있는 특정고교 출신들이 박 전 시장 수사에 깊게 연루됐다는 의혹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한 검찰 소식통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한 사람을 표적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탐색해 첩보보고서를 만들어 수사개시 단서를 만든 사례가 많다”며 “국정원이 만들어 낸 수사개시 단서로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한 것이 도대체 몇 건이고 수사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 다뤄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정원은 정치권에서 문제 삼고 있는 국내 파트 업무를 일부 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국내파트 부문별로 감사를 진행, 인권침해나 사찰 등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업무를 정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 사건을 두고 이명박 정부가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박 성향인 박 전 시장을 내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친이계를 살리기 위해 지방선거 전에 요직에 있는 친박계 인사 손보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었다.
박 전 시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대검 범죄첩보보고서와 진술서 공개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당 진술서를 임씨 본인이 작성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생산됐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라며 “내 사건은 마치 영화 ‘부러진 화살’과 같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감당 못 할 큰 고통을 받았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시작된 잘못된 첩보로 인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질 뻔 했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