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고동석 기자]“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민족영웅인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과 상하이 루쉰 공원 매헌정을 외면하고 있는 것에 많은 의아심을 갖고 있어요.”
이는 광복 68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81주년째 되는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시대 역사인식이 얼마나 퇴보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 이웃나라들이 역사왜곡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도 국사과목은 대입수능시험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지 오래됐고,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다보니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내뱉는 망언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모르는 세태가 됐다.
이제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과 고통 속에 스스로 폭탄이 되어 자신을 내던져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했던 정신은 불과 100년이 지나지 않아 잊혀가는 역사가 됐다. 비록 외세에 의해 광복을 맞이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이루기까지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선각자들이다.
일제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에 중국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전승기념축전을 벌였을 때 일본군 총사령관 육군대장 시라가와와 주중국공사 시게미쓰 등 7명을 향해 수통과 도시락으로 만든 수제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일본의 망언과 망동이 계속되는 한 후대에도 되새기고 가르쳐야 할 역사이다.
그런데도 윤 의사의 정신은 불과 100년이 지나지 않은 현 세대에 와서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의 유물과 일대기를 전시하고 있는 매헌기념관(서울 서초구 소재)은 제세공과금이 밀리고 건물 유지 보수를 못해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내몰려 있다.
정부와 서울시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매헌기념관
기념관이 서울시 소유로 등록돼 있다보니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등 여타 기념관과 달리 국가보훈처에서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서 간신히 회비를 걷어 유지하고 있다. 선양사업 행사로 지원받는 국고보조금으로는 운영난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9대 회장으로 지난해 취임한 황의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국가보훈처가 감독부처인 비영리법인이고, 매헌기념관은 부지와 건물이 서울시 소유로 돼있는 이중구조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데 한계가 있다”며 “순국선열에 대한 고마움이 잊혀져가는 세태 속에 매헌기념관과 기념사업회는 지금 정부와 서울시, 심지어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다음은 황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치른 역사의 현장인 중국 상하이 홍커우구 루쉰공원(옛 홍커우 공원) 광장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인‘매헌’이 폐쇄될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는데 어떤 사정이 있나.
▲ 1994년 4월 29일 상해의거 현장인 루쉰공원 내에 세워진 매헌은 그간 중국 상해 홍커우구 정부가 관리, 운영해 오고 있다. 매년 의거 기념일에는 기념사업회 주최로 홍커우 자치구와 함께 의거기념식을 거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부동산 개발붐이 일어나 경치가 좋고 입지가 좋은 매헌을 폐쇄해 중국인들을 위해 개발하자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다 지난 4월 29일 상해의거 81주년 기념행사단을 맞이한 홍커우구 관리들은 입장수익이 급감하고 관리,운영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한국인들이 지금처럼 외면한다면 장기적으로 폐쇄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민족영웅인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과 기념관을 외면하고 있는 것에 많은 의아심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 산재해 있는 우리 민족의 발자취들이 한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현장이 훼손되고 기념관이 폐쇄되지 않도록 박근혜 정부와 기업, 민간에서 깊이 생각하고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고취하고 선양하고 있는 매헌기념관과 기념사업회의 운영이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해 열악하다 못해 한계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달라.
▲ 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처가 감독부처인 비영리법인이고, 매헌기념관은 부지와 건물이 서울시 소유로 되어 있는 이중구조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데 한계가 있다. 행사비의 일부를 국고로 보조받고 있다.
그런데 시설물 유지의 극히 미미한 부분에 대해서만 서울시의 보조를 받고 있을 뿐이다. 그 외 모든 운영비, 경상비, 관리유지비를 이사회비와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고 있지만, 상황이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는 기념사업회 회장들이 김덕룡 전 의원, 이명박 전 대통령, 김학준 전 동아일보 대표 등 정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회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솔직히 반대급부를 의식한 이들이 많은 후원금을 내왔다.
기업 환경이 과거와 달라져 기업 후원금을 기대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순국선열에 대한 고마움이 잊혀져가는 세태 속에 매헌기념관과 기념사업회는 지금 정부와 지자체, 심지어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단적인 예로 매헌기념관은 전기세를 비롯한 제세공과금이 수개월째 밀려있다. 각종 시설물들이 노후돼 관람객의 편의는커녕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에 놓여 있어 안타깝다.
무엇보다 매헌기념관에 전시된 윤봉길 의사의 얼이 깃든 유물들이 현대적인 보존을 하지 못해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더 이상 이대로 윤 의사를 욕되게 할 수 없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가 나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양재시민의 숲 ‘윤봉길공원’으로 개명해야”
- 지난해 8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양재 시민의 숲을‘윤봉길 공원’으로 개명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반대급부에 밀려 무산됐는데.
▲ 기념사업회는 오래전부터 매헌기념관이 위치해 있는 시민의 숲을‘윤봉길공원’으로 개명하자는 서명운동과 청원을 진행 중에 있었다. 마침 작년 8월 14일 박원순 시장이‘윤봉길공원’으로 개명을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여기에 우리는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서초구의‘지명변경위원회’에서 다시 이 안건을 부결시켰다. 시민의 숲 주변일부 주민들과 서초구청, 서초구가 지역구인 국회의원 등이 반대해 무산됐다. 부동산값이 떨어지거나 사당의 느낌이 나 싫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일제 군국주의 심장에 폭탄을 던진 의거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뜻을 기리고 이어 받아야 함에도 애국애족 정신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식이하의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누구보다도 나서 주민들을 설득해야 할 국회의원이 반대하는데 동참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시민의 숲 일대의 새주소명이‘매헌로’이고 입구에‘양재시민의 숲’역으로 병기하고 있지만‘매헌역’이 있다.
인근 초등학교가‘매헌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 매헌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정부가 부수적으로 조성한 것이‘양재시민의 숲’이다. 자랑스런 민족 영웅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쫓아‘윤봉길공원’으로 개명한다면 지역민들에게도, 온 국민들에게도 민족정기를 잃지 않는 자랑스러운 교육현장이요, 친근한 공원이 될 것이다.
- 일본 이시카와현에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기념사업회가 설립비용을 대고 재일민단이 부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어떻게 추진되고 어떤 의미가 있나.
▲ 일본 이시카와 현은 윤봉길의사가 일본군에 의해 총살당해 순국한 가나자와시에 속해있다. 작년 순국지역사탐방단을 이끌고 간 기념사업회 집행부와 만난 재일대한민국민단 이시카와현 지방본부 변종식 단장과 단원들과 논의를 하고 그곳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을 설립하기로 결의했다. 기념사업회는 기념관을 세우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고, 민단은 부지와 건물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일본현지의 준비에 있어 적지 않은 재원이 필요한 만큼 일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만간 기념관이 설립되리라 생각한다.
“선양사업도 시대 조류 따라 진화”
- 앞으로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역점을 두고 있는 선양사업이나 활동 계획이 있다면.
▲ 현 세대는 미디어 세대이며 문화중심 세대이다. 자라나는 세대는 이러한 특성들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조류에 발맞춰 윤봉길 의사의 선양사업도 진화해야 된다.
윤봉길 의사의 고뇌와 사상들이 온전히 깃들어 있는 드라마, 뮤지컬, 공연들을 제작하려고 한다. 또 의거의 결행자만이 아닌, 빼어난 인문주의자이기도 했던 윤봉길의사를 조명하고 부족한 역사교육을 보충할 역사서 중심의‘윤봉길도서관’을 매헌기념관 내에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늦어도 오는 8월 15일 광복절 전에 개관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새시대에 호소할 감성과 역사지식이 풍부한 잡지도 준비 중에 있어 곧 창간호가 발간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역동적으로 펼칠 젊은 기획자들이 참여해 갖가지 참신한 선양사업을 기획할 모임을 만들어 새롭게 기초를 다져갈 것이다.
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