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현대중공업이 조선 ‘빅3’인 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과 함께 참여한 굵직한 입찰들에서 연일 쓴 맛을 보고 있다. 특히 20년 선박건조 역사를 가진 현대중공업임에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미끄러지거나 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최종 낙찰에서 제외되는 등 굴욕을 맛보고 있다. 그 와중에 정몽준 최대주주의 아들인 정기선씨가 현대중공업에 다시 입사하면서 오너 3세 경영에 대한 불안감까지 증가하는 상황을 조명해봤다.

연속 큰 건 놓친 현중…‘야말’ 밀리고 ‘에지나’ 뒤집혀
전문경영인보다 오너 3세 경영시동…재계 불안한 시선
조선업계 맏형인 현대중공업이 초대형 수주 전쟁에서 대우조선해양에 밀리고 삼성중공업에 뒤집히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은 러시아 야말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거의 승자가 된 분위기다. 대우조선해양이 발주사와 슬롯 레저베이션 협약을 체결한 것이 지난 5일 러시아 현지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슬롯 레저베이션 협약은 발주사가 수주 도선사에 선박 건조장(도크)을 비워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우선협상대상보다 진전된 단계다.
야말 프로젝트는 러시아 영토인 시베리아 북서쪽의 야말 반도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총 규모가 250억 달러(한화 약 28조5500억 원)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수주는 여기에 투입되는 50억 달러(약 5200억 원) 규모의 LNG선 16척을 건조하는 것으로 전 세계 조선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꼽혔다.
입찰에 참여한 후보 7개사 중 국내 조선업체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으로 절반이 넘는 비율을 자랑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20년 건조 실력을 앞세우며 자신감을 내보였지만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현대중공업은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다. 결과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을 일찌감치 따돌리고 삼성중공업과의 접전 끝에 야말 프로젝트를 품에 안을 것으로 보인다.
LNG선ㆍFPSO 모두 놓치고 허탈
또 삼성중공업이 지난달 나이지리아 에지나에서 대형 해양플랜트 사업을 따내면서 그동안 여기에 공들인 현대중공업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이 수주는 에지나 유전 개발에 투입되는 30억 달러(약 3조4000억 원) 규모의 부유식 원유생산ㆍ저장ㆍ하역설비(FPSO)를 건조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FPSO 사상 세계 최대 규모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입찰기간만 5년이 걸릴 정도로 치열한 수주전이 벌어져 화제가 됐다.
지난해 상반기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중공업은 이미 나이지리아에서 육상플랜트 경험이 있는데다 발주사인 토탈에서 두 척의 FPSO를 수주한 바 있다. 승리를 눈 앞에 둔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강화를 위해 지난해 말 인사에서 임원 10여명을 승진시키거나 신규 임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막판뒤집기에 나선 삼성중공업이 현지화 전략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수주에 성공했다고 밝혔고 우선협상이 무색해진 현대중공업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졌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현대중공업 수주 목표액의 10%가 넘는 큰 건이었던 탓에 아직도 현대중공업 내부에서는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현대중공업은 올해 상반기 122억 달러(약 13조9300억 원)를 수주하면서 연간 수주 목표액의 절반을 선방했음에도 아쉬운 마음을 남겨야 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조선 ‘빅3’ 중 가장 많은 물량을 수주했지만 경쟁사에 비해 상선 비중이 높아 수익성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투자증권은 현대중공업의 올해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각각 13조5330억 원과 2300억 원으로 시장 기대치보다 하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갔다 들어왔다” 오너 아들은 ‘맘대로’
한편 정몽준 최대주주의 장남인 정기선씨가 다시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한 것에도 시선이 모이고 있다. 특히 정기선씨는 7개월이라는 재직기간에도 불구하고 31세에 부장으로 재입사해 재계의 고질병인 오너家 초고속 승진 논란을 재점화했다.
앞서 정씨는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에서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다가 그해 휴직을 신청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MBA를 마친 후 2011년 귀국한 그는 현대중공업을 사직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입사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현대중공업이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다시 오너 3세 경영으로 전환할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이 운영해도 실적이 그리 개선되지 않는 현대중공업을 30대의 젊은 오너 아들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면서 “본격적으로 경영권 안겨주기에 들어가면 현대중공업은 또 한 번 불안의 파고에 출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