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의 박인비 LPGA 전설이 되기까지…
뚝심의 박인비 LPGA 전설이 되기까지…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3-07-08 10:56
  • 승인 2013.07.08 10:56
  • 호수 1001
  • 5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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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메이저대회 3연승 63년 만에 대기록 달성
침묵의 암살자…차분한 평정심으로 타 선수들 압도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슬럼프를 견뎌내고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박인비(KB금융그룹)가 메이저대회 3연승이라는 63년 만의 대기록을 세우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현지 언론들은 타이거우즈도 시즌 개막 후 이루지 못한 메이저 3연승의 기록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또 박인비가 세우고 있는 꿈의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박인비는 지난 1일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터의 서보낵 골프장(파72·6821야드)에서 펼쳐진 제68회 US여자오픈에서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그는 ‘시즌 개막 후 메이저 대회 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며 LPGA 투어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특히 이는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 이후 63년 만에 이뤄진 기록이다. 이와 함께 박세리가 세운 한국선수의 시즌 최다승(5승) 기록도 갈아치웠다.

미국 CBS스포츠는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머, 안니카 소렌스탐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박인비가 해냈다”고 극찬했다. 남자 골프에서는 보비 존스가 1930년 당시 4대 메이저 대회(US오픈, US아마추어선수권, 브리티시 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선수권)를 한 시즌에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게 유일하다. 이제 박인비에 대한 관심은 그랜드 슬램 달성에 쏠려있다. 올해부터 에비앙 챔피언십이 메이저 대회로 격상돼 박인비가 올 시즌 남은 브리티시오픈이나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하나만 우승해도 캘린더 그랜드 슬램과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동시에 달성하게 된다.

일부에선 새로 추가된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5개 모두 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LPGA투어는 한해 5개의 메이저대회 중 4개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그랜드 슬램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박인비는 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올 시즌 그랜드 슬램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제 그랜드 슬램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세요”라며 “즐거운 도전이라고 생각하겠다.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면 올 시즌 그랜드 슬램을 이뤘다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또 ‘NBC 투데이쇼’에 출연해 “정말 영광이다. 다음달 브리티시오픈에서도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여유와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고의 세월
묵묵히 제 갈길 지켜

LPGA투어를 지배하고 있는 박인비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만 19세의 나이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09년에는 출전대회의 30%를 컷 탈락을 당하는 등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이에 2010년에는 일본무대와 LPGA투어를 오갔지만 LPGA에서의 우승소식은 없었다.

당시 신지애(미래에셋)와 최나연(SK텔리콤)은 LPGA 무대를 휘어잡고 있었다. 신지애는 2009년 2승을 2010년에도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마스터스를 포함 2승을 추가했다. 최나연 역시 2009년과 2010년 각각 2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LPGA투어에서 입지를 다졌다. 반면 2011년에도 박인비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인비는 변변한 메인 스폰서도 없이 어려운 투어생활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결국 2012년 도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에비앙 마스터스를 포함 2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약 4년 만에 LPGA투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세를 몰아 박인비는 올 시즌 접어들면서 지난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우승하며 페이스를 가다듬나 싶더니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 등 3개 메이저 대회를 포함 총 6개의 우승을 목에 걸었다.

완벽한 샷과 퍼트,
감정 조절 탁월

인고의 시간의 결과일까? 현지 언론들은 그의 우승비결로 차분한 평점심의 소유자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차분하면서도 승부욕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은퇴 후 미국 골프 전문 방송 골프채널의 분석가로 활동 중인 소렌스탐은 US여자오픈 대회를 지켜보면서 “박인비가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갖고 있으며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박인비는 기량이 향상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선수”라고 평했다. USA투데이는 “박인비는 완벽한 샷과 퍼트, 감정 조절까지 갖춘 이상적인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은비의 평정심은 올 시즌 메이저대회를 치르면서 더욱 발휘됐다. LPGA 챔피언십에서는 17번 홀까지 1타 차 단독 선수를 유지하며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 18번 홀에서 보기를 범해 베테랑 카트리나 매슈(스코틀랜드)에게 연장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박인비는 침착함으로 긴장감을 이겨내 세 번째 연장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에 성공했다.

US여자오픈에서는 2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로 나선 뒤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박인비도 3라운드에서 첫 위기를 맞았다. 11~13번 홀까지 연속보기를 적어내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박인비는 위기 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4번 홀에서 10.5m의 내리막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독특한 박인비 스윙과 일명 컴퓨터 퍼팅도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교과서에 없는 스윙으로 통하는 박인비의 스윙은 독특하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 느린 백스윙과 톱에서 하늘로 높게 세워진 클럽을 보면 정통 스윙과는 거리가 멀다. 양 손목을 꺽는 코킹을 거의 하지 않는 채 천천히 들어 올리는 백스윙은 마치 아마추어 골퍼를 연상케 한다. 또 스윙의 정석과 달리 박인비는 다운 스윙이 시작됨과 동시에 눈은 타켓 쪽을 향해 있다. 하지만 박인비는 오랜 시간 훈련으로 자신의 스윙패턴을 만들었고 일정한 리듬과 템포, 정확성은 박인비만의 장점이 됐다.

실제 박인비의 올 시즌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는 247.595야드로 88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샷부터는 골프 지존의 실력을 보인다. 아이언으로 그린에 볼을 올려 버디 기회를 잡는 레귤러 온 확률은 71.6%로 17위를 기록하며 껑충 뛴다. 또 정교한 박인비의 퍼팅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올 시즌 라운드 당 평균퍼팅 수는 28.43개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팅수도 1.702개로 1위에 올라있다.

이번 US여자오픈 1, 2라운드에서 박인비와 동반 플레이를 했던 현 세계랭킹 2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그린에지에서 한 퍼팅은 대개 홀을 비켜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인비는 그런 퍼팅을 곧잘 집어넣는다. 공이 홀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좌절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LPGA투어에서 43승을 올린 조앤 카너도 “지금까지 낸시 로페스가 최고의 퍼팅을 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과감했고 종종 긴 퍼팅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박인비가 로페스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인비의 퍼팅은 왼손을 오른손 아래로 내려잡는 ‘크로스 핸디드 그립(역그립)’을 쓴다는 점이 다를 뿐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크게 특별한 점은 없다. 이에 대해 한 골프관계자는 “박인비가 좋은 퍼팅을 하는 것은 스트로크나 템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퍼팅 라인과 브레이크 라인을 읽은 감각이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박인비 자신만이 일관성이 있다면서 기술이 특별하다기 보다는 말 그대로 감이 기가 막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인비는 언론은 물론 동료 선수들이 퍼팅 비법을 물으면 그때마다 그는 “솔직히 특별한 게 없다. 그냥 감을 믿고 칠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뒤에는 퍼팅 감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지금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을 퍼팅 연습에 할애하고 있는 노력이 담겨져 있다.

▲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 여자오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인비프로가 지난 1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미국 NBC의 아침 유명방송 투데이쇼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상금·랭킹·올해의 선수P 1위 독무대

박인비는 이번 우승으로 우승상금 58만5000달러(약 6억6600만 원)를 받아 시즌 상금 2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로써 상금부분을 비롯해 세계랭킹, 올해의 선수 포인트 등에서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또 그랜드 슬램 달성 여부와 함께 올 시즌 최다승 기록에도 도전한다. LPGA투어 시즌 최다승 기록은 미키 라이트(미국)가 1963년에 세운 13승이다. 소렌스탐도 2002년 11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직 13개 대회가 남아 있고 박인비가 상반기 시즌 15개 대회에서 6개 대회를 거둔 점을 비춰볼 때 14승을 달성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한편 박인비는 미디어투어 후 1주일동안 라스베이거스에서 휴식을 취한 뒤 11일부터 캐나다 온타리오 워털루에서 열리는 마누라이프 파이낸셜 LPGA 클래식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미국 유학시절을 보냈던 라스베이거스에 집을 마련해 향후 미국 무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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