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 이재현 회장도 신부전 말기 밝혀
죄 짓고 난 뒤 “아프다” 호소 끊임없어
최근 구속 수감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신부전증 말기 증세를 호소했던 것으로 지난 2일 확인됐다. 이 회장은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30대부터 앓아온 신부전증이 현재 말기상태이기 때문에 이식수술이 필요하다”며 “불구속 수사를 요청한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 회장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향후 형집행정지를 받기 위한 초석은 마련됐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휠체어 퍼포먼스 오래된 전통
사실 이 회장과 같이 병세를 호소하는 총수들의 모습은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다. 더욱이 이들 중에는 석방 또는 형 집행정지가 결정된 후 멀쩡한 모습으로 등장해 엄청난 비난을 받은 인물도 있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휠체어 재판의 원조로도 불린다. 정 전 회장은 1997년 한보사태, 수서 비리 등 굵직한 정치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형이 확정, 5년 5개월을 복역하던 도중 고혈압·협심증의 병세로 석방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정 전 회장은 2005년 강릉영동대 교비 7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뒤 2심 재판 도중인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까지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정 전 회장은 형집행정지의 사각지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형집행정지의 굴레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한화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들에게 거액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로 구속 된지 5개월 만에 수감 중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됐다.
지난해 8월 재벌총수로는 흔치않게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김 회장이었지만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특히 김 회장은 2007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보복폭행 사건’ 당시에도 휠체어를 탄 모습을 보인 바 있어 “휠체어를 애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또 비자금 조성 및 횡령한 혐의로 2008년 11월 구속 기소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박연차 게이트’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이 건강악화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비판의 목소리를 키운 경험이 있다.
이외에도 지난 2일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이 구설에 올랐다. 학부모들에게 국제중학교 입학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9000여만 원을 받고 성적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이사장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북부지법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구급차를 타고 등장했다.
그런데 구속영장이 발부된 오후, 김 이사장은 법원을 나서며 들어갈 때와는 달리 자신의 두발로 걸어 나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은 “높으신 분들이 경찰, 검찰, 법원에 출석할 때 휠체어를 타거나 응급차에 몸을 맡기는 것은 관례인 것이냐”며 “사법기관이 얼마나 우습기에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불법 저질러
이처럼 재계 인사들이 수감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형집행정지 제도다. 형집행정지 제도란 죄를 짓고 복역 중인 사람이 질병 등으로 교도소 생활을 하기 어려울 때 일시적으로 석방해 병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범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이른 바 영남제분 사모님 여대생 청부살해사건의 가해자 윤모씨도 이 제도를 활용해 교도소를 탈출했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프다는 명분이 좋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당당히 면죄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형 집행정지를 활용한다”면서도 “하지만 법이라는 게 과연 활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국민을 법으로써 지켜야할 법조계가 재계와 결탁해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을 담당했던 하승균 전 경정 역시 “형집행정지라는 제도는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는 재계 인사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돈을 앞세운 편법 술수를 부렸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김광삼 전 서울서부지검 검사는 “생명이 매우 위독한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 형집행정지다”라며 “아무래도 재계인사라던가 하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층에서 형집행정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들이 교묘하게 법을 이용하는 것 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사모님 여대생 청부살해사건 형집행정지 논란을 계기로 향후 재계 인사들도 쉽게 형집행정지를 받아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흘러나오고 있다. 재계의 형집행정지에 대한 여론이 매우 험악해진 상태기 때문이다.
실제 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을 위해 이른바 사모님 방지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민주당 이목희 의원이 지난달 7일 국회에 제출한 해당 개정안에는 형 집행정지 소명용 진단서 인정기준을 종합병원 2곳 이상의 동일소견으로 강화하는 한편, 형집행정지심사위원회에 의학 분야 전문가의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골자가 들어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향후 재계 인사들의 형집행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대중들과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