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 사람들 “오, 팔팔 뛰겠네”
588 사람들 “오, 팔팔 뛰겠네”
  • 이수향 
  • 입력 2004-10-09 09:00
  • 승인 2004.10.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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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오후 7시. 서울 전농 2동 정화위원회 사무실에 청량리 집창촌 업주와 주변 상인들, 아가씨 등 2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성매매 특별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생계보장을 외치고 있었다.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지 일주일만에 기자는 다시 청량리 윤락가를 찾았다.영업이 시작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불이 켜진 가게는 한 곳도 없었다.평소같았으면 붉은색 조명등이 켜진 유리문 안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들이 하나둘 눈에 띌 법도 한데 성매매특별법이라는 철퇴를 맞은 윤락가의 풍경은 적막감마저 맴돌았다.

“살길 막막 생계보장하라!”
기자가 도착했을 때 전농 2동 정화위원회 사무실 앞에는 인근 상인 및 업주 등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웅성대고 있었다.일주일만에 기자와 다시 만난 박인국(50·가명) 위원장은 이번 성매매 특별법으로 인해 여전히 격양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특히 “이것은 엄연한 생존권 침해다. 여성들이 설쳐서 잘되는 꼴을 못봤다”며 여성부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특히 이번 성매매 단속은 슈퍼마켓과 식당, 미용실, 세탁소 등 인근 상점의 영업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윤락가 업주측 외에도 상인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업주들과 상인들은 하나같이 “갑작스러운 단속으로 인해 생계가 막혔다. 우리보고 죽으라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뱀먹은 닭까지 고아준다”
업주생활 14년째라는 정진만(36·가명)씨의 협조를 받아 사창가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을 갖고 있는 아가씨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윤락가 골목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방안에서 미정(34·가명)씨와 선미(33·가명)씨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영업을 못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그녀들은 모두 화장기없는 얼굴에 편안한 복장이었다. 이 생활을 시작한지 10년째라는 미정씨는 아이 둘이 있는 유부녀. 이번 정부 정책으로 인해“분유값이 없어 아이들이 있는 고향에도 못갔다. 당장 카드값부터 시작해서 앞길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선미씨는 “막말로 착취니 감금당하면서 일할 애들 하나도 없다. 업주와 아가씨들은 신뢰하며 공생하는 관계”라며“요즘엔 오히려 아가씨들이 큰소리친다”고 말했다.선미씨는 “솔직히 룸살롱부터 지방의 티켓다방, 보도방, 북창동, 전라도의 어느 섬에 이르기까지 안거쳐 본 곳이 없지만 여기처럼 인간적인 곳도 없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어 “나이도 있고 하니까 형편을 많이 봐준다. 엄마(업주)가 보양식도 자주 해주고, 힘내라고 뱀먹은 닭까지 고아준다”고 덧붙였다. 미정씨는 “업주에게 신뢰를 얻으면 수입 중 한달에 얼마만 내고 나머지는 다 가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손님도 내가 원하는 손님만 받고 내 개인 시간이 많다. 이게 내가 청량리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염산뿌리고 빵가겠다!”
한편 이번 정부의 성매매특별법은 업주와 아가씨들 뿐만 아니라 주변 상점상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기자는 정화위원회에 들어서자마자 청량리 윤락가에서 18년째 옷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김진복(48·가명)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하소연하기 시작했다.김씨는 “이 기사 꼭 써달라”며 “하도 열받아서 지금 염산 5통을 갖고 왔다”고 말했다.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하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김씨의 말에 따르면 아가씨들에게 외상 받을 돈만 5,000만원이 넘는데 성매매금지법으로 인해 돈을 받을 길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영업을 하지 못해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아가씨들이 하루아침에 도망갔다. 10원 한푼 받을 길이 없게 돼버렸다”며 막막해했다. 그는 이어 “나는 고아로 자라 가족도 없고 겁날게 없다. 과거에도 돈 떼먹고 도망간 아가씨를 잡아 얼굴에 염산을 뿌려서 1년 6개월 살다나온 적이 있다”며 “그 돈은 평생 모은 내 전재산이다. 이번에도 내 돈 떼먹고 도망간 아가씨들을 반드시 찾아내 염산뿌리고 빵(감옥)가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청량리 아가씨 일침 “정부 선도교육 효과없어”
청량리에서 일하고 있는 미정(34·가명)씨는 윤락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의 대부분이 정부에서 실시하는 ‘선도교육’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그녀는 대표적 사례로 부녀자 보호소를 꼽고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 놓았다. 그녀는 과거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몸서리를 쳤다.-그곳은 어떤 곳인가.▲말이 보호소지 실상은 교도소나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있었나.▲일주일 있었다.

-그곳의 생활에 대해 얘기해 달라.▲하루에 두루마리 휴지 7쪽 가지고 살았다면 이해가 되는가. 머리를 감을 때도 샴푸를 머리에 묻혀 가야 했을만큼 씻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11월에도 따뜻한 물이 안나왔다.

-인권유린은 없었나.▲그곳의 생활 자체가 인권유린이었다. 폭력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모욕을 수없이 당했다. 그곳에서는 우리를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수용되었나.▲주로 윤락녀들과 거리의 부랑여성들이었다.

-어떤 교육을 받았나.▲미용 등과 같은 기술교육이 행해졌으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집창촌 폐쇄방침에 따라 정부에서 아가씨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선도교육을 실시할 계획인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부녀자 보호소의 경우와 별반 다를게 없을 것이다.

-선도교육을 받은 아가씨들 중 상당수가 다시 이길(윤락)을 택한다는데….▲사회에 적응하는게 어렵기 때문이다. 이생활에 젖은 이상 월100만원 받고 일할 사람 없을 것이다.

윤락녀 선미씨 “윤락가 없애는 것은 불가능…주택가 파고 들 것”
우리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 누구를 보호한다는 말인지…
기자는 청량리 윤락가의 한 업소에서 윤락업에 10년째 종사해온 선미(33·가명)씨를 만났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영업을 못하고 있는 심정은. ▲정말 해외로라도 가고 싶다.

-윤락가를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약 8년전 단속이 한창 심할 때 전화방과 휴게텔, 마사지방 등이 대거 생겨난 것처럼 여기를 죽이면 다른 업종이 음성적으로 성행할 수밖에 없다.

-‘성매매피해여성 보호’라는 경찰측과 여성부의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우리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생계를 막막하게 해놓고 무슨 보호란 말인가. 악덕업주에게 이끌려 강제로 영업한다는 보도부터 시정돼야 할 것 같다. 정작 단속해야 할 곳은 업주가 아니라 ‘소개소‘이다.

-윤락가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절대 불가능하다. 아는 손님들만 받아도 영업이 가능하다. 벌써부터 비밀 영업을 위해 주택가에 집을 얻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될 경우 절대 못잡는다.

-정부의 직업보도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어떤 내용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현실성 없다고 본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이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가 좋을 때 수입은 어느 정도였나.▲7년전엔 월 1,200정도 벌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10년 동안 연예인들 정말 많이 봤다. 반은 왔다갔다고 봐도 될 것이다. 매니저가 먼저 와서 아가씨를 데리고 나가는데 특히 개그맨들이 많이 온다. 기억에 남는 손님으로는 9년째 단골이 있는데 정말 부부같다.

-어떤 손님에게 정이 가는가.▲“나는 네 시간을 잠시 빌린 것이다”라는 식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손님에게는 마치 애인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대한다.

-여성으로서의 삶은 어떠한가.▲솔직히 여자로서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포기하고 산다는 것 빼고는 일반 여성들과 다를 바 없다. 단지 일을 하는 동안만 다른 삶을 살 뿐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보면 된다.

-꿈이 있다면.▲내년 2월까지 일해서 내 가게를 내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이번일로) 그 꿈이 완전 깨져버렸다.

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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