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영 운수업자 현금부자 주축 이뤄
컨테이너 깔세 아파트서 도박해
[일요서울ㅣ이광수 기자]우리나라 불법도박 규모는 7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도박이 점조직 형태로 이뤄져 신고 없이는 단속마저 어려운 실정인데다 조직폭력배까지 개입하는 등 각종 추가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 아니라 전문 딜러를 고용해 사기도박을 펼치는 등 그 행태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하우스 도박장 운영자와 도박 중독자를 만나 하우스 도박의 이면을 들춰봤다.
경기침체 속에 ‘한탕주의’가 만연하면서 서민들 사이에서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 사행산업 규모가 100조 원에 이르고 불법도박은 국가 세출예산의 20%인 7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받은 ‘제2차 불법도박 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불법도박 규모는 75조1000여억 원으로 추정됐다. 이번 조사에선 1차 때 포함되지 않았던 불법하우스도박이 들어갔고, 당시엔 드물게 운영되던 사설 스포츠토토가 최근 활성화된 점이 반영됐다. 종류별로는 불법하우스도박이 19조 원, 불법사행성게임장이 18조 원을 넘어섰고, 불법인터넷도박이 17조 원 이상을 차지했다.
문방ㆍ상치기ㆍ총잡이ㆍ박카스…각자 역할 분담
인천역 부근 허름한 사무실에서 만난 건장한 체격의 K씨는 얼마전까지 PC도박장을 운영하다 단속이 강화돼 중단하고, 불법도박장(일명: 하우스)에서 ‘잔심부름 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우스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그 중에서도 소규모로 이뤄지는 하우스는 생활도박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지인들과 푼돈으로 시작하여 끊임없이 이득을 챙긴다”고 밝혔다.
“주 2~3회 하우스를 여는데, 점 1000원을 기본으로 하여, 하루에 적게는 1000만 원 많게는 억 대까지 오간다”며 “비교적으로 이들은 승부가 빠른 바둑이(일명:깜깜이)를 한다. 왜 깜깜이냐면 패를 모두 가려 남의 패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승리 요건”이라며 승부를 걸 때 상대의 표정을 읽는 것이 관건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K씨는 “나는 이곳에서 박카스를 하며 용돈을 번다. 박카스는 예전부터 사용되던 도박장 은어이다. 도박꾼들이 밤을 새는 것은 기본이기 때문에 박카스를 주며 ‘힘내라’는 의미로 유래된 것이다. 박카스들은 재떨이를 갈아주거나, 돈을 빼오는 등 잔심부름을 하면서 용돈을 받는 것”이라며 수입이 짭짤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문방(망보기)ㆍ상치기(판돈 관리)ㆍ총잡이(화투패 돌리는 사람)ㆍ모집책등 역할을 분담해 도박판이 운영된다고 전했다.
10년간 꾸준히 30억 잃어도 오뚜기처럼
현재 운수업을 하는 A씨는 10년 간 30억 원 상당의 돈을 도박장에 고스란히 바쳤다고 운을 띄웠다.
“지인 소개로 하우스를 접한 이후 컨테이너, 오피스텔 등에 차려진 하우스를 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화투, 훌라, 바둑이 등 도박을 했다.” 도박에 빠진 A씨는 이른바 ‘꽁짓돈’을 빌려가며 하룻밤새 수천만 원을 잃는 일을 되풀이했다.
“내가 다혈질이다. 그 때문에 좋은 패가 나오면 바로바로 승부를 걸어 버린다. 또한 표정에서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100전 100패다. 그래도 도박을 끊을 수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A씨는 “내가 수년 간 도박장에 바친 금액을 합하면 빌딩 두 채 살 돈이다. 대략 30억은 족히 넘을 것이다. 요즘에도 목돈이 들어오면 곧장 도박장에 달려간다”고 밝혔다.
도박중독은 충동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해 사회·가정에서 자기 역할과 책임을 이행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탐닉하는 일종의 ‘충동장애’이다. 충동장애란 욕구를 실행할 때까지 불안감이 증가하다가 실행한 뒤에야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는 병을 말한다.
즉 도벽증, 폭식증, 게임중독, 알코올중독, 섹스중독, 마약중독 등과 마찬가지로 특정 대상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정신질환이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의 특성은 통제력 상실, 도박 집착, 내성과 금단 증상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자기 의지로 제어할 수 없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한테 고통과 피해를 주고 있다면 중독성 질환, 즉 충동조절장애 환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박중독의 원인은 다양하다. 의학적으로는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이상이 생겼을 때 도박중독에 빠지기 쉽다고 본다.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과 각성, 스릴 등을 느끼게 하는 노르에피네프린이 도박 없이는 분비가 잘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하우스는 대부분 사무실, 가정집, 오피스텔 등 실생활과 밀접한 공간에서 불법도박이 성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불법도박이 주택가까지 파고들 정도로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K씨는 “대부분 운영자들은 아파트를 빌려 하우스를 연다. 그러나 깔세를 내며 2달에 한 번씩 이동한다. 단속망을 피하기 위함이다. 내부는 테이블 1개가 설치되어 있고 도박종류에 따라 현금을 칩으로 바꿔주는 명목하에 수수료를 떼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주택가 이용해 사기도박 성행
“강남권 주택, 고급 빌라에서 펼쳐지는 하우스는 나도 못 들어간다. 그곳은 신용이 없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그곳에서 주로 도박을 하는 이들은 현금을 만지는 자영업자, 운수업자들”이라며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억씩 돌아다닌다. 구경조차도 허용 안되며, 보안이 철저해 단속망을 피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몇년전에는 강원랜드 전·현직 딜러를 하루에 50~100만 원을 줘 고용했다. 현직 딜러 같은 경우에는 쉬는 날 참석하는 형태이다. 이들은 영화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밑장 빼기를 하여 사전에 거래가 된 상대에게 좋은 패를 준다. 그러다가 걸려 손가락이 잘린 사례도 있다”며 이들은 사기도박에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폰 압수 기본 촬영 시 칼 맞아
야산에 설치된 대형 하우스 도박장을 운영해봤다는 Y씨는 “이 곳은 다른 하우스와 다르다.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조직폭력배들이 관리하여 보안이 철저하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하우스 도박장을 소개시켜 줄 수 있냐고 묻자 “내가 소개해준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함께 가야 들어갈 수 있다. 또한 폰 압수는 기본이며, 촬영하다 걸리면 바로 칼이 배에 들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니며 도박장을 차리는 전문 도박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야밤에 길도 없는 산 속에 도박장을 차려 놓고 몰래 도박을 하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눈치를 채고 모두 도망가 현장을 덮치지 못했다. 수사 대상자들이 모두 거짓말을 해 범죄 혐의를 확인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법 도박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근절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주택가에서 사설경마 총괄운영센터를 차려놓고 총 베팅액 3억6000만 원 배당을 송금받은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일반주택으로 위장한 곳에서 컴퓨터 8대를 설치해 사설 경마장을 운영했으며, 인터넷 사이트 광고를 통해 가맹점과 손님들을 모으는 등 단속의 눈을 피하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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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기자 pizacu@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