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련된 외관과 호화스러운 내부 장식 그리고 품격이 느껴지는 음식들, 그러나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한 독립 공간. 흔히 재벌들의 식사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재벌들은 이러한 식사를 즐길까.
[일요서울]이 조사한 결과, 재벌들의 식사문화는 보다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일가 역시 곰탕, 보리밥, 고등어구이 등 소박한 식단도 많이들 찾고 있었다.
일례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의 단골집으로 유명한 명동의 한 곰탕집은 평범한 주변 직장인들 역시 애용하는 식당이다. 해당 식당은 70여 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며 전직 대통령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곰탕의 가격은 일반 식당보다는 조금 비싼 1만 원대지만 그 안에 들어간 재료들이 풍성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입소문이 상당하다. 손으로 밀면 삐걱하고 소리가 날 것 같은 허름한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가게 안에 고기가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곳을 방문하는 단골들은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줬던 고깃국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또 찾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곰탕에 따라 나온 반찬이라고 해봐야 달랑 깍두기와 배추김치. 한 그릇을 주문하면 채 5분도 안 돼 놋그릇에 담긴 곰탕이 나온다.
삼청동의 골목골목도 재벌들이 자주 찾는다. 데이트거리로 유명한 삼청동 카페골목을 지나 청와대 방향으로 나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조용한 환경 탓에 재벌가 며느리들이 차 한잔을 즐기러 자주 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재벌가 며느리들의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이곳을 아지트로 삼고 있기도 하다. 삼청동에 위치한 양식당 B레스토랑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등 유명 CEO 등 각계 인사들이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와인과 프랑스 요리를 즐기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외에도 재벌가 총수들은 종로 피맛골, 을지로 닭한마리 골목, 경복궁 주변, 대학로, 장충동 한식집 등 예전 자신들이 젊었을 적 찾았던 식당들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업이 아무리 번창해도 식성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알려진 모 그룹 장녀도 을지로 닭한마리 집에서 6000원 상당의 닭을 일반인과 함께 먹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재벌이라는 이름답게 초호화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비슷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L모 그룹 회장이 일식을 좋아해 아예 고급 일식집을 개점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H모 기업 회장이 식사에 나설 땐 직원들이 선발대로 나서 충분한 테이블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전체를 빌리지는 않더라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도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 여의도, 청담동에 위치한 일부 식당은 재벌가 회원제 전용으로 운영, 각 기업의 수장 및 총수일가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통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신라호텔, 웨스틴조선호텔, 63빌딩 등이 재계의 대외 식사 자리로 알려졌고 특히 플라자호텔 중식당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단골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텔이나 고급식당들은 대부분 별실을 운영해 재벌일가들과 일반인들이 마주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조사됐다.
모 기업 회장의 식사 예약을 주로 담당하는 관계자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선 예의상 고급스럽고 깔끔한 음식을 찾는 것이 맞다. 특히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자리가 정리돼 있을 수 있도록 코스요리를 선호한다”면서 “다만 개인적 식단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나이가 있다 보니 야채가 많고 토속적인 음식을 주로 찾는다”고 전했다.
한편 유력 인사들이 자주 가는 곳의 식당 직원들은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줄줄이 꿰고 있어야 된다고 한다.
지배인 정도 되면 종합지와 경제지, 시사 잡지 등을 몇 가지씩 구독할 정도라고. 특히 단골 고객과 관련된 개인신상 숙지는 기본이다.
직원들은 신문에 인사 기사가 나오면 모두가 돌려 보고 이름과 직함, 얼굴을 외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동정란을 유심히 보면서 단골 고객이 외국에 출장을 다녀왔는지, 고객이 속한 조직이 상이라도 탔는지 살피는 것도 필수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의 명단을 코팅해서 직원 게시판에 붙여놓는 식당도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