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는 리얼리티 넘치는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무저갱으로 변해버린, 파괴된 인간들의 도시를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5명의 인물과 1마리 개의 시점을 톱니로 삼아 맞물린 6개의 서사적 톱니바퀴는 독자의 심장을 움켜쥔 채 현실 같은 이야기 속으로 치닫는다.
접속사를 철저히 배제한 채, 극도의 단문으로 밀어붙인 문장은 펄떡이며 살아 숨 쉬는 묘사와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며,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소설은 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 ‘7년의 밤’을 통해서 '기존의 한국문단에는 없었던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가는 이번에도 흡입력 강한 서사로 2년 3개월 만에 다시 독자를 찾아왔다. 전작들에 비해 스케일은 훨씬 커졌으며 도시를 종횡하는 끔찍한 전염병과 봉쇄된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는 주인공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치는 더욱 세밀하고 공고하다.
대학병원 수의학과와 응급의학과, 도청 방역과, 수사관, 특전사, 119구조대 등 전문가 취재로 리얼리티에 정교함을 더하고, 작가의 특장이자 낙관과도 같은 대담한 상상력으로 단순한 재난 스릴러와는 차원이 다른 또 한 편의 휴먼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이 소설은 허구의 세계라 할지라도 허투루 보이지 않겠다는, "독자를 내가 만든 세계에 데려다 놓고 싶다"는 작가의 야심찬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여기에 알래스카의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개썰매로 질주하는 머셔(개썰매꾼)의 이야기를 끌어와, ‘화양’에 더없이 아름다우나 인간에겐 잔인한 설국의 환상을 더한다.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장점들 또한 이번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톡톡하게 발휘했던 블랙유머와 이야기를 탄탄히 쌓아올려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은 여전하며, 그다음 작품 ‘7년의 밤’에서 더욱 발전시켰던, 소설 속의 세계와 인물들을 파탄의 구렁으로 몰아넣어 서사를 가열차게 진행시키는 힘은 놀랍도록 견실하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예상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었던 재난을 마주한 인간 군상을 다각도로 보여주기 위해 3인칭 다중 시점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이야기에 지나치게 공백이 생기거나 겹치는 일 없이 5명의 인물과 1마리의 개의 시점을 밀도 높게 오가며, 28일간의 눈보라 몰아치는 도시 '화양'을 구현해냈다. 치밀하고 압도적인 서사,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문장으로 무장한 이야기는 독자에 정면 승부를 걸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