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4시 반. 강남역에 위치한 이 클럽에는 한껏 멋을 부린 30~40대의 남녀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모두 재혼 상대자를 구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입구에서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이며 어색해하던 사람들은 이내 자리를 잡고 배우자를 찾는 사람들의 대열에 본격적으로 가담했다. 오후 5시가 되자 2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이 클럽은 짝을 찾으러 온 남녀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이들에게 매니저들은 “죄송합니다”라며 연방 고개를 숙였다.용기를 내서 목동에서 왔다는 40대 남성은 “일찍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다음주에는 좀 더 일찍 올 계획”이라며 아쉬워했다.이곳에서는 아무도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호감을 보이는 것에 이상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재혼 상대자를 고르려는 의도를 갖고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적극적인 탐방(?)은 오히려 필수다.한 커플매니저는 “호감이 가는 상대방에게 매너있게 대화를 요청하면 대개는 이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특히 “다들 결혼생활의 실패로 인한 상처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진지한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파악하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그는 이어 “클럽이 8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연락처를 교환한 분들은 밖으로 나가 조용히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는 분들도 상당수”라 귀띔했다.무엇보다 이 클럽의 주목할만한 특징은 나이트에서나 이뤄질법한 ‘부킹서비스’다. 마음에 들어도 선뜻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남녀들을 위한 회사측의 배려인 셈.이들은 처음 만나 다소 어색할 수 있는 남녀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유도해주는 한편, 한쪽이 마음에 드는 이성을 지목하면 그 상대방에게 의사를 대신 물어보기도 한다.대치동에서 온 김경희(35·가명)씨는 성격차이로 작년에 이혼한 뒤 혼자 지내오다가 이곳을 찾게 됐다.검정색 빌로드 정장에 핑크색 스카프로 한껏 멋을 낸 김씨는 “이혼 후 처음으로 이렇게 멋을 내고 외출한 건 처음인 것 같다. 기분이 괜찮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김씨는 “재혼을 하고 싶어도 말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솔직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소문을 듣고 와봤는데 생각보다 덜 어색해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생각보다 젊고 멋진 분들이 많아서 놀랐다”는 말로 대신했다.상대 남성의 부탁으로 커플매니저를 통해 쪽지와 명함을 전달받은 30대 여성은 “내게 호감을 갖는 남성이 있다니 기분좋다”며 흡족해했다.여의도에서 왔다는 최석원(38·가명)씨는 모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는 엘리트 남성이다. 그는 “바쁜 일상에 쫓겨 재혼 상대자를 찾는 것이 사실상 힘들었다. 이런 클럽이 있어서 다행”이라 말했다. 그는 이어 “조금전에 마음에 드는 여성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내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무척 예감이 좋다”며 쑥쓰러운 듯 웃었다. 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30~40대의 남녀가 모인 자리이기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볼거라는 예상과 달리 클럽의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하고 활기찼다. 저녁 7시. 파장 한 시간을 앞두고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이들의 목소리가 훨씬 커졌고 여전히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이미 커플이 되어 간단한 음료나 드링크를 놓고 나란히 앉아 대화를 하는 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40대로 보이는 한 남녀는 바에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후한 이미지의 남성은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드문드문 대화를 유도해나가고 여성은 상당히 신중한 표정으로 호응하며 남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대화 중간중간 남성이 우스갯 소리를 하자 여성은 무척 유쾌한 듯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큰 소리를 내어 웃기도 했다. “나이도 같고 둘다 한번씩 실패(이혼)한 처지라…. 대화가 잘 통한다”는 남성의 말에 여성은 부끄러운 듯 직접적인 대답은 회피했지만 남성의 말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한 여성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서 인사를 하고 명함을 내밀었다.서로의 감정이 통했는지 이내 이 남성은 여성의 테이블에 합석하여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갔다. 마포에서 왔다는 정민석(32·가명)씨는 이혼한지 석달 된 치과의사.그는 “(이혼한지 얼마되지 않아)조금 이른감도 있지만 용기를 내서 와봤다. 어차피 평생을 혼자 살 것도 아니어서 마음 맞는 상대를 찾아 새출발 하고 싶다”며 클럽에 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어떤 여성을 원하는지에 대해 그는 “어느 정도 외모가 되는 여성이면 좋겠다(웃음). 중요한건 아이가 없어야 된다”고 말했다.
이날 클럽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비록 재혼이지만 ‘자신만의 이상형’을 정해놓고 근접한 상대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초혼자와 다를 바 없었다.‘대충 맘 맞는 사람끼리 맞춰 가며 살자’는 식의 논리는 더 이상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 듯했다.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배우자감에 대한 소망을 초혼자보다 더욱 당당하게 표명했다. 이들은 자신의 이혼에 대해서도 솔직한 태도를 보였다.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경제력 있는 남성을 원한다. 결혼생활이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아무래도 현실적이되는 것 같다”고 솔직히 답했다. 행복출발의 최원일(51) 대표는 “이미 재혼은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재혼 희망자들이 모일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이 클럽은 재혼을 원하는 이들 누구나 원하는 상대를 만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오픈했다”고 전했다.
재혼클럽 운영 ‘행복출발’최원일대표 “재혼 희망자들 반응 폭발적”
“재혼은 이미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았다”며 재혼문화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행복출발’ 최원일 대표를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우리나라의 재혼문화를 어떻게 보는가.▲ 사실상 여태까지 재혼자들은 새로운 상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재혼에 대한 의사표현도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재혼자들이 마음놓고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 클럽을 운영하면서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 클럽의 모든 시스템은 재혼을 희망하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지 못했던 많은 분들의 입장에서 이루어진다. 남들 의식하지 않고 이 공간에서만큼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진솔한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이 클럽을 이용한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 과히 폭발적이다. 그동안 재혼 희망자들이 얼마나 이러한 공간을 필요로 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 오는 분들의 성향은 어떤가.▲ 30~40대 이혼자가 가장 많다. 전문직도 상당수다.
- 재혼 대상자를 고를 때 어떤 점을 중시하는가.▲ 초혼과 다를 바 없다.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을 중요시 한다.
- 초혼자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재혼자의 경우 아무래도 아이의 유무가 가장 큰 관건으로 작용한다. 물론 아이가 없는 것을 선호한다.
- 재혼 희망자들은 초혼자들과 비교해볼 때 아무래도 나이가 있을텐데 어색해하지는 않나.▲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체면차리고 눈치보는 20대에 비해 무척 솔직하고 적극적이다.
- 재혼자끼리의 만남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면.▲ 반응이 무척 빠르다는 것이다. 서로 마음에 들 경우 무척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만큼 성혼율도 높다.
- 클럽이 운영되는 시간이 4시부터 8시까지인데 너무 이른 시간에 닫는 것은 아닌가.▲ 시간이 길다고 만남이 이뤄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호감을 느낀 분들은 연락처를 교환하고 개인적으로 약속을 잡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다. 또 밤늦게까지 운영할 경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나(웃음).
- 회사와 클럽을 운영하면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재혼은 더 이상 숨길 일이 아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짝을 찾아 행복한 새출발을 할 수 있는 재혼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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