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했지만…
불편한 진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했지만…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3-06-24 10:47
  • 승인 2013.06.24 10:47
  • 호수 999
  • 5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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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열린 한국과 이란의 2014 브라질월드컵 A조 최종예선전에서 패한 한국 대표선수들이 무거운 걸음으로 관중에게 향하고 있다. <뉴시스>

3연전서 조직력, 골 결정력, 공격력, 수비, 리더십 모두 실종
1년 남은 본선무대 원점에서 밑그림 제대로 그려야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최종 예선 과정에서 졸전으로 비난을 면치 못했던 최강희 호가 마지막 경기인 이란전에서 패배를 당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불구하고 침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그동안 어렵게 벌어놨던 승점 덕에 브라질 무대를 밝게 됐지만 축구대표팀의 전력은 후퇴해 한국축구의 강점이었던 탄탄한 조직력도, 정교한 플레이도 볼 수 없었다. 이제 월드컵 본선은 1년이라는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에게는 기적이 아닌 실력이 필요할 때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4 피파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8차전에서 후반 15분 수비수 김영권(24·광저우 에버그란데 FC)의 실수로 이란의 레자 구차네자드(스탕다르 레이주)에게 결승골을 허용해 0-1로 패했다.

이란은 5승1무2패로 A조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4승2무2패(승점 14점)로 같은 시간 카타르를 5-1로 누른 우즈베키스탄과 골득실에서 앞서 간신히 조 2위로 본선 티켓을 따냈다. 이로써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8회 연속은 아시아 최초이자 브라질(19회), 독일(15회), 이탈리아(13회), 아르헨티나(10회), 스페인(9회)에 이어 세계 6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형편없는 경기내용 때문에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값진 결과는 퇴색해 버렸다. 경기 후 이어진 출정식에서는 축구팬들의 싸늘한 질타만이 경기장을 매웠다. 여기에 시한부 감독이었던 최 감독이 사임하면서 본선무대를 1년 앞두고 축구대표팀은 방향타를 잃어버렸다.

이에 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를 열어 새로운 사령탑을 세울 예정이지만 본선무대를 위한 대표팀의 준비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조로운 뻥축구의 몰락

이번 이란전에서 축구대표팀은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이동국(34·전북 현대), 김신욱(25·울산 현대)을 투톱으로 앞세웠고 좌우 날개에 손흥민(21·레버쿠젠)과 지동원(22·선덜랜드)을 배치했다. 반드시 승리해서 자력으로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반면 이란은 철통같은 수비를 내세웠다. 공격수 레자 구차네자드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수비에 가담했다. 이처럼 공격에 무게를 실은 만큼 한국은 전반 점유율에서 이란에 68대 32로 크게 앞섰고 슈팅 숫자에서도 전후반 도합 14대 1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하지만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전한 김영권의 실수로 이란의 골이 연결되면서 한국축구의 위상은 무너져 버렸다.

더욱이 한국 선수들은 시종일관 하프라인 주변에서 김신욱을 향해 볼을 띄웠을 뿐 그 볼을 받아 슛까지 마무리하는 선수는 찾기 어려웠다.

이런 전술은 이란의 작심한 밀집수비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가까스로 김신욱 머리에 닿은 후 그라운드에 떨어진 볼은 어김없이 이란 선수들의 차지였다. 이 같은 패턴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특히 손흥민은 선발 출전했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공격력을 살리지 못했다.

중원에서는 기성용(24·스완지 시티)과 구차철(24·아우크스부르크)의 공백이 컸다. 그 중 기성용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현 대표팀에선 기성용처럼 좌우로 넓게 벌려주고 적재적소에 전방으로 패스를 공급하는 선수가 없었다. 간헐적이나마 왼쪽 측면으로 김영권이 패스를 제공했지만 김영권이 무리하게 전진해서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다가 위기를 맞은 꼴이 됐다. 결국 이번 이란전은 중원 지휘관 부재의 문제점을 절감한 경기였다.

여기에 한결같이 구식의 ‘뻥축구’를 추구해온 최 감독은 최신 트렌드인 미드필드를 도외시하는 바람에 국내파 선수와 해외파 선수 간의 조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겉돌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추락한 최강희 호는 비장한 각오로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을 준비했지만 경기력 후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남겼다. 이날 BBC방송의 한 관계자는 “한국대표팀은 해외파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경기력은 예전 박지성과 이영표, 김남일이 뛰던 시절보다 약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3연전에 대해 사라진 조직력, 골 결정력 부재, 빈약한 공격력, 뻥 뚤린 수비, 리더십 부재 등을 손꼽았다.

최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아쉽다”면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주었고 준비도 잘 했는데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경기가 흘렀고 결국 패했기에 감독인 내가 책임을 저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예선전까지만 이끌겠다고 강조했던 최 감독은 시한부 감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과에만 집중해 씁쓸한 본선진출만을 남기고 대표팀을 떠났다.

근시안적 전략
대표팀 몰락 예견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남자 국가대표팀의 최강희 감독과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본인의 사임 의사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최 감독에 대해 “2011년 12월 취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어려운 중책을 맡아 당초 목표한 월드컵 최종예선 돌파의 소임은 물론,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6번째인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다”며 최 감독의 건승을 기원했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의 참담한 결과는 축구협회의 근시안적 전략에서 비롯됐다. 우선 조광래 전 감독에서 최 감독으로 교체하는 과정부터 한국 축구의 대혼선이 예견 됐다.

조 전 감독은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과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월드컵 본선이라는 세계 무대에서 강호들과 한 번 싸워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는 세계와 겨뤄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김보경(24·카디프 시티)을 비롯해 손흥민, 지동원 같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선수들을 꾸준히 기용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또 이동국이 K리그에서 절정의 골 결정력을 보여줄 때도 선뜻 눈을 주지 않은 것도 이동국의 나이 때문이었다.

조 전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본선이 열릴 때면 이동국이 35살”이라며 “그 때까지 저 기량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조 전 감독은 바르셀로나 스타일의 빠른 패싱축구를 추구했다. 이는 2011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비록 일본에 승부차기로 지기는 했지만 경기력과 가능성만큼은 인정받았다.

반면 최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아시아 최종예선 통과까지만 책임지겠다며 역할을 한정했고 자신이 월드컵 본선에 나갈 만한 감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또 대표팀도 박주영 중심에서 이동국 중심으로 개편했고 소속팀에서 설 자리를 잃은 박주영과 지동원 등 해외파도 주전에서 밀려났다. 결국 최 감독은 당장의 경기력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렸고 중심이 돼야 할 해외파는 겉돌고 국내파는 부족한 면모를 보이면서 우왕좌왕한 꼴이 돼버렸다.

이에 대해 이제는 대표팀 운영에서 중장기적인 비전수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새로운 감독이 오더라도 1년 안에 대표팀의 경기력을 대폭 끌어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당장 내년 월드컵에서의 성적을 기대하기보다 2015년 아시안컵,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대비한 긴 안목이 필요하다는 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홍명보 고사
새사령탑 오리무중

▲ 한국 축구 대표팀 새 사령탑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홍명보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 <뉴시스>
수많은 문제점만을 노출한 축구대표팀은 당장 새 사령탑을 꾸리는 데에 비상이 걸렸다. 협회 측은 수개월 전부터 물밑에서 ‘포스트 최강희’ 선임 작업을 벌여왔다. 물론 최종예선을 치르는 상황에서 새 사령탑을 물색하는 모습이 대표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해 정중동 행보를 펼쳤다. 하지만 본선 진출이 확정되면서 기술위원회를 열어 본격적인 후임자 논의에 들어갔다.

협회는 세뇰 귀네슈 전 FC서울 감독을 포함해 4명의 후보를 정했다. 특히 이 중 2010년 광저우아시아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등을 통해 지도력을 입증 받은 홍명보 감독을 적임자로 보고 영입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국내 지도자 중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가장 유력하다”며 홍명보 감독 선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감독설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난색을 표했고 이번에도 축구협회에 거절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장기적인 플랜 아래 선수들의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는 스타일을 추구해온 그에게 1년도 채 남지 않은 월드컵에서 A대표팀을 이끌고 나서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지난해 런던올림픽 동메달 쾌거도 2009년부터 세운 홍 감독의 장기 계획의 결과물이었기에 협회 측의 설득은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다음달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 대회 최종전에서 한일전을 준비해야 하는 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축구전문가들은 위기의 축구대표팀에게 홍 감독이 적임자라고 보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홍 감독은 국내파와 해외파 가리지 않고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다. 또 느슨해진 대표팀 결속력을 한 데 모을 강력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기성용, 구자철, 박주영 등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일군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이 A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감독들이 갖고 있는 학연 지연 리스크를 홍 감독이 이전 대표 팀에서 완전히 타파한 모습을 보여 이미 검증된 감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홍 감독이 끝까지 감독직 수락을 고사한다면 새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은 당초 예상보다 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원정 8강 진출 위해
원점에서 재정비

힘겹게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통과한 축구대표팀은 약 한 달간의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인 본선 준비에 돌입한다. 우선 다음달 동아시안 컵을 통해 새 출발하는 대표팀의 조직력을 단기간 내에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시안 컵 대회에는 한국과 일본, 호주, 중국이 참가하는 가운데 일본과 호주가 본선 진출을 확정해 본선 평가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아시안컵이 끝난 뒤 8월부터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국가대표 경기) 데이가 11월까지 이어져 평가전의 의미를 넘어 축구 강호들과의 경기를 통해 기량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일정에 앞서 브라질월드컵에서 첫 원정 8강 진출을 목표로 하는 축구대표팀에게는 신임감독과 함께 빠른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선수 자원이 충분한 가운데서도 최종 예선 내내 무색무취의 전략으로 일관해왔고 매 경기 주전이 바뀌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여 왔다. 또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 이후 뚜렷한 리더도 보이지 않는 등 원점부터 재정비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결국 차기 감독은 대표팀 전력을 다시 맞춰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제 본선 운명을 가를 월드컵 조 추첨은 오는 12월 7일 새벽 브라질 바이아주의 코스타 도 사우이페에서 열린다. 대표팀 엔트리도 본선을 한 달 여 앞두고 확정된다. 이에 최종예선을 통해 무너진 한국 축구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제대로 된 밑그림을 그려 나가길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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