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정수기 렌탈업체가 임대료만 챙기고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더욱이 매년 피해 사례가 20%이상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근본원인 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 자체 조사에서도 렌탈정수기 수질 부적합 상태의 원인이 ‘관리 소홀’로 밝혀진 만큼 정수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사례 1.A씨는 정수기 렌탈 계약 기간 도중 정수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냉수기 내부에 이물질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수기 업체는 환급을 거부한 채 렌탈료만을 계속해서 청구해왔다.
#사례 2.지난해 12월 B사 정수기를 렌탈한 C씨. 사무실 위치를 옮기면서 정수기를 해약하게 된 C씨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위약금으로 46만 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C씨는 “정수기를 한 대 사는 것도 아니고, 렌탈비가 밀린 것도 아니였기 때문에 청구된 위약금이 너무 과하다고 느껴졌다”며 “위약금 내용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상담사는 내부 규정에 의해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또 “지불해야 하는 돈의 산정 기준이 소비자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 돼 업체 간 비교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현대위가드·한샘이펙스·제일아쿠아·청호나이스 順 불만
판매자 권유로 가입…부당한 조사 결과 대응엔 무책임 설파
유명 포털사이트 등에는 정수기 관리 상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똥물 정수기, 청소·유지관리 엉망’이란 내용의 글을 올린 작성자는 “4년 전부터 렌탈해 매번 청소 관리를 받고 있는 정수기에서 갈색 물때들이 나왔다”며 “정수기인지 변기통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상태에 놀라 기계 내부를 들여다보니 꼭지 안쪽이 누렇게 돼 있었다”고 말하며 정수기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육안으로 보아도 이물질이 가득히 보이는 내부를 닦아낸 후 물을 따라 보아도 침전물은 여전히 가득 쌓여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접수된 렌탈정수기 소비자 피해는 총 411건에 이른다. 2010년 103건, 2011년 137건, 2012년 171건으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전년동기대비 48.4%나 증가했다. 국내 정수기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며 정수기 상품의 다양화를 이룬 반면, 업계의 내적 성장은 제자리걸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중 관리 업체의 정기적인 청소, 필터 교환 소홀 등으로 발생한 피해가 136건 33.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일부 업체는 업체의 관리 소홀로 인해 정수기 내 곰팡이, 물이끼 발생, 벌레 유입 등의 위생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로부터 렌탈 비용을 꾸준히 인출해 간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이외에도 중도 계약 해지 요구에 대해 과다한 위약금 청구, 처리 지연 등의 ‘계약’과 관련된 피해는 31.4%(129건)로 나타났다.
사업상의 이유로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며 위약금을 지불한 C씨는 “상담원으로부터 정수기 해약 위약금의 근거와 등록비가 어디에 무엇을 등록하는 비용인지를 묻고 싶었는데 정작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답변해 준 것이 없어 답답했다”며 “월 3만 원 가량의 금액을 지불하며 3년씩만 사용해도 총 120여만 원을 내게 되는 것인데 임대료를 책정할 때 해약하는 사람들에 대한 손해를 계산해 책정했으면 해약금이 적어야 하고, 해약금을 많이 받는다면 월 임대료라도 적게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내용을 일방적으로 업체에 유리하게 바꾸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소비자원은 “3개월 치 렌탈료를 대납해준다며 계약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구두로 이뤄진 내용은 본사에서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특약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해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정수기 오염수 배출관과 싱크대 배수관의 연결이 불량하거나 부품 불량으로 인한 누수로 마루가 훼손되는 등 ‘설치 및 제품상 하자’ 관련 피해가 19.2%(79건)를 차지했다.
뒤늦게 ‘관리자 교육 강화’ 실시
한편, 소비자들의 불만이 가장 많이 접수된 업체는 현대위가드, 한샘이펙스, 제일아쿠아, 청호나이스가 각각 6.9건, 5.0건, 4.3건, 2.3건 순으로 나타났다.(2012년도 판매 1만대 당 소비자 피해 접수 건수) 시장점유율 상위 업체인 코웨이, 동양매직, 청호나이스 중에서는 ‘청호나이스’가 2.3건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 쿠쿠전자, 코웨이, 동양매직, LG전자, 교원은 각각 0.9건, 0.6건, 0.4건, 0.4건, 0.4건 순으로 피해 수가 비교적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위가드는 “소비자원에 보고된 피해 접수 건수는 사실이지만 판매대수가 1만여 대가 아니라 3만3000여 대다”며 “생산 방식의 차이에 의해 실제 판매 대수의 집계가 잘못된 자료로 계산됐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판매 대수로 계산하면 현재 집계된 6.9건이 아니라 타 업체들과 유사한 평균 수준의 건수이지만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이는 것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위가드는 현재 한국소비자원의 발표 이후 대책회의를 통해 대리점 교육을 철저히 하고, 소비자들의 피해 신고에 보다 민감하게 대처하기 위해 필터 교환, 점검 시 방문 서비스를 보다 강화할 계획이다.
하위권에 속한 교원의 관계자는 “렌탈을 전문으로 하다보니 ‘관리’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업 자체의 경쟁력을 잃는다고 판단해 관리자들의 교육 과정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덕분에 이번 조사에서 불명예를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관리자 분들이 업무가 몸에 익을 때 까지 현장교육을 실시하고, 연수원 교육 이외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소비자들의 피해 발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 청호나이스, 코웨이 측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차후 연락하겠다는 말만을 남긴 채 묵묵부답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은 “렌탈정수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계약을 이행할 때 ▲청소, 필터교환 등 정기적인 관리와 관련한 내용 확인 ▲렌탈기간과 임대료 등 특약 사항 등 계약서에 기재 ▲계약기간 완료 시점에 자동이체내역 및 계약내용 변경 여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