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전문성 강조’가 ‘관료 중심의 인사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을 구성하면서 관료 또는 학자 출신을 대거 중용했다. 민간과 공공기관 주요직에도 관료 출신들이 입성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관료로 둘러싸여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정치권 출신들은 운신의 폭이 제한돼 있는 상태다. ‘관치(官治)’와 ‘정치권 소외’ 논란이 일면서 대선 공신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료들이 정책 집행 능력은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조정능력이 떨어지고, 부처 이기주의에 갇히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어 ‘창조경제’를 내세운 국정철학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료 문화 국정 발목 잡는다
박근혜 정부는 1970년대 관료중심 국정운영을 본 떠 관료 출신이 주축을 이룬 권력구조를 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관료를 선호하는 것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 완성을 위해선 설정된 목표를 향해 업무를 조직하는데 익숙하고 충성심이 강한 관료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김충남 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대통령과 국가경영’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 “박정희는 근대국가가 몇 사람의 우수한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능률적인 행정조직과 잘 훈련된 공무원들에 의해 이룩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전문성과 업무능력은 뛰어나지만 조직이기주의, 부처 칸막이 등의 관료 문화가 국정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료들은 박근혜 정권 초기 박근혜식 개혁정책을 주도해야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지시사항 외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관료들의 수동적 성향은 밀양 송전탑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미리미리 선제적으로, 진정성을 갖고 노력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며 질책을 쏟아내기 전까지 관력수석실과 정부부처는 송전탑 사건에서 두 손 두 발 놓고 있었다.
역대 정권들은 ‘관료 개혁’을 부르짖고도 임기 중반으로 갈수록 관료들에 둘러싸였던 전례를 본다면 박근혜 정부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관료들의 입김이 더 세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본인의 승진 우선주의, 조직이기주의, 부처 칸막이 등과 같은 관료주의 폐해의 직격탄을 임기 초부터 맞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 역시 관료 중심 권력구조의 한계에 대해 어느 정도 실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지난달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노력은 했는데 안 된다는 말은 안 통한다. 일반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반드시 성과를 내라”고 다그쳤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박 대통령의 지시에도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또 관료들은 부처 이기주의에서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박 대통령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라고 강조해도 정작 청와대 수석실 사이에도 업무영역에 대한 신경전이 상당하다. 자신의 업무를 다른 수석실에서 관여하는 것에 대해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국정기획수석실이 미래전략수석실의 창조경제 업무에 '조언'하면 미래전략수석실이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식이다.
박 대통령 역시 지난 19일 ‘정부3.0 비전 선포식’에서 “저는 정부 3.0을 통해 정부와 민간, 중앙과 지방, 정부 부처 간의 칸막이를 없애고 긴밀히 소통해 나간다면 우리 사회의 어려운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국민의 삶도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부처 간 칸막이 없애기’에 대해 경계하고 나섰다.
관료 출신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도 드러내고 있다. 관료 출신들은 국정철학을 업무 전반에 녹여내기 보다는 국정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선’을 빚는 모습을 자주 노출됐다. 급기야 대통령이 지난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발언 상당 부분을 국정 철학 공유와 부처 간 칸막이 해소, 정책 혼선 질타에 할애, 내각 군기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권 인사, 논공행상서 제외
관료 약진이 현실화되는 반면 정치권 출신 참모들에 대해서는 과거 정권처럼 코어 그룹으로 인정해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해온 인사보다는 앞으로 정책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새 정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출신들도 스스로 입지를 좁히거나 한정된 입지 속에서 별다른 역할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치권 출신 참모들의 존재감 상실과 실패 책임을 함께 나눠질 수 있는 코어그룹 부재는 임기 중반으로 갈수록 박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허태열 비서실장과 이정현 정무수석의 경우 박 대통령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적극적 참모 역할보다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고 심기를 살피는 비서 역할에만 머무르는 분위기다. 이 같은 문제는 여당에서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새누리당 쇄신파인 김성태 의원은 “(청와대의) 정무 기능이 실종됐다”며 “사람들이 청와대만 들어가면 그냥 일방통행 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이정현 정무수석이나 김선동 정무비서관, 허태열 비서실장 등이 핵심참모로서 대통령을 향해 때로는 노(NO)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정권창출에 공을 세운 정치권 인사들이 논공행상에서 사실상 제외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또 관료 출신과는 달리 정치권 인사들의 경우 수적 열세와 직급의 한계 등에 갇히면서 이 정권에서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다. 향후 이들이 정권에서 소외될 경우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치권 인사들은 대선 승리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홀대’를 받고, 외부 영입 인사이 새 정부 주요 요직을 차지하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당초 예상과는 달리 관치금융이 주요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날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이 “모피아(금융권 장악한 옛 재무관료를 빗댄 말)가 다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어봤느냐. (최근 같은 상황이면) 금융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며 총리를 몰아붙였다. 또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의 사퇴가 금융 감독 당국의 압력 때문’이란 이야기가 정치권 주변에서 설득력을 가지면서 부산을 중심으로 한 여당 의원들 불만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관료공화국’이라는 우려에 대해 청와대는 오히려 방어에 나서고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좋은 관치도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며 관료 기용 의사가 더 있음을 내비쳐 박근혜 정부의 관료중심 권력구조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