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초대석]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물초대석]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3-06-24 10:02
  • 승인 2013.06.24 1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외유출 문화재 반환 민간보다 국가가 나서야"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도자사 연구를 개척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우리나라 미술사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원로학자다. 국내 도자기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 전 관장은 1962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박물관과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힘쓴 그는 ‘한국미술 5000년 전’을 관리·기획해 미국 8개 도시, 일본 3개 도시, 영국, 독일 등에서 순회 전시회를 감독했다. 또 199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한국관이 설치될 당시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미술사학에 일생을 바쳐 연구한 정양모 전 관장. 그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고려청자에 대한 시장가치가 예전에 비해 1/10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희소성과 가치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문화재를 구입하면 ‘쓸데없이 돈 자랑 한다’며 되레 욕먹는 국내 정서가 팽배하다”며 “문화재 가격이 비쌀수록 위대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현상이 씁쓸하다”고 전했다. 지난 2010년 영국 베인브릿짓 경매에서 중국 청대 도자기 한 점이 한화로 973억 원에 거래되면서 아시아 고미술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반면 우리 문화재는 18억 원에 낙찰된 ‘백자청화운륭문호’가 경매 최고가였다.
 
- 30년이란 세월동안 유물 전시 박물관들도 많이 발전했다.
▲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서양은 2-300백년이나 됐지만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는 이제 8-90년 남짓이다. 서양의 박물관이 발전된 건 그들이 문화가 당시 사상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서양에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 제일 먼저 문화장교를 보낸다. 이들이 먼저 들어가서 그 나라의 문화재를 엄청나게 가져온다. 점령의 목적이 문화수집에 있어서다. 문화재를 가져온 침략국은 그걸 자국민에게 보여주고 국민 문화수준 향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다. 또 약탈한 문화를 자국 문화와 비교·연구해 결론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그들의 약탈은 나쁘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당시 그들이 약탈한 문화재를 박물관에 보관·전시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지도 모를 것들도 많다. 문화재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은 결국 국민의 문화수준을 높인다. 동시에 세계인의 안목도 높인다.
 
“문화재의 낮은 관심 국가 책임 커”
 
- 문화재를 바라보는 안목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인식재고가 필요한가?
▲ 예를 들어 일본이라는 나라는 엄청난 문화재 약탈을 통해 자국 문화를 발전시켰다. 역사·문화 등 인문학을 연구하는 일본 지식인의 저변도 엄청나다. 얼마 전 도쿄박물관에서 열린 왕희지 특별 전시회에 다녀왔다. 도쿄박물관은 1·2층 전시실을 전부 왕희지 관련 자료만으로 꾸몄다. 사실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왕희지 글씨는 몇 점 되지 않는다. 전시실 대부분이 왕희지를 연구한 자료들로 구성될 정도다. 그래도 관람객이 몇 시간 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 왕희지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과연 그만큼 사람들이 찾아왔을까 싶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낮다. 국민도 문제지만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 전 세계에서 역사를 안 가르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지금 사람들은 우리 조상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긍심도 자부심도 없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도 이런 정서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동양화보다 서양화가 가격이 월등히 높다. 한국의 위대한 화가인 겸재 정선의 그림이 시가로 4천만 원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놀란다. 반대로 박수근 작품이 3억 원이라면 아무도 안 놀란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서양화가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것을 알고 현대 것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우리 문화재 헐값에 팔리는 실정”
 
- 우리 문화재가 국제 경매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국제 경매시장도 국내시장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세계와 견주어 손색이 없는 한국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도자기는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 도자기를 널리 알려야 한다. 김영삼 정부 이전까지는 우리 도자기에 대한 가치가 중국 것보다 비쌌다. 하지만 IMF를 겪고 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졌다. 그때 떨어진 가치가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고려청자보다 수백 년 후에 만들어진 중국 청나라 도자기는 100배 가까이 가치가 뛰어올랐다. 중국 정부가 해외 유출된 문화재 환수를 위한 노력도 많이 하고, 경제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중국 내 수집가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화재를 구입하면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돈 쓸데가 없어서 저런 거나 산다’고 엄청나게 욕을 한다. 유일하게 간송 선생만 애국자라고 칭찬한다. 예전에는 삼성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많이 사서 해외 유출을 막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호암 선생도 박물관을 만들어서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 요즘엔 삼성도 하도 비난 여론이 많으니깐 더 이상 우리 문화재를 구입하지 않는다. 큰 게 안사니깐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 문화재 가격이 형편없는 수준이 됐다. 예전에 10억 원 이었다면 지금은 1억 원에도 안 팔린다. 문화재의 가치라는 게 가격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람들은 문화재 가격이 비쌀수록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 문화재 가격이 떨어진 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부족해서다. 우리 문화재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간직하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중요한 우리 유물들은 가치를 알아보는 서양 사람들에게 헐값에 팔리는 실정이다. 
 
- 199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한국실 설치 준비 총감독을 맡았다. 미술관 내 한국관이 중국, 일본 등 다른 관에 비해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저조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뉴욕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박물관에 한국관 자체가 없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김영삼 정부 때 우리 외교부에 국제문화교류재단과 자문단이 생기면서 박물관과 협조를 시작했고 1998년 드디어 한국관이 생기게 됐다. 한국관 규모는 중국관의 1/50, 일본관의 1/30 밖에 안 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주관이 분명한 미술관이라 전시관을 위해 돈과 유물 모두 우리가 지원해야만 한다. 한국관을 만들기 위해서 미술관 내에서 있는 기존의 것을 전혀 건들이지 않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겨우 자투리 공간 밖에 얻을 수 없었다. 미술관 측에서는 한국관을 안 만들려고 했지만 한국 문화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시를 허가해 준거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 보다 우리 문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 일본에 되돌려 줘야”
 
- 최근 한국 절도단이 일본에서 14세기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온 사건에 대해 대전지방법원이 유체동산점유 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렸다. 이번 사건처럼 불법 반입된 문화재를 되돌려줘야 하는 건가?
▲ 국민감정을 보면 돌려주면 안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에 되돌려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약탈했을 수도 있고. 조선정부에서 줬을지도 모르는 문화재다. 이미 몇 백 년이나 시효가 지났는데 빼앗아갔다고 도로 훔쳐서 가지고 돌아오면 똑같은 도둑이 될 뿐이다. 침략국이 도둑놈인 건 당연하지만 우리는 선비의 나라다. 그리고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우리 문화재 훔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나는 일본에 되돌려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 해외유출 문화재가 상당하다. 외규장각의 경우처럼 민간차원에서 반환 요구 중인 문화재가 있나? 
▲ 민간 차원에서 해외유출 문화재를 반환하려면 한계가 있다. 우선 그 나라 박물관에서 유물 파악부터 해야 하는 데 그걸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시간·금전문제로 어려움이 많다. 해외유출 문화재 반환은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국가 지원 재단을 만들고 전문가들에게 맡겨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부가 세워진 이후 곧바로 착수했어야 할 일을 정부는 지난해가 되서야 겨우 국외 소재 문화재 재단을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외교사절로 오거나 침략하면 문화재부터 가져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깐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상당한 규모다. 우리 문화재의 연구·보존을 위해서라도 해외유출 문화재 회수가 필요하다.
 
“문화재 보호 인식·연구 저변 취약해”
 
- 2010년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국보급 매병 2점이 발견됐다.
▲ 바다에서 문화재를 발굴하는 것에도 문제점이 많다. 우리나라 연근해는 복잡하다. 기록을 봐도 연간 수십만 척이 침몰했다. 문제는 당시 문화재청에는 조사를 위한 배 한 척도 없었다. 다이버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문화재청은 해군에 지원 요청을 했다. 겨우 해군의 도움으로 선박이랑 다이버를 지원받았다. 그렇게 장비를 빌리고 유물을 찾으려고 해도 망망대해에서 도저히 찾을 수 가 없었다. 결국 법무부에 요청해 형무소에 있는 어부를 불러 위치를 찾아 겨우 유물을 인양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해저에 발굴되지 않은 유물이 엄청나게 많지만 이를 연구·발굴할 수 있는 곳은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유일하다. 나는 해양 문화재 연구를 위해선 적어도 인천, 부산 등 서너 곳에는 더 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회에서 예산을 배분해 주지 않아 지금 목포에 있는 연구소도 겨우 유지하고 있다. 2010년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청자 매병 2점은 시대도 질도 떨어지는 편이지만 적어도 문화재청의 기술과 인력으로 찾아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둔다.
 
- 2007년 강진청자 감정가를 두고 학계와 고미술협회와 갈등이 있었다.
▲ 고미술협회는 고미술을 주로 취급하는 상인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단체다. 학회도 협회도 고미술품 감정을 할 수 있기에 서로 다른 감정가를 내놓을 수 있다. 현재 미술품 감정은 주로 감정위원의 육안에 의존하고 있다. 성분 분석이나 X레이 분석 같은 과학기법으로 문화재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다소 제한적이다. 본래 고미술품 가격이라는 건 작품 소장자와 구매자가 합의하면 그만이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평생 도자사를 연구한 학자로서 당시 감정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학계와 협회 간 갈등이라고 비화하는 건 현 시점에선 적절치 않다고 본다. 
 
- 끝으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재 정책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 문화는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정부 예산 중 100분의 1만 문화에 투자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어느 정부도 그런 적이 없었다. 문화에 투자하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인식하길 바란다. 또 다른 분야와 달리 급진적이거나 개혁적이지 않은 정책으로 문화재를 보호하길 바란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