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최근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국정원 댓글녀’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검찰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었던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지만 검찰은 불구속 기소하면서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이어 검찰내에선 대형 정치사건으로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관련 재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이현동 전 국세청장의 개입 의혹이 있는 관봉 5천 만 원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세청을 긴장케 만들고 있다.

관봉 5천만원 미스터리 MB 측근 재등장
‘관봉 5천만원’은 작년 류충렬 전 총리실 국장이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인멸 사건관련 입막음조로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전달한 돈이다. 장 전 주무관이 돈을 받은 사실을 폭로하면서 일파만파로 커졌지만 돈의 출처와 전달 경로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검찰 수사가 종료됐다. <일요서울> 992호 ‘민간인 불법사찰 관봉 5000만원 미스터리 풀렸다’(20113년 5월6일자)는 제하로 H기업의 K 전 부회장이 자신의 운전사 역할을 했던 S씨를 통해 당시 이 전 국세청장에게 전달됐으며 이 전 청장은 자신의 심복인 H씨와 G씨 등 청와대에 파견을 나간 국세청 직원을 통해 장석명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보도했다.
이에 장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에게 관봉 5천만 원을 건네면서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줄 것을 주문했고 장 전 주무관은 이를 폭로하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결국 검찰은 관봉의 출처는 밝혀내지 못했으며 박영준 전 차관 기소,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구속,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기획총괄과장 구속, 그리고 장 전 주무관은 집행유예 선고를 내리면서 막을 내렸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채 유야무야 끝이 난 셈이다.
청와대, 검찰 임태희 전 실장 예의주시
하지만 본지가 취재가 들어가면서 청와대 사정기관팀에 제보가 들어갔고 민주당 역시 관봉 5천만원에 대한 당내 조사가 이뤄지면서 검찰이 다시한번 사건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름이 거론되면서 박 전 차관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 인사가 재차 등장했다. 이미 임 전 비서실장은 각종 언론을 통해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이인규 전 지원관과 진경락 전 과장 가족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을 사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지난 2010년 추석 전후로 자신이 노동부 장관 시절 데리고 있던 이 지원관과 진 과장이 구속돼 가족들이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기라도 사먹으라며 금일봉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에 비서실장으로 가면서 임 전 실장은 두 인사나 가족들을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2010년 7월부터 2011년12월까지 대통령실 실장으로 역임한 바 있다.
또 임 전 실장은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4000만원을 전달한 인물로 지목된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등장하면서 재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전 보좌관은 한 통신사와 인터뷰를 통해 2010년 8월 여름휴가를 마치고 몇몇 지인들과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 당시 불법 민간사찰 의혹으로 구속된 이인규 지원관과 진경락 과장의 변호사 비용을 모아보자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지인들이 흔쾌히 동의를 했고 이 보좌관은 가장 돈을 많이 낸 지인에게 돈 1000만원을 빌리면서 800만원을 더 보탰다.
이 전 보좌관은 “지인들은 모두 개인 사업자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이 같은 나의 부탁에 흔쾌히 돈을 보탰다”며 “나도 안낼 수가 없어 돈을 빌려서 냈고 총 7명 내외의 적은 인원이 모여 4000만원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돈을 장 주무관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한 이가 최준석 행정관인지 개인 사업을 하는 아무개인지 헷갈리지만 정확한 것은 100%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다”고 강조했다. 4천만원은 2010년 9월쯤 자신의 차안에서 장 전 주무관을 만나 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장진수 전 주무관은 <일요서울>과 6월21일 통화에서 “당시 최준석 행정관이 ‘돈을 받아와라’해서 나가 이 전 보좌관 차안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며 “그러나 돈이 4천만 원인지는 몰랐고 최 행정관에게 전달하니 당시 내 변호사비용 1500만원을 제하고 나머지 2500만원은 자기 달라고해서 줬다”고 회고했다.
이 전 보좌관은 2008년 4월 고용노동부 정책보좌관으로 왔고 그 이후 2009년 7월 임태희 전 실장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오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에도 이 전 보좌관은 임 전 실장의 팬카페 운영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전 보좌관의 각종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심스러운 대목이 단순히 이 보좌관이 전달한 4000만원이 이인규와 진경락의 변호사 비용이 아닌 장 전 주무관의 변호사 비용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또 이 전 보좌관은 이인규 지원관과 고용노동부에서 업무로 만나 알고 있지만 진경락 과장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임에도 변호사 비용 마련을 위해 왜 적극 나섰는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결국 임 전 실장이 막후에 있었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야권이 제기하는 배경이다.
청와대 발뺌 “추가 수사 안한다”
민주당 한 고위 인사는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인규와 진경락이 구속된 이후 임 전 실장을 비롯해 MB정권 고위 인사들이 자주 면회를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접견 목록만 찾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장 전 주무관 역시 “임 전 실장은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이 있기 전에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옮겼다”며 “특히 당시 민정수석실의 핵심이 고용노동부 라인의 막강파워가 있어 상당한 의혹이 있던 것은 사실”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또 “당시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이뤄진 점이나 검찰 출신들이 다수인 민정수석실은 처벌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베일에 쌓여진 부분”이라며 “검찰이 보호내지는 은폐한 게 아닌지 이참에 확실하게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의혹을 풀기위해 임 전 실장 보좌관을 지낸 신모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청와대 사정기관의 한 인사는 “첩보가 들어와 조사를 했지만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어서 추가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 수사도 모르는 일”이라고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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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