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신흥부촌 ‘용인 비벌리힐즈’ 가 뜨고있다
한국판 신흥부촌 ‘용인 비벌리힐즈’ 가 뜨고있다
  • 이수향 
  • 입력 2005-03-18 09:00
  • 승인 2005.03.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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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흥부촌 용인 럭셔리타운을 아시나요’ 웰빙바람을 타고 젊은 신흥부자들이 용인 일대로 몰리고 있다. 이제 전원주택을 노년층의 안식처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용인 일대에는 가구당 분양가가 10억원을 훨씬 웃도는 평균 100평대의 고급 주택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이곳에 들어선 고급 전원주택은 용인 행정타운 인근인 유방동 ‘체스넛힐’을 비롯해 골프장 조망권이 뛰어난 남동 ‘은화삼샤인빌’, 웰빙주택을 표방하는 ‘노블랜드’, 기흥읍의 ‘노블힐스’ 등 현재 분양중인 곳만도 십여곳에 이른다. 한국의 비버리힐즈로 부상하고 있는 이 지역에 사는 ‘신흥 귀족’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떨까. 이제 강남은 더 이상 미련 없다.지난 8일 오후 기자는 용인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한 유럽풍 전원주택을 찾았다. 피부과 전문의 한성일(41·가명)씨의 자택. 한씨의 집은 ‘여기가 한국이 맞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이곳은 고층 빌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사람 살만한 곳’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한씨 역시 “자칫하면 중심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박탈감이 두려워 오랫동안 강남을 떠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한씨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방학때 아들이 미국에서 들어오는데 이 집을 너무 좋아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떼를 쓸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또 “강남에서 용인으로 이사간다고 했을 때 ‘그 외진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만류하던 주변 사람들도 요즘엔 부러워한다”며 흐믓해했다.한씨는 요즘 용인의 전원주택에서 새로운 생활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는 퇴근 후 아내와 집안 곳곳의 가구와 소품을 바꾸는 등 인테리어 작업에 한창이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만 해도 한씨 역시 평범한 한국의 가장이었다. 하루종일 환자를 상대하다보니 퇴근하면 피곤에 지쳐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그것은 맞벌이를 하는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요즘 이들 부부는 집 가꾸는 재미에 빠져 침대 커버, 카펫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틈만나면 정원을 쓸고 목조로 이뤄진 집안 내부를 반짝반짝하게 닦는 것은 한씨의 몫이다. 또 일주일에 두 번씩은 퇴근길에 아내와 함께 강남의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부부가 즐기는 와인과 치즈를 함께 고르는 것도 색다른 재미. 금요일에는 동네 사람들과 집에 모여 오붓하게 부부모임을 갖거나 날씨가 좋을 때는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한다. 토요일에는 인근의 골프장으로 라운딩을 나가고 헬스와 스파로 한주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버린다. 이것은 어느 외국영화에나 나옴직한 귀족들의 생활이 아니다. 바로 요즘 한씨 부부가 사는 모습이다. 그들만의 커뮤니티 형성한씨는 “아직도 강남에 집착하는 이들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부부가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인 압구정동의 50평대 아파트를 떠나 이곳으로 온지는 2년전. 한씨는 “초등학생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놓고 이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껴오던 한씨는 고심끝에 영동선 용인IC 근교에 자리한 이곳을 선택했다.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서울 생활권에서 떨어지지 않은 곳을 물색한 결과다. 실제로 한씨의 집에서 병원이 있는 강남까지는 40km로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50분정도. 출퇴근하기에도 큰 무리가 없다.한씨의 집은 천연소재를 이용한 고급 마감재로 지은 70평 상당의 서구식 목조주택이다. 첨단 보안시스템이 작동됨은 물론 인근에는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어 동네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는 것이 가능하다. 부부가 살기에 너무 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는 보통 100평은 훌쩍 넘는다”며 웃었다. 한씨는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강남에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의 자부심은 실로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자신들의 일상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이들은 이곳에서 ‘그들끼리의 문화’를 즐기며 ‘그들끼리의 고급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대우’를 즐긴다.

그는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서 입주자에게 골프장 회원권을 제공하는가 하면 부동산이나 투자에 대한 자문은 물론이고 법률이나 세무상담, 의료지원 등을 서비스로 내세우는 업체도 있다”고 전했다. 고소득 보보스족에 최고인기그렇다면 이러한 곳에 사는 이들은 누구일까. 평균 100여평에 이르는 수도권 일대 호화주택 단지를 보는 시선이 그다지 고운 것만은 아니다.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의 주택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을 벗어났다지만 강남의 웬만한 고급 아파트 가격을 뛰어넘는 가격인 셈이다. 실제로 수도권일대 초호화 주택 분양에 강남의 신흥귀족들이 몰려들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한씨는 “이웃이라 해도 정확한 신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세한 재산 정도나 신분은 모르지만 자녀를 조기유학 보낸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입주자들의 직업은 주로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IT 벤처업계 대표 등 고학력 전문직의 고액 연봉자에 집중되어 있다.한씨에 따르면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한마디로 ‘보보스족’에 해당한다.

젊은 시절 소위 말하는 ‘외국물’을 먹은 유학파들이 많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를 원하는 이들이 다수라는 것. 또 어린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탓에 좁고 복잡한 도심을 떠나 전원주택을 동경하던 사람들도 많다.특이한 사실은 용인일대 고급주택을 찾는 이들의 연령이 점차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씨는 “인생에서 성공한 노년층을 위한 곳쯤으로만 여겼었는데 의외로 젊은층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사는 이 일대만 해도 내 또래의 부부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 전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단연 경제력이다. 한씨는 “우리를 신흥귀족이라 하기에는 그렇지만 솔직히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생활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한씨의 아내 역시 의사로 아내와 한씨가 동시에 벌어들이는 실수입만 해도 한달에 3천만원이 넘는다. 게다가 매달 들어오는 상가 월세 등을 합치면 그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또래 남성이 일년에 벌 것을 한달에 벌어들이는 셈이다.

그러나 한씨는 일부의 부정적인 시선에 신경쓰이는지 “우리 부부는 정말 열심히 벌어서 인생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일부에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초호화판 신흥귀족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과잉소비 일세스족도 점증그는 잠시 망설이다 이웃에 사는 한 30대 부부의 얘기를 꺼냈다. “그들의 씀씀이를 보면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라는 것이 한씨의 말이다. 3살난 딸을 두고 있는 이들 부부가 한달에 지출하는 돈은 대략 2천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자기들의 취미나 문화생활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다. 일반 직장인의 연봉으로 평소에 갖고 싶던 요트를 사는 일도 이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부가 각자 타고다니는 차량은 최고급 외제 세단으로 차 값만해도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을 넘어선다. 한씨는 “여자는 아기도 스위스에서 직수입한 분유를 500ml 한병에 5천원씩이나 하는 생수에 타먹여 키웠을만큼 극성이었다. 셔츠 한 장에 수십만원짜리도 선뜻 사는가하면 수백만원짜리 인테리어 소품도 수시로 사모으는데 우리 와이프가 주눅들 정도더라”며 웃었다.

한씨에 따르면 남자의 지출 역시 대단하다. 남자는 걸핏하면 수백만원에 상당하는 차량의 오디오를 신형으로 바꾸는 일이 취미다. 한씨는 ”한번은 차량 튜닝비만 천만원이 넘게 들었다며 자랑하는데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자신들의 씀씀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한씨가 이들 부부에 대해 아는 것은 남자가 오랜 외국생활을 접고 들어와 무역회사를 경영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남자는 사실상 회사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아내와 용인의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씨는 “우리는 친하게 지내긴해도 집안 얘기를 세세히 하지는 않는다. 또 스스로 얘기하기 전에 물어보는 것도 결례”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상당한 집안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처럼 맞벌이도 아닌데 저런 생활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들 부부를 ‘익세스족’이라 칭했다.

한씨에 따르면 “익세스족이란 극단적(extreme)이고 과장(exaggerate)된 과잉소비를 빗댄 신조어”다. 그는 “익세스족은 과도하고 극단적인 소비성향을 보이는데 대표주자로 영국의 축구선수 베컴과 그의 부인 빅토리아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한씨는 대화내내 “용인일대 고급주택에 신흥부자들이 몰린다해도 다들 저들 부부같지는 않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돈을 물쓰듯 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이다. 우리가 실제로 매일 와인에 치즈를 즐기며 영화처럼 살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한씨는 “언론에서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며 “달라진 점은 강남에 살 때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된 것 뿐 소비형태가 변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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