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전재국 다 털렸다
전두환-전재국 다 털렸다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3-06-10 10:48
  • 승인 2013.06.10 10:48
  • 호수 997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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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컴퍼니 아랍은행이 특별관리”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발 페이퍼컴퍼니 역외탈세 의혹 건에 대한 사정당국의 전방위 조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국씨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것은 2004년, 동생 재용씨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때였다. 재국씨가 조세회피처를 찾은 시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문제가 불거진 때라는 점에서 이 페이퍼컴퍼니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04년 초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뭉칫돈 167억 원이 발견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여론이 상당했다. 재국씨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7월 28일은 재용씨에 대한 1심 판결 이틀 전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재국씨는 이날 싱가포르 선택시티에 소재한 법률회사(PKWA)를 이용해 버진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 코퍼레이션(Blue Adonis Corporation)’이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비자금 은닉처 의혹

조세피난처란 법인이 실제로 벌어들이는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법인세가 당해 실제 발생소득의 15% 이하인 국가 또는 지역을 말한다. 조세피난처에서는 통상적으로 세제상의 우대 뿐 아니라 ‘외환거래법’, ‘회사법’ 등의 규제가 거의 없어 기업 경영상 장애요인이 거의 없다. 사실상 규제 제로(0) 지대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모든 금융 거래의 익명성도 철저히 보장돼 어디서 어떻게 번 돈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탈세 및, 돈세탁용 자금 거래, 주가 방어, 부의 대물림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실제로 해운업계에서는 은행 담보권 확보를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선박을 등록하는 것이 흔하다. 또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외국 기업과 합작할 경우 설립과 청산 절차가 간편하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자주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이 경우 회사를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과세당국에 자진신고했을 경우에만 탈세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재국씨가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는 자본금 5만 달러로 등재돼 있지만 실제로는 1달러짜리 주식 1주만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 형태다. 재국씨는 이 회사의 단독 등기이사이자 주주로 등재돼 있다. 또 이사회 결의서 내부 자료를 보면 재국씨는 등기이사의 주소를 그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본사 주소로 기재했다.

재국씨는 최소 6년 이상 이 회사를 보유했다. 또 이 회사와 연결된 해외 은행 계좌로 자금을 움직였으며 페이퍼컴퍼니 해외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다급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입수한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설비를 도운 싱가포르 법률회사와 페이퍼컴퍼니 등록 대행업체 직원들이 주고 받은 이메일을 살펴보면 “고객(전재국)의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이 모두 잠겨 있다. 재국씨가 매우 화가 나 있다”며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

메일이 오간 시점은 2004년 9월 17일로 재용씨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73억 을 관리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을 때다. 재용씨는 다음 달인 10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전씨가 지난 2004년 7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블루 아도니스’가 회계관리와 행정 등에 걸친 아랍은행의 ‘특별 서비스’를 받았다. 이를 위해 전씨는 같은 해 9월과 2005년 2월, 각각 850달러와 1210달러를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페이퍼컴퍼니관련 서류를 전부 아랍은행에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 8월 열린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이사회 결의서에는 회계 장부와 회의록, 주주 원부 등 모든 내부 자료를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맡긴다는 내부 기록이 담겨 있다. 특히 이 페이퍼컴퍼니 관련 자료의 담긴 ‘C/O’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C/O’는 ‘Care of’라는 뜻으로 아랍은행에 회사의 모든 것을 전담시킨다는 뜻으로 은행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위탁경영 서비스 제공이다. 때문에 아랍은행이 블루 아도니스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전 회장은 2004년 9월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사인 PTN에 회사 등록비용으로 미화 850달러를 지급했고 2005년 2월에는 PTN 명의의 은행계좌에 블루 아도니스 이름으로 미화 1210달러를 입금했다.

이는 재국씨가 “1989년 미국 유학생활을 일시 중지하고 귀국할 당시 가지고 있던 학비, 생활비 등을 은행 권유로 싱가포르에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해명한 것과 배치돼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련성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가 전두환 비자금과 연루돼 있는지 사정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진행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싱가포르와는 조세협약이 체결됐지만 계좌 정보 제공 등은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금 출처에 수사력 집중

앞서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국세청 주도로 추진되는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자금 추적도 병행, 역외탈세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서 정치권 비자금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특히 전 대통령들의 비자금과 기업 비자금의 실체와 연결고리가 일부 밝혀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동안 국세청은 영국, 미국, 호주의 세정 당국에서 방대한 조세피난처 역외자산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었다. 국세청은 명단이 공개된 인사들에 대해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철저한 조사해 증거 확보에 주력할 것”이란 입장이다. 김덕중 국세청장도 최근 “역외탈세는 올해 국세청의 4대 중점과제 중 하나이므로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과제”라며 “내용을 분석해 탈세 혐의가 있으면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역시 조세피난처를 통한 돈세탁, 비자금 조성, 털세, 재산 은닉 등이 국세청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는 즉시 전 방위로 조사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 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전 전 대통령의 자녀 등이 보유한 재산의 자금원을 밝혀내는 것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통장에 29만 원 밖에 없다”며 1672억 원의 추징금을 미납 중인 ‘알거지’ 상태지만 전 전 대통령의 일가의 재산 규모는 2000억 대에 달한다. 전 전 대통령의 자녀들이 재산을 마련한 방법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자금의 원천이 모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재국씨의 이번에 제기된 페이퍼컴퍼니 관련 내용을 비롯해 그동안 제기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련 의혹들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조사 결과 재국 씨의 돈으로 드러나면 추징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국세청은 물론 금융정보분석원과 공조해 돈의 출처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 볼 계획이다.

한 정치권 소식통은 “박근혜 정부는 전두환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전 전 대통령은 1976년 10·26 사건 직후 박정희 전 대통령 집무실 금고에서 발견한 자금 중 6억 원을 생계비 명목으로 박 대통령에게 전해줬다. 이로 미뤄볼 때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금고에서 발견한 자금을 가졌고 이 가운데 일부를 박 대통령에게 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전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금고에서 발견한 돈을 종잣돈 삼아 증식, 빼돌렸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전 전 대통령이 빼돌린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하겠다는 방침은 박근혜 정부가 전 전 대통령을 통해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론 ‘부글부글’

이처럼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공소시효(올해 10월)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찾으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의 싸움도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국민들의 공분도 심상치 않다. 기자는 지난 15일 전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을 찾아가 생생한 여론을 들어봤다. 기자가 만난 시민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비난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모(65·여)씨는 “당연히 비자금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징금을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 전두환 자택 주변으로 철통 경비를 하는 것을 보면 막대한 경호 비용이 떠올라 울화통이 터진다”라고 말했다.

윤모(75)씨는 “전두환이 대통령 시절 비호해줬던 세력들이 지금 전두환 뒤에서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대통령 시절 조성한 비자금들을 자녀들 명의로 다 빼돌렸을 것이다. 죄지은 사람이 호의호식하면서 산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증거 같다. 비자금을 끝까지 추적해 1원 한 장까지 모두 환수받아야 한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임모(35)씨는 “이번에 비자금 의혹이 드러났다고 해서 전두환에게 타격이 가긴 하는 건지 의문이다. 국가가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데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 나라 어디서부터 썩은 곳을 잘라내야 할지 감도 못 잡겠다. 아버지는 29만 원 밖에 없다는데 어떻게 유학비용을 마련했는지 우습다”라고 말했다. 강모(56·여)씨는 “추징금 환수는 당연한 것이다. 전두환이 죗값을 모두 치렀으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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