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부산은행을 주력계열사로 둔 BS금융지주가 금융당국의 입김으로 수장이 바뀔 처지에 놓였다. 금융감독원이 BS금융과 부산은행 종합검사를 토대로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의 거취를 두고 압박해 결국 이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 지분이 있는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전면 퇴진이 이뤄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하지만 BS금융의 경우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민간금융인 데다 부산지역을 토대로 하는 지방은행을 뿌리로 하고 있어 금융당국의 도 넘은 관치가 구설수에 오른 상황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갈린 수장들…고질적 병폐로 굳어
금융당국이 최근 금융감독원의 BS금융지주와 부산은행에 대한 종합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 회장의 사퇴를 권유한 것이 알려진 것은 지난 5일이다. 이 회장이 장기 집권에 따른 독단적 경영으로 회사의 건전성을 훼손시켰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이 회장이 모교 출신을 임원으로 대거 등용했으며 후계 프로그램 부재로 연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문제로 삼았다.
이러한 이 회장에 대한 퇴진 압력에 금융권이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전 정부에서 되풀이되던 금융사 최고경영자 물갈이와는 맥락을 달리 하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금융권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이나 은행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관례가 되풀이됐다.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김정태 전 KB국민은행장이 낙마설에 시달리다가 금융감독원의 중징계를 받은 후 불명예 퇴진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창록 전 산업은행장이 자진해서 사표를 제출한 것을 필두로 윤용로 전 기업은행장, 박병원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등이 줄줄이 중도사퇴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러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양새였다. 지난달 15일 신동규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히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임하거나 연임을 포기한 금융지주사 회장은 네 명으로 늘어났다. 이미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금융당국의 직간접적인 압박에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고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버티다 못해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명분 없는 압력에도 힘없이 굴복하는 금융권
하지만 이번 타깃으로 떠오른 이 회장은 국책은행이나 주요 금융지주사가 아닌 지역금융사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금융권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금융권 새판 짜기를 위해 겨냥한 표적은 정부 지분이 있는 국책은행이나 주요 금융지주사로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BS금융에 대한 압박을 기점으로 정부의 관치금융이 민간과 지역으로 전격 확장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특히 조영제 금감원 부원장이 이 회장에게 직접 퇴진을 요구한 것이 드러나면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해 9월 실시한 종합검사 결과를 지난 5일 보도자료로 뒤늦게 배포한 것도 흐릿한 명분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사 이 회장의 경영상 책임이나 법규 위반이 심각할지라도 절차를 통해 제재할 일을 거취 문제로 압박하는 것은 보기 드문 처사다.
이로 인해 정부가 단순히 BS금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지역금융사들을 대상으로 흔들기를 시작한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우리금융 민영화를 앞두고 우리금융그룹에 속해 있는 경남은행 매각을 위해 BS금융의 힘을 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BS금융과 대구를 거점으로 하는 DGB금융이 경남은행을 두고 맞붙었을 때 특정 금융사를 지지한다는 해석이다.
한 부산지역 금융계 인사는 “지역 금융사에 해당 명문 지역학교 출신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면서 “부산은행에 부산상고와 동아대 출신이 많다는 것은 도리어 지역 인재를 채용해 칭찬받을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후계 승계 프로그램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연임 의지를 판단하는 것도 지나친 월권”이라며 “정부가 지역금융에까지 낙하산을 내려 보내거나 타 지역 금융사를 지지하려는 의도라면 이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반발했다.
부산지역 162개 시민ㆍ사회단체들도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금융당국이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지방은행을 장악하려는 초법적 월권행위”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BS금융지주는 외환위기에도 공적자금 투입 없이 위기를 극복한 순수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회사”라며 “이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명분 없는 중도퇴진 강요는 경남은행의 민영화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자칫 정치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새 정부의 금융권 새판 짜기가 지역금융으로 선회해 계속해서 지방은행들을 압박할 것인지는 이 회장의 퇴임 이후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금융당국의 압박이 알려진 직후인 5일에는 “경남은행 인수 문제가 마무리되면 지주사 회장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향후 사퇴 가능성을 시사하는 데 그쳤지만, 닷새 만인 10일 “심사숙고 끝에 조직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현 시점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서둘러 사의를 표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