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하고 2205억 원을 추징당했다. 전 전 대통령은 2010년 10월 11일 300만 원을 낸 후 지금까지 한 푼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가 내야 할 미납 추징금은 현재 1672억 원에 이른다. 추징금을 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이 29만 원 밖에 없다’며 버티고 있다. 하지만 호화스러운 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전 전 대통령은 골프장에 나타나 골프를 즐기고 육사에 발전기금 1000만 원을 쾌척했으며, 고급 호텔에서 열린 손녀의 억대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전직 두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 시효는 10월 11일 만료된다. 이처럼 전 전 대통령이 내야할 추징금 납부 시효가 임박하자 추징금 미납분 및 불법재산 환수 촉구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간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과 그 일가의 재산 규모를 비롯해 전 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꼼수’를 쓸 것인가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예사롭지 않다.

칼날 빼든 검찰, 추징금 환수 잰걸음
전 전 대통령은 납부한 532억 원도 찔끔찔끔 납부했다. 1997년 법원 선고 후 312억 원을 자진 납부한 전 전 대통령은 이후 무기명 채권 및 이자, 현금, 은행 예금 및 원리금, 벤츠 승용차, 아들 명의의 콘도 회원권 경매 등으로 추징금 중 일부를 납부했다. 2002년엔 1억1200만원, 2003년엔 18억2750만원을 냈다. 2003년 4월에는 “전 재산이 29만 원 밖에 없다”며 법원에서 판사와 설전을 벌이는 해프닝도 발생, 빈축을 샀다. 2004년 5월에는 무려 200억 원을 납부했다. 하지만 직접 낸 것은 아니고 부인 이순자씨가 130억 원을, 이씨의 친척 명의로 70억 원을 대납한 것이었다.
그간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을 찾아내 미납 추징금 일부를 받아낼 수 있었지만, 이를 위한 법률적인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 것.
지난달 2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의 조세포탈 사건 재판 당시 재판부는 재용씨가 외할아버지인 이규동씨로부터 받은 167억 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 중 73억5000만 원 상당 채권은 아버지인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계좌에 있던 자금이 건네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2007년 재용씨의 형이 확정된 후에도 이를 추징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뿐 아니라 그동안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을 뒤졌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매번 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서는 무딘 칼만 겨눈 채 변죽만 올렸다.
추징금 납부 시효가 임박해 여론이 들끓자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은닉 재산 추적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며 잰걸음을 하고 있어 이번에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이 간부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시효가 임박했다”며 미납 추징금 환수를 강하게 주문함에 따라 검찰은 은닉재산 추적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검찰총장이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강제수사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특별팀을 서울중앙지검에 설치하기로 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은 매달 집행되고 있어 따로 전담팀을 두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전 재산이 29만 원 뿐이라는 전 전 대통령과는 달리 그의 자녀들은 재벌 못지않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 전 대통령 자녀들의 재산 밑천이 아버지의 비자금일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은 드러난 것만 20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맏아들 재국씨는 시공사를 비롯해 여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재국씨는 시공사를 창업한 1990년 무렵 초기부터 계열사를 늘려가며 사업을 확장, 국내 최대 출판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현재 시공사는 연 매출 440억 규모로 재국씨는 출판계의 큰 손으로 통한다. 재국씨의 종잣돈 출처가 불분명해 검찰은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시공사를 두고 비자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시공사 건물이 세워진 땅은 전 전 대통령이 5공 청산 성명을 하면서 국가에 반환하기로 약속했던 곳이다. 그러나 3년 뒤, 1991년 전 전 대통령은 재국씨와 재용씨에게 그 땅을 공동 증여했다. 시공사는 재국씨가 지분 50.5%를 가지고 있고 그의 부인 정도경, 동생 효선씨, 재용씨, 재만씨가 각각 5.32% 지분을 가진 가족 기업이다. 시공사는 출판 관련 회사 십여 곳에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소유하고 있는데 전두환 일가가 감사, 이사 등으로 곳곳에 포진해 있다.
재국씨는 시공사 사옥을 비롯해 서초동 토지와 건물 두 채를 갖고 있다. 또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지와 건물, 파주시 출판단지에도 토지와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 뿐 아니다. 재국씨는 경기도 연천군 토지를 매입해 2006년 대규모 생태공원인 ‘허브 빌리지 농원’을 설립했다.
차남인 재용씨는 비엘에셋 대표이사로 서울 용산구 빌라단지에 세 채의 집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곳은 주상복합건물로, 한 층에 두 가구씩 108평형 빌라 24가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경우 종잣돈 꼬리가 밟혔다. 그는 전 전 대통령한테서 물려받은 국민주택채권 119억 원어치(2771장)에 대한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2004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60억 원을 선고받았다. 2004년 재용씨 조세포탈 사건 당시 검찰이 비자금 일부를 밝혀내자 이순자씨는 “비자금이 아니라 알토란 같은 내 돈”이라고 주장, 유행어를 만들어내는 촌극을 빚으며 200억 원을 ‘대납’하기도 했다.
재용씨 부인 탤런트 박상아씨가 2003년 자신의 명의로 산 미국 애틀랜타의 주택과 2005년 구입한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주택 등 미국 부동산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는 두 사람이 재용씨가 2007년 2월 두 번째 이혼 이후 같은 해 7월 19일 경기도 파주에서 박상아와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2003년 5월 12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박상아와 비밀 결혼식을 했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날은 박상아 명의로 애틀랜타에 주택을 구입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한 날”이라며 “이 주택을 박상아 명의로 한 것은 전 씨의 비자금과 관련해 주택이 차압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막내 재만씨는 2002년 5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빌딩을 샀다. 그는 1995년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 큰딸 윤혜씨와 결혼했다. 이 회장은 당시 결혼 축하금이라며 재만씨에게 160억 원 규모의 채권을 건넸다. 검찰은 이 중 114억 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판단, 압류 조치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 회장의 “(문제의 채권은)부친으로부터 증여 받은 것”이란 주장을 인정, 증여세 53억9000만 원을 과세하는 데 그쳤다. 또 재만씨가 소유한 빌딩 역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마련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대해 재만씨는 장인이 재산분배 차원에서 상속해 준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재만씨는 이 회장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 ‘다나 에스테이트’를 운영한다.
재만씨의 부인 윤혜씨는 서울 종로구 가희동의 빌라 한 채를 결혼 직후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 2002년에 이 빌라는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딸인 연희씨가 월세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전 전 대통령의 장녀인 효선씨는 5공 청문회 당시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 소유라는 의혹이 제기됐던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토지를 삼촌 이창석씨에게 증여받았다. 이창석씨는 매형인 전두환씨의 ‘비자금 관리인’이란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효선씨는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인 1992년, 아버지에게 23억 원에 달하는 채권을 용돈 명목으로 받기도 했다. 효선씨는 이 돈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1억 원 이상 규모의 초호화 특급 결혼식을 올려 논란의 중심에 선 전 전 대통령의 장손녀 수현씨 역시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해 자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수현씨는 재국씨의 맏딸로 재국씨와 시공사에 이은 시공사 3대 주주다. 재국씨는 경기도 연천군에 허브빌리지를 짓기 위해 2004년 5월 28일 당시 18세이던 수현씨 명의로 본격적으로 땅을 매입하기도 했다.
조세피난처에 은닉재산 있을까
검찰이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을 찾아내 추징금을 반드시 환수하겠다고 밝힌 현 시점에 버진아일랜드 조세피난처에 전두환 비자금이 있을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해직 언론인들이 만든 탐사전문 독립인터넷 언론사인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여부도 추적 중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박중석 뉴스타파 기자는 전 전 대통령도 조세피난처 명단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 부분은 초미의 관심사로 찾고는 있다. 찾고 싶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두환·노태우 일가의 해외 부동산 소유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 전 대통령이 비자금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기 힘들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최재성 민주통합당 의원은 전 전 대통령이 편법으로 추징금을 미납하는 것을 방지하고 실제 추징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추징 대상자의 재산이 불법 취득됐다는 점을 인지하고서도 이를 취득한 사람한테도 추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전 전 대통령이 편법으로 가족 등에게 양도한 재산을 추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전 전 대통령과 이순자씨는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투표소에서 기자들이 추징금에 대해 묻자 “잘 아시겠지만 정치자금을 뇌물죄로 했기 때문에 그 돈은 우리가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아들이나 친척들은 돈이 많지 않은가라는 질문에는 “대한민국에서는 각자가 하는 것이고 연좌제가 아니다. 각하 것은 성의껏 다 냈다”고 답해 국민적인 공분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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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