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지난달 30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한 한국인 3차 명단을 발표한 가운데 그 안에 포함된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 전 사장이 2002년부터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해외 도피를 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3차례에 걸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고, 그의 주변 인맥이 삼성과 CJ 오너家, 유명 뮤지컬 배우 윤석화씨 등과 연결돼 있어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삼성 관계설 주목…개인친분엔 이미경 CJ부회장도
관련자들 ‘의혹 부인·회피’ 해당 기업은 ‘선긋기’
김 전 사장은 주식과 국제 금융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7년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초엔 홍콩에서 활동하며 국제 금융의 흐름을 익혔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동방페레그린증권, 한누리투자증권 등을 거쳐 1999년 중앙종금 사장에 선임되면서 금융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는 1998년 아남반도체의 사모사채 인수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챙기고 지분을 사들인 혐의로 아남에서 해임됐다.
2000년에는 중앙종금을 부도내고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5년간 금융회사 취업 제한 조치를 받았다.
2002년에는 주가조작으로 660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망에 오르자 홍콩으로 도피해 현재까지 지명 수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에는 뮤지컬 배우 윤석화씨와 만나 재혼을 해 당시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윤씨는 최근 KBS2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해 “남편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며 “빚이 계속 늘어 20층 건물을 찾아다니고 ‘한강을 들이받아볼까’하는 생각도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뉴스타파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1990년 1월 버진아일랜드에 ‘프리미어 코페레이션’이란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2001년 10월에는 같은 지역에 ‘자토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는 등 6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했다.
특히 김 전 사장이 2001년 2월 설립한 ‘멀티럭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의 주주로 배우자인 윤씨가 등재돼 있다.
또 2005년 설립된 ‘에너지링크 홀딩스 리미트드’엔 윤씨와 이수형 현 삼성전자 준법경영실 전무, 조원표 현 앤비아이제트 대표이사가 등재돼 있어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김 전 사장이 배우 윤씨와 재혼 전 고 이병철 삼성회장의 맏손녀인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력이 있는데다 동아일보 출신인 두 사람의 등장이 주목된다. 동아일보의 사주 역시 삼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고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김재열 씨의 부인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다. 김 전 사장이 설립한 회사에 등재된 조 대표는 동아일보 출신이고, 이 전무 또한 문화일보에 입사해 동아일보를 거쳐 삼성에 입사했다.
게다가 이 전무가 페이퍼컴퍼니의 등기이사로 등재된 시점이 동아일보를 퇴직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한 직후인 2006년이다.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던 법조기자 출신이 검찰 수사를 받던 기업인과 함께 페이퍼컴퍼니 설립에 동참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미 누리꾼들은 “동아일보 법조팀장 지낸 삼성전자 준법경영실 전무가 왜 이럴까?”, “삼성의 준법 경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삼성 이미지 타격 좀 받겠는걸” 등 비난의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월간지 ‘객석’은 언론을 통해 “윤석화씨는 남편의 사업을 돕고자 이름을 빌려준 사실은 있지만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임원으로 등재된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명단 공개 후 팬들은 과거 학력위조와 더불어 더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수형 현 삼성전자 준법경영실장 이름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서도 삼성은 이 전무의 삼성 입사전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삼성 관계자는 “문제가 된 페이퍼컴퍼니 설립 시기는 2005년으로 이수형 전무가 삼성에 입사하기 전이라면서 입사 전 기자 시절 김전 사장에게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안다. 이 전무 개인적으로 한 일이지 삼성의 비즈니스와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명의만 빌려줬다” vs “알고 있다” 진실공방
하지만 김 전 사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조 대표와 이 전무는 페이퍼컴퍼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착각하는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이들의 충돌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뉴스타파’는 3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전 경총 회장인 이수영 OCI 회장 부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과 장남 조현강씨,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조용민 전 한진해운 홀딩스 대표,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 조민호 전 SK케미칼 부회장과 배우자 김영혜, 이덕규 전 대우인터네셔널 이사, 유춘식 전 대우 폴란드 차 사장, 전성용 경동대 총장 등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세청도 이들에 대한 정밀세무조사를 실시할 뜻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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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