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B.C 770~B.C 403)를 마감하고 전국시대(B.C 403~B.C221)가 시작되면서 중국 천하의 판도는 서서히 7대 강대국으로 재편된다. 7대 강대국 가운데 효산 부근의 함곡관을 기준으로 서쪽의 섬서성· 감숙성·사천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진(秦)이 효공(재위:B.C 361년 ~ B.C 338년) 시절 상앙(?~BC 338)의 법가를 채택해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한편 함곡관 동쪽의 6대 강대국은 주 무왕의 아들 당숙우가 세운 춘추시대 진(晉, B.C 1100년 대~B.C349년)으로부터 분리된 한(韓)·위(魏)·조(趙)가 중원지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산동지역에는 제(齊), 현재 베이징을 근거지로 하는 동북방에는 연(燕), 양자강 중·하류 및 양자강 이남을 통치하던 초(楚)가 있었다.
제가백가 가운데 종횡가(縱橫家)는 서쪽의 진에 대항해 동쪽의 6강대국이 연합하는 전략을 짠 합종(合縱)과 합종에 대항해 진(秦)이 개별적으로 각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각개격파하는 전략인 연횡(連橫)을 합친 말이다. 이러한 합종가와 연행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소진(蘇秦, ? ~기원전 317년)과 장의(張儀 ?~기원전 309년)이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편은 소진과 장의편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소진과 장의열전은 1973년 호남성 장사에서 발견된 마왕퇴 제3호 한나라 무덤에서 발견된 ‘전국종횡가서’에서 소진에 관한 내용이 발견됨으로써 역사적인 진실이 아닌것이 몇 군데 발견됐다.
소진은 일반 소시민으로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으로 국제상황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 여섯 제후국의 승상자리를 차지하고 강대국 진나라가 기원전 334년부터 기원전 320년까지 무려 15년간 함곡관 동쪽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산동 6국의 상호 방위조약의 탄생을 이끌었던 외교가이다. 한편 장의는 동문수학한 소진의 합종 전략을 파괴하려는 연횡 전략을 구사해 진의 승상이 된 인물이다. 소진과 장의의 스승이 바로 설득의 천재였던 귀곡자 선생이다.
한편 귀곡 선생이 저술했다는 20여 권의 저술은 대부분 후세인들이 귀곡자를 가탁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수서(隋書)』「경적지」에 보이는 『귀곡자』는 종횡가 일파의 설득술을 종합해 정리한 내용으로 전국시대와 같이 정치·경제·군사·외교 등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각광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귀곡자라는 인물은 도가의 심리수양서, 병법, 무협소설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전국시대의 실존인물로 소진과 장의 외에 ‘손빈병법’을 쓴 손빈과 위나라의 장군 방연을 배출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귀곡자는 명대의 문학가인 풍몽룡 (馮夢龍,1574~1646)의 역사소설 ‘동주열국지’에는 길흉화복을 맞히는 것이 귀신과 같았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명리학의 비조로도 평가받는 인물이다. 귀곡자가 귀곡산장에서 배출한 제자들인 소진과 장의 및 손빈과 방연 등은 모두 상대의 적으로 현실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열전속의 인물들이다.
한편 귀곡자가 찬(撰)했다는 ‘이허중명서’ 3권의 구본(舊本)은 당나라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의 벼슬을 한 이허중(李虛中 761~813)이 주석(註釋)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허중명서’는 조공무(晁公武, 1105~1180)의 ‘군재독서지(郡齋讀書誌)’(1151)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명리서이다. 한유(韓愈 768~824)의 『창려문집(昌黎文集)』에 이허중묘지명(墓誌銘)을 지은 것이 보이는데 여기서 한유는 “오행서(五行書)에서 가장 심오해, 사람이 처음 태어난 연월일이 만난 일진(日辰) 지간(支干)의 상생상승(相生相勝)·쇠사왕상(衰死王相)으로 짐작(斟酌)해, 사람의 수요(壽夭)·귀천(貴賤)·리불리(利不利)를 추론했는데, 한두번의 실수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류동학 원장 프로필

△혜명동양학아카데미 원장(현) △대전대 철학과 외래교수(현)
△전 안동정보대학 교수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대전대 철학과 박사과정 △단국대 법학과 졸업
전화 : 053-246-8426 휴대전화 : 010-2666-8472
이메일 : donghak88@hanmail.net
류동학 원장 donghak8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