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수진 기자]이재현 CJ그룹 회장(53)이 좌불안석이다. 이 회장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수천억 원의 비자금 조성과, 운용 방법 등 각종 의혹들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임직원 명의 차명계좌, 비자금 해외 반출, 역외탈세,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자사주 매매, 편법증여 등 재벌 오너 일가의 고전적인 비자금 조성·운용 수법을 총동원한 것으로 보여 파문이 예상된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와 관련해 대기업의 불공정한 관행을 뿌리 뽑겠다던 박근혜 정부가 CJ그룹을 시작으로 재계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비자금 조성·운용 고전적 수법 총동원…편법 증여 수사
검찰의 칼 끝, 20대 두 자녀에게도 겨냥…이 회장 출금
CJ그룹의 해외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 회장,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 이재환 CJ계열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등 오너 일가 3남매에 대한 출국을 금지하며 CJ그룹 일가를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지난 23일 CJ그룹 회장 비서실 김모 부사장(48)과 재무팀 소속 직원 김모씨(40) 등 오너 일가의 차명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의심되는 측근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앞서 전날 검찰은 이 회장의 차명·개인 재산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그룹 재무팀장(부사장급) 성모씨(47) 등 재무팀 관계자와 비서실 관계자 10여명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소환된 임직원들을 상대로 이 회장과 오너 일가의 차명재산 규모와 관리 실태, 이 회장의 지시·보고 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또 그룹의 재무관련 서류를 토대로 해외와 국내를 오가는 자금의 성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현재 검찰 수사는 CJ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 및 탈세 혐의를 규명하는 쪽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검찰은 2008~2009년 검찰과 경찰의 CJ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당시 국내외 합계 6000억 원대 규모의 비자금이 존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8년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하다 살인을 청부한 혐의로 기소된 CJ 전 재무팀장 이모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홍콩에 비자금 3500억 원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아울러 국세청은 2008년 CJ그룹 세무조사 당시 이 회장이 차명계좌 500여개에 차명재산 3000여억 원을 보유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의 칼 끝은 이 회장의 두 자녀에게도 겨냥됐다. 당시 소득이 없었던 이 회장 딸(28)과 아들(23)이 CJ 계열사 주식 지분과 부동산 등을 합쳐 7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돼 자금 출처에 나선 것.
2009년 두 자녀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170억 원대의 빌딩을 공동 매입했다. 문제는 당시 학생 신분으로 소득이 없던 이들이 무슨 돈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샀는지에 의심의 눈초리가 제기됐다. 현재 이 빌딩은 대지 면적 616㎡(187평)에 지하 2층, 지상 6층 빌딩(연면적 2459㎡)으로 시가 250억 원대에 이른다.
게다가 이 회장의 딸은 2010년 서울 장충동의 38억 원짜리 고급 빌라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 소유주는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로, 홍 대표는 2001~2008년 CJ와 1422억 원에 이르는 미술품 거래를 한 것으로 지난 2월 국세청 조사 결과 밝혀져 이들의 빌라 매입 과정이 깨끗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밖에도 검찰은 이 회장의 두 자녀가 지난 23일 종가 기준으로 248억 원 상당의 CJ, CJ제일제당, CJ E&M 주식 보유와 190억 원에 달하는 비상장 계열사 지분 매입 과정에서도 불법 증여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검찰 자금 출처 캐낼 터
이처럼 이 회장의 비자금 일부가 자녀들의 주식 매입으로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비자금을 이용해 결국 그룹 지배력 강화에 힘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2007년 12월 CJ그룹의 지주회사인 CJ(주) 공개매수에 참여하며 6646억 원(816만5399주)어치 주식을 현금으로 사들여, 지분율(19.73%)을 50.36%로 끌어 올린 바 있어 의구심은 더욱 증폭됐다.
현재 이 회장은 8개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장은 CJ제일제당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CJ시스템즈, CJ, CGV, CJ GLS, CJ오쇼핑, CJ E&M CJ 대한통운의 등기이사도 맡고 있다.
검찰과 국세청 등에서는 이 회장의 비자금 출처가 선대 회장의 상속 재산을 바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회장이 삼성과의 분리 과정에서 상속재산으로 받은 삼성생명 주식을 현금화한 뒤, 이를 종잣돈으로 자사주 매매나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 최소 5000억 원대의 비자금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1980년대 말 故 이병철 명예회장으로부터 제일제당과 별도로 삼성생명 주식 9만여 주를 상속받았다. 이후 삼성과 CJ의 계열 분리가 시작된 1990년대 중분부터 이 주식을 순차적으로 현금화해 90여 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8년 비자금 관리인의 재판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이 회장은 1700억 원의 상속세를 낸 바 있다. 상속세율이 50%인 점을 감안하면 이 회장은 최소 3400억 원을 차명재산으로 관리했다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 따라서 검찰은 이 회장이 상속재산을 종잣돈 삼아 국내 차명계좌와 홍콩 등지의 해외법인을 통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 비자금을 계속 증식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CJ 측은 “차명재산은 상속재산이며 상속세까지 완납했다"고 밝히며 해당 의혹을 일축했다. 현재 검찰은 CJ그룹이 화성동탄물류 단지 조성사업 과정에서 해외 비자금으로 외국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가장해 500억 원대 부지 일부를 매입했다가 되팔아 300여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수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