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소년원 자장면 봉사는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
“음식 준비 과정은 선물 받아 포장을 풀기 직전의 마음”
[일요서울ㅣ최은서 기자]자장면과 탕수육은 지금이야 간편한 배달식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일상 음식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입학식과 졸업식, 이삿날과 같은 특별한 날 온 가족이 고급 외식메뉴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곤 했었다. 중년층 이상의 세대라면 누구나 그 시절 탕수육과 자장면에 얽힌 추억 한가지씩은 갖고 있다. 저마다 추억도 각양각색이다. ‘특별’하면서도 ‘만만’한 음식이기도 한 자장면과 탕수육을 소외된 이웃에게 대접해 ‘따뜻함’을 전하고 있는 소삼차씨를 만나봤다.
소삼차씨는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의 간사를 맡고 있다. 이 봉사회를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한지도 올해로 13년째다. 1970~80년대에는 입학식과 졸업식 날 온 가족이 중국집을 찾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특별한 날 최고의 메뉴가 바로 자장면과 탕수육이었기 때문이다. 소씨가 자장면과 탕수육을 대접하는 봉사에 나선 것도 이런 ‘흐뭇한’ 추억 덕분이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메뉴인데다 누구나 특별한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대접한다면 자신도, 상대방도 그 날 하루만큼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친목 차원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갖게 됐다. 하지만 단순히 친목만을 위해서 만남을 가지면 모임이 흩어질 것만 같았다. 모인 김에 좋은 일을 하자는 의견이 나와 모두가 한 마음으로 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전했다.
봉사에 중독되다
얼마 전 찾아갔던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안양소년원)에서의 하루는 그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 중 하나다. 이곳은 폭력·절도 등을 저지른 비행청소년들이 길게는 24개월까지 직업훈련 교육을 받는 곳이다.
소씨는 ‘소년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내심 걱정했다. 그는 이 사회의 어두움으로 인해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자신을 편하게 맞아줄까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식사시간이 돼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온 아이들의 모습에서 ‘먹구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총총 걸음으로 오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다.
소씨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해맑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도 잊지 않고 건넸다. 한 여학생은 자장면을 3그릇을 먹었다. 중국집을 오래 운영했지만, 여학생이 자장면을 3그릇 먹는 것은 처음 봤다. 너무나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운 마음이었다. 정말 이 학생들이 한 때 잘못된 길로 들었었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밝고 활발해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씨는 봉사회 회원들과 함께 매년 7월에는 중증장애인센터인 ‘신망애’에 가 봉사를 한다. 300명이 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배식하다보면 모두가 구슬땀을 흘린다.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수백 명 분량의 면을 삶고, 고기에 밀가루를 묻혀 튀기면서 소스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터. 하지만 소씨는 그 과정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소씨는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아이가 선물을 받아 포장을 풀기 직전의 마음 같다. 과연 입맛에 맞을지, 맛있게 먹어줄지 ‘두근두근’한다. 봉사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하면 할수록 즐겁고 자꾸자꾸 하고 싶다. 생일날처럼 봉사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이 봉사회 뿐 아니라 독거노인을 위한 개인 봉사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도배를 하고 페인트 칠을 새로 해주곤 한다.
우리 동네 ‘해결사’
그의 삶도 ‘봉사’로 인해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는 “사람들과 모이면 봉사를 하게 되고 좋은 일이 생기니까 늘 웃게 된다. 또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자꾸 만나게 되니까 닮게 되는 것 같다. ‘항상 이웃과 사랑하며 살아간다’라는 말을 새기면서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무슨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운 첫걸음을 떼고 나면 길이 보이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고 믿는다. 그는 “봉사는 남이 할 때 같이 한번 해 보면 나중엔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 봉사를 하게 될 때 감사인사를 받으니까 너무너무 쑥스럽고 괜히 창피하기도 했다. 봉사를 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 사람,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손잡아주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는 젊은 세대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고도 했다. 경쟁 사회에 내몰려 남을 위한 시간을 내 줄 생각조차 못하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고. 그는 “요즘 사회가 이기주의가 된 것은 우리 세대의 탓이 크다. 우리 세대가 내 자식만큼은 최고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성’보다는 ‘성공’을 우선시 해 젊은 세대들이 배려심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세태가 너무나도 안타깝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관악구에서 ‘봉사’ 뿐 아니라 ‘해결사’로도 통한다. 소씨는 어릴 때부터 운동으로 체력을 다져와 행동이 민첩하고 재빠른 ‘날쌘돌이’다. 소씨는 남다른 정의감과 민첩함으로 뺑소니범과 사기범을 맨손으로 잡아 동네 유명인사로 불린다.
그는 “배달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횡단보도에서 한 오토바이가 아주머니를 치고 달아났다. 쓰러진 아주머니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나는 재빨리 그 오토바이를 쫓아갔다.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달아나는 오토바이를 2.4Km 정도 추격해 잡아 경찰서에 인수인계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이어 “길에서 경찰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검문검색으로 정차하고 있던 차가 경찰관이 다가오자 갑자기 달아났다. 그 뒤를 바로 쫓아갔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승용차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를 3바퀴나 돌았다. 마지막으로 한 바퀴만 더 돌려고 하는데 원룸건물에 세워놓은 차가 보여 잡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사기범 수배자였다. 이 일로 경찰서에서 감사장도 받았다”고 빙긋이 웃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