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진단] 사회복지 공무원 자살 잇따라
[세태진단] 사회복지 공무원 자살 잇따라
  • 안은혜 기자
  • 입력 2013-05-27 10:21
  • 승인 2013.05.27 10:21
  • 호수 995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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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사회복지사들

[일요서울 | 안은혜 기자] 지난 15일 충남 논산시청 소속 사회복지사 김모(33)씨가 논산 덕지동 인근 호남선 철길 위 열차에 투신해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만 4명 째다. 1월에는 용인시청 소속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2월 성남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3월 울산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업무 과중을 호소하며 자살했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한사협)는 지난 16일 사회복지사 자살방지 및 인권보장을 위한 비대위를 설치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잇따른 자살 소식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미온적인 대처는 더 이상 국민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요서울]이 사회복지사들의 업무 실상과 문제점 및 대안을 알아봤다.

▲ 지난 26일 사회복지공무원 자살방지 관련 긴급 간담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 소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뉴시스>

‘깔때기 현상’ 심각…업무 스트레스 많아
 “공무원·민간영역 아우르는 처우개선 필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열린 고용복지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보건복지 활동을 하면서 복지 현장에서 ‘깔때기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을 한 바가 있다”며 “실제 사례를 봐야 하는데 각 부처마다 복지정책이 쏟아져 나오니까 복지사들이 그것을 연구하기도 바쁘다. 이는 구조가 잘못된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복지전달 체계를 마련해 달라”며 “사회복지사들이 일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처우 개선 등 종합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민원인 폭력과 폭언 모호한 정원 배치 심각

‘깔때기 현상’은 수급자격 판단에 필요한 행정정보를 조회·처리하는 단순 행정업무를 포함한 복지급여 집행·전달 업무가 지자체에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정부 13개 부처 292개 복지업무가 인력수급 대책, 업무가이드라인, 전문성 진단 없이 일선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에게 쏟아지는 ‘깔때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양질의 서비스를 전달해야 할 사회복지사가 과도한 업무스트레스, 민원인의 다양한 폭력과 폭언, 모호한 정원배치 등으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사회복지전달체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 공무원은 공공부조와 장애연금, 기초노령연금, 한부모가정 지원, 활동보조·장기요양 등과 같은 바우처, 민원처리,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찾아 상담, 저소득 주민 무료세탁 서비스, 멘토링 프로그램 시행, 어르신 119안전센터 견학, 저소득층 자녀 문화탐방 등 업무과중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보육·양육수당 지원, 교육비 지원 등 신규 복지사업으로 업무는 계속 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공무원 한 명이 담당하는 인원은 100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배에 달한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특별위원회인 사회복지사인권위원회 위원장 허준수 숭실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제도들이 만들어진 것에 비례해서 복지업무를 전담으로 하는 사회복지 공무원 수가 굉장히 적다”며 “최근 정부가 행정적 편의를 위해  모든 업무를 입력하도록 되어 있는 사회복지 통합 전산망을 개발했다. 하지만 시스템이 느려서 입력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다른 행정직 공무원들이 퇴근한 뒤에도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업무 외에 초과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베르테르효과(동조자살 또는 모방자살)마저 우려되는 시점에 한사협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집회 등을 통해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연이은 사회복지사의 자살에 대해 정부가 대책으로 공개한 것은 현 시스템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인력충원이나 수당인상에 불과하다.
허 교수는 사회복지 행정 개선을 위한 대안에 대해 “인력 확충도 분명히 필요하다. 이외에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에서 292개의 복지 사업을 하는데, 이 업무들을 분산해서 담당하게 하거나 복지 관련 업무를 전담할 수 있는 행정 전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만 복지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토부, 산업부, 문화부 등 여러 부처에서 모든 업무를 공유해야 한다”며 “전국 2730곳에 주민 센터가 있다. 주민 센터에 약 12명의 공무원들이 있는데 이중 사회복지 담당 인력은 2~3명에 불과 한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결식아동,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수당 등의 복지 업무를 다른 행정공무원들과 같이 했는데 몇 명 안 되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 이 모든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일이 줄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되어 업무 과중으로 자살하는 사고까지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상반기 1800명 충원 전국 읍·면·동 배치키로

지난 3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복지 담당 공무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상반기까지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1800명을 충원, 전국 읍·면·동에 배치하겠다. 월 3만 원인 복지담당 공무원의 수당 인상을 적극 검토하고, 장기 근무자 승진 우대, 성과상여금 지급 시 가점 부여 등 인사상 우대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바 있다. 안행부는 복지 담당 공무원의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우울증 또는 스트레스를 겪는 이들은 보건소 등을 통해 상담·검진하고, 상담창구 등에 CCTV와 녹음장비를 설치해 악성 민원으로부터 신변을 보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행부는 지난 12일 지자체 사회복지공무원의 업무수당이 다음 달부터 월 4만 원씩 인상된다는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과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다음 달부터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는 고육책에 불과한 사탕발림이라는 것이 한사협 비대위의 지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는 지난 16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자살로 희생된 당사자, 가족의 처절함, 동일한 고통 속에 놓여있는 많은 사회복지사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정부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며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한사협 측은 “업무의 처리 과정과 협조 관계, 업무량 과다, 생계형 민원이 많은 업무특성, 복지와 관련 없는 일반 행정 업무 등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바, 철저한 직무분석과 인력진단을 통해 업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며 “특히, 시·군·구, 읍·면·동 단위의 독립적인 복지전담부서를 설치해 국민에게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회복지사에 대한 폭력시 가중처벌은 물론 사회복지사의 신변보장을 법제화해야 하며, 교사들에게 교육권이 있듯 사회복지사들의 사회복지권을 법제화함으로써 국가가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일요서울]이 확인한 결과, 지난 2월 자살한 성남시 사회복지사 강모씨의 공상처리를 위해 직원 2000명이 서명한 탄원서가 최근 분당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제출됐다. 유가족을 위한 보상차원의 이 서명운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iamgrace@ilyoseoul.co.kr

안은혜 기자 iamgrac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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