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교보생명]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5-21 09:26
  • 승인 2013.05.21 09:26
  • 호수 994
  • 4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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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보험 제도 창안… 공정경쟁시대 열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그 스무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독창적인 보험 상품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보험업계의 출발을 알린 교보생명이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 발명가적 창의와 개척정신, 그리고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는 집념으로 피나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교보생명 창업주 대산(大山) 신용호 회장은 대한민국 보험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보험의 스승’으로 불린다.

그는 보험의 개념이 국내에 뿌리내리기도 전인 1950년대에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창적 상품인 ‘교육보험’을 개발·보급했다.

학교 문턱을 단 한 번도 밟지 못했던 그가 이 같은 업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허약한 목과 항일가족이라는 일제의 낙인 때문에 제도권 교육을 일절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학력 대신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라도 묻는 겸손함과 번득이는 재치, 그리고 편견 없이 사물을 바라보는 창의적인 사고가 있었다.

교육보험을 창안할 때의 일화는 그의 독창적인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청년 시절을 중국에서 보낸 그는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뜨거운 것을 간파해내고 교육보험을 창안해 냈다. 또한 생노병사 중 ‘생(生)’과 관련된 보험이 있다는 것도 그의 착안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로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보험을 들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보험상품을 만들었지만 팔 곳이 없는 위기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성인 중 80%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은 신 회장은 ‘한 달에 담배 한 갑 살 돈을 아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또 요즘처럼 판매전략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50년대, 학교에 교육보험을 팔기 위해 사원 1명당 1개의 학교를 공략하는 ‘일인일교(一人一校)’전략으로 그는 교보생명 창립 9년 만에 업계 1위에 올려놓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삶을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맨손으로 생나무 뚫기는 일견 어려워 보이지만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한 곳에 쉬지 않고 공략한다면 어느새 문제는 해결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신 회장은 언제나 열린 생각으로 좋은 것이 있으면 도입하고, 이미 도입했던 것이라도 나쁜 것이 있으면 곧바로 고쳤다. 교보생명을 업계 선두 생명보험사로 끌어올려 놓고 본인이 회장이 된 이후에도 그는 쉽사리 교만해지거나 태만해지지 않았다.

철저한 장사꾼 사회적 책임 강조

신 회장은 2003년 영면했지만, 그가 남긴 ‘철학’과 ‘원칙’ 만은 여전히 살아있다. 언제나 민족의 발전과 회사의 번창, 사원들의 미래를 생각했던 그의 마음은 교보생명에 ‘윤리경영’과 ‘공감경영’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철저한 장사꾼이었지만 동시에 인격자였던 신 회장은 주위 사람들의 반대를 신경 쓰지 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종로 1가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를 짓고 민족의 정신문화에 아낌없이 투자한 것은 바로 그런 그의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현재 신 회장의 장남인 신창재 회장이 이끌어 가는 교보생명 역시 이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09년 창립 51주년을 맞아 신창재 회장이 역설한 ‘존경받는 기업이 되자’는 목표가 이를 잘 드러내 준다. 단기적인 수익이나 시장 순위에 집착하기보다는 고객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한편, 마켓플레이어로서 원칙에 기반한 ‘공정경쟁’을 하고 있다.

2007년 교보생명은 공정하게 시장에서 경쟁하고 회사 운영도 투명하게 하겠다는 내용의 ‘공정경쟁 자율실천’을 선언했다. 점차 경쟁이 격화되는 생명보험 시장에서 원칙을 가지고 공정하게 경쟁하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점차 ‘안전한 자산운용’이 강조되는 시기에 시장의 출혈경쟁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철저하게 리스크관리를 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의무이기도 하다. 또 공정경쟁은 교보생명이 생각하는 ‘기업의 지속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경영전략이기도 하다.

교보생명의 ‘성장’은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닌 ‘좋은 성장’이다. 좋은 성장이란 고객·임직원·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선순환을 이루는 성장으로, 교보생명이 추구하는 투명경영과도 맞닿아 있는 개념이다. 결국 무리하게 외형을 늘리고 경쟁에 나서 단기적으로 고객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기업보다는 느리더라도 튼튼한 기업 체력을 만드는 데 힘써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선사하겠다는 것이 교보생명의 ‘이익’에 대한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결국 고객들은 ‘좋은 이익’을 선사하는 교보생명을 신뢰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생전 유난히 사원 사이의 ‘정’을 강조하고 직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신 회장이었다. 그를 닮아 아들인 신창재 회장도 ‘공감경영’을 통해 보험업계의 유명인물이 됐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뉴시스>

재무설계사들을 앞에 두고 큰절을 하기도 했고, 일일 요리사가 돼 쿠키를 구워 직접 선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현장에도 자주 나가 설계사들뿐 아니라 고객들과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2006년에는 새해 첫날부터 전남 나주의 한 지점을 방문해 위로의 말을 전했고, 전국의 주요 도시를 돌며 우수고객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고객들의 니즈를 경청했다.

보험사 중 처음으로 가족친화기업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 역시 신창재 회장의 공감경영이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다.

산부인과 의사에서 금융회사 수장으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신창재 회장은 학교 문턱도 밟지 않았던 아버지와 달리 남부럽지 않은 경기고·서울대 학력을 보유했다. 젊은 나이에 금융계에 뛰어든 부친과 달리 그는 의학계에서 ‘경영’과는 동떨어진 삶을 보냈다.

따라서 그가 교보생명 회장으로 부임했을 때 걱정스런 시선이 많았다. 병원에만 있던 이가 경영을 알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IMF 경제위기, 카드채 사태 등으로 위기에 빠진 교보생명을 훌륭히 이끌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금까지도 교보의 비전이 돼주고 있는 공정경쟁, 원칙에 입각한 경영이 교보를 살린 일등공신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른 회사들이 고위험 상품에 뛰어들 때도 교보생명은 생명보험의 기본인 보장성 상품 판매에 집중했고,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했다.

대형 보험사들의 주인이 바뀌고 사장들이 옷을 벗는 가운데서도 그는 국내 보험사 유일의 오너경영자로서 훌륭히 부친의 업적을 승계 받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화문 글판, 희망메세지 전달 톡톡

교보생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업이미지(CI)인 ‘곡옥’보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징물’이 있다. 바로 광화문 교보생명을 십 수 년간 지켜준 ‘광화문 글판’이다.

광화문 교보생명 앞에 설치된 '광화문 글판'

광화문 글판은 1991년부터 22년간 광화문 교보생명 앞에 자리하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곳은 회사 정문 바로 위에 위치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어 광고 가치로도 높았다.

그런 곳에 단순히 ‘돈을 벌자’는 구호 대신 격언이나 시구, 동서양의 명언 등을 인용해 넣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우고 지친 마음을 격려했다. 이 역시 국민정서의 함양과 독서보급에 힘썼던 신 회장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광화문 글판의 초기 메시지가 격언과 고전을 이용해 교보문고의 경영철학인 ‘성실’과 ‘노력’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면, 신창재 회장이 부임한 2000년 이후에는 시대에 맞춘 메시지로 변화했다.

월드컵 열풍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 ‘세상에는 거저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요행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큰 길이 없습니다’라는 글귀로 4강 신화의 저력이 노력에 있음을 일깨웠다. 금융위기로 흔들렸던 2008년에는 파블로 네루다의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 피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건배’라는 글귀를 인용해 역경과 좌절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최근에는 ‘가장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에서 가져온 글판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새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는 교보생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이 기업의 목적이 아니라 인재를 기르고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 역시 기업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임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보험 사업이 그랬고, 교보문고 설립 역시 이 같은 일념에서 나왔다. 역경을 정면돌파하는 강력한 의지와 깊이 있는 철학에 기반을 둔 경영능력, 공동체를 두루 이롭게 하려는 이타적 정신은 후대의 금융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
<정리=박수진 기자>
<출처=재계 100년-미래경영 3.0 창업주 DNA서 찾는다│FKI미디어>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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