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197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장기이식이 성공한 뒤 3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장기기증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증자 수가 턱없이 부족해 매년 1000여 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2695명으로 연평균 10%씩 증가하는 추세지만, 생존자 장기이식은 1994건, 뇌사자 장기이식은 1751건에 불과하다. 이처럼 장기기증은 ‘아름다운 선행’이지만 실천으로 이어지기가 쉽지만은 않다. [일요서울]은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의 신장을 떼어준 우리 사회의 숨은 천사, 조시운(30)씨를 만나봤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장기기증 서약 붐이 일기도 했지만 장기기증 서약을 한 사람은 전 국민의 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이 활발하지 않은 데는 신체 손상을 꺼리는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정서적 거부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별한 일 아닌 당연한 일”
조시운씨는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는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조씨는 3년 째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는 박모(19)군에게 신장을 기증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지난 6일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이번 기증 당시 ‘두려움’보다는 ‘행복’이, 자신이 ‘준 것’ 보다는 ‘받은 것’이 더 많다면서 자신의 나눔이 ‘특별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조씨는 “마치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세상이 동화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남에게 100을 주면 100, 아니 그 이상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신장이식 수술을 준비하는 기간이 6개월이었는데 그 기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가 장기기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는 ‘가시고기’라는 책이었다. 가시고기는 백혈병이 세 번이나 재발한 아들이 골수 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됐다고 한다.
조씨는 “이 책이 나에게 큰 ‘울림’을 전해줬다. 아들이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고통이 책을 넘어 나에게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참으로 귀한 나눔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가시고기가 준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 달려가 사후 장기기증과 조혈모세포 기증을 서약했다. 그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것만큼 멋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번 신장기증 결심에는 죽마고우였던 친구의 투병생활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6년 전 조씨의 친구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더니 급기야 만성신부전을 진단받게 된 것. 평소 술 담배를 전혀하지 않고 매우 건강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조씨는 친구가 갑작스레 얻게 된 병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일주일에 세 번 4시간씩 혈액투석을 받으며 생기를 잃어가는 친구와 그 곁에서 노심초사하는 친구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씨의 안타까움도 커져만 갔다.
조씨는 “친구가 어머니로부터 신장이식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신장이식을 결심하게 됐다. 신장이식을 결심한 이후에 주변에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에 칼 대는 것 아니라는 만류도 많이 받았고, 부모님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신장이식 릴레이 선행 이어져
조씨가 신장이식을 하기 까지는 주변의 도움이 컸다. 제철업에 종사하고 있는 조씨는 직장 동료들의 배려로 한 달이라는 특별한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씨는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신장기증을 하려면 주변에 폐를 끼쳐야 했다. 교대 근무를 하는 터라 수술 때문에 한 달간 회사를 쉬게 되면 다른 동료들이 쉬는 날에 못 쉬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었다. 신장이식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니 동료들이 오히려 좋은 일 한다고 격려해주고 자기 몸처럼 걱정해줘서 감동했다”고 털어놨다.
조씨의 신장이식은 또 다른 기적을 낳았다. 조씨의 신장기증으로 총 4명의 신장이식 릴레이 수술이 이뤄지게 된 것. 조씨의 신장이식으로 아들이 만성신부전을 벗어나게 된 것에 감사한 박모군의 아버지는 오는 6월 또 다른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다. 조씨의 신장기증을 시작으로 2명의 만성신부전 환자가 건강한 삶을 선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이런 릴레이 기증이 계속돼 건강을 되찾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소망을 전했다. 조씨는 이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장기이식이 좀 더 활발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내 가족이 아픈데 가족 중 누구도 장기가 맞지 않는다면 마냥 넋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굉장히 막막하고 슬플 것이다. 서로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도우면서 산다면 그게 바로 행복일 것”이라고 싱긋이 웃었다.
조씨는 누구나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이 기회는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는 기회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이 세 번의 기회는 남을 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번이 세 번의 기회 중 처음이 된 것 같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운도 따라줘야 하고 노력도 필요하다. 신장이식을 한 것을 내가 희생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일을 통해 내가 받은 것들이 더욱 많다. 삶의 자세도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매 순간이 행복하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