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대·청국장 이어 지역공구상 사업까지 철수
중소상인 “LG상권 철수 따른 반사이익 기대”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손톱 밑 가시를 뽑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거대자본을 앞세워 중소상권을 위협한다는 중소상인과 정부의 지적에 따라 대기업들이 모 회사가 보유한 중소업종 계열사에 대한 사업철수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것도 2·3세들이 앞 다퉈 만들었던 제빵사업과 커피사업 등에 대한 철수의사를 밝히면서 중소상권이 일부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도 잇따른다. 여전히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이며, 박근혜 정부 눈치 보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만연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선 “재계 맏형들이 솔선수범해서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대기업의 중소업종 진출의 끝이 보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중소업종에서 철수하는 대기업의 전횡을 짚어본다. 이번호는 LG家 편이다.
LG그룹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과 GS그룹 허만정 회장의 동업으로 시작됐다. 이른바 구씨·허씨 간 동업 정신으로 2004년 그룹 분리 시까지 동고동락해 왔다. 이를 두고 성공적인 파트너십이라 부르고 따라 배울만한 모범 사례로 평가하는 것은 동업의 불모지대인 우리 경영 환경에 비추어 볼 때 대단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특정 파트너십이 깨지기도 한다는 것은 럭키와 칼텍스의 제휴·협력 관계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났다.
결국 분리 당시 맺었던 신사협정도 2010년부턴 작은 균열이 보이더니 최근에는 중소업종 진출로 또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중소업종 철수 빛과 그림자
LG기업사를 돌이켜보면, 럭키그룹을 성장시킨 제품에는 독과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약·합성세제·TV·세탁기·냉장고·선풍기·전화기 등등 오늘날 LG를 있게 한 과거의 이 같은 독과점 품목들은 LG의 빛과 그림자를 이루었다.
플라스틱·전기전자·석유화학 등 근대적 기업군을 형성하는데 있어 막대한 발판이 된 것이 인정되면서도 소비자의 희생 위에서 대기업이 부를 쌓았다는 비판은 좀처럼 피하기 어려웠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마음껏 누린 결과 부의 확장 속도나 범위가 광폭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등장하기 전까지 제품 가격을 과도하게 높여 받기도 했고, 독점상태가 계속되었더라면 그 같은 행태가 지속되었을 거라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탓에 LG의 중소상권 철수에는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이 있은 후 실시된 것이 종종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문제가 됐던 계열사 LG서브원의 산업 자재 도매센터(MWC) 사업은 일부 시민단체와 경제단체로부터 지적이 이어졌다.
LG서브원이 창원과 구미에서 운영하고 있는 회원제 산업 자재 도매센터에 대해 지역 중소상인의 상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MWC사업은 지역 중소 공구상을 대상으로 한 회원제 도매업이다.
이에 따라 LG서브원은 더 이상의 사업 확대가 어렵고 기업 이미지 훼손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을 철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3월 초부터 사업 철수의 취지를 설명한 공문을 발송하는 등 회원사와 협력회사에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LG 서브원 관계자는 “향후 소매업 진출로 중소공구상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오해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에 이어 철수 방침을 밝혔던 국내 LED조명 사업도 중소상인들의 반발을 산 후 공공 시장철수 방침을 밝혔었다.
2009년 LED조명 사업을 시작한 LG전자는 지난해 공공 시장에 첫 발을 내밀었다. 공공기관 물자구매 시스템 나라장터에 따르면 LG전자는 10억 원 규모의 LED조명을 공급했다.
나라장터 통계에 따르면 삼성LED가 지난해 약 90억 원, LG전자 10억 원, 금호전기가 27억 원을 공급한 바 있어 중소기업 입장에선 대기업 및 중견기업 철수로 인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국콘크리트 혼화제 협회소속 중소업체들과 사법정의 국민연대 산하 중소기업 생존권 운동본부 관계자들 또한 서울 여의도 LG화학 본사 앞에서 “22조 재벌기업 LG화학은 콘크리트 혼화제 시장에서 손을 떼라”며 집단 시위를 벌이고 있다.
LG화학이 혼화제 사업에서 철수를 해야 혼화제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계열사인 LG상사(대표 하영봉)도 지난 4월께 와인 수입판매 사업에서 손을 땠다.
LG상사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와인유통을 중소기업 업종으로 분류하면서 사업을 철수하기로 지난주 결정했다”며 “와인수입 자회사인 ‘지오바인’과 판매 자회사인 ‘트윈와인’ 두 곳 모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으로 곧 M&A가 성사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트윈와인은 현재 전세계 12개 국가에서 30여 개의 브랜드, 3000여 가지 와인을 수입해 판매해 왔다.
방계기업 아워홈도 순대·청국장 사업서 철수했다.
삼성가인 호텔신라의 커피·베이커리 사업 철수에 이어 LG가인 아워홈도 순대·청국장 소비재 사업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순대·청국장 사업 확장 자제 권고안에 대해 내부 검토를 진행한 결과 B2C(소매) 시장에서의 순대·청국장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워홈 관계자는 “그 동안 투자해온 최신 설비 및 영업에 대한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상생 협력에 적극 동참한다는 취지에 따라 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편 아워홈은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아들 구자학 회장 일가가 운영하는 회사로, 지난 2000년 LG유통에서 분리 독립 운영돼 왔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