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에로배우다”
“나는 대한민국 에로배우다”
  • 이광수 기자
  • 입력 2013-05-13 09:49
  • 승인 2013.05.13 09:49
  • 호수 993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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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신 도중 실제 삽입도 해

                                                                                                             원정 AV·SM 일본행 수입 짭짤
전두환정권 에로영화 발전 큰 기여

[일요서울ㅣ이광수 기자]인터넷의 발달로 비디오테이프 시장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와 함께 에로배우들의 영역과 활동 범위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배우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AV 촬영까지 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일요서울]은 1980년~90년 대 호황을 누렸던, 뭇 남성들의 호기심과 환상을 심어 준 에로비디오 시장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지난 7일 비디오 시장의 메카라 불리는 세운상가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는 불법 성인물을 찾아봤다. 그러나 소문과는 다르게 에로비디오테이프를 판매하는 곳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한 평생을 세운상가에서 비디오 장사를 했다는 김모(70)씨를 만나봤다.

“비디오 시장은 망했다. 하루에 한 개 팔리는 것도 감지덕지다”라며 구경만 하는 기자에게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하라고 닦달했다. “다 옛날 얘기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나오는데, 무엇하러 사겠는가. 나야 어쩔 수 없이 장사하는 거지”라며 씁쓸한 기색을 내비쳤다. 

기자는 비디오테이프 업자의 신세한탄을 등지고, 에로영화에 등장하던 배우들을 찾아봤다.  김모 감독과 이모 PD에 따르면 “대부분 에로배우들은 자취를 감췄다가 돌연 나타나곤 한다. 또 일본에 가 AV촬영을 하거나, 시집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오히려 연락을 기다리는 편이라고 밝혔다.   

에로배우 전문 A 엔터테이먼트 관계자는 “배우들이 인터뷰 자체를 귀찮아한다. 때문에 돈을 지급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속편하다”라며 인터뷰자체는 스케줄이 많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강쇠 시리즈만 7편 주연 맡아

에로배우들과의 인터뷰가 어려웠으나 뜻밖에 1980~90년대를 풍미한 에로배우 겸 감독 한명구(58)씨를 만나 에로배우의 삶과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영화계는 1987년을 기점으로 검열이 완화됐다. 때문에 에로틱한 영화가 호황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유인즉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 펼친 3S 정책 때문이다. 프로야구와 에로영화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려놓고, 정치에는 신경 쓸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영화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35mm 극장용 영화와 16mm 비디오 성인영화로. 그 당시에는 산딸기, 빨간앵두, 애마부인이 큰 히트를 쳤다”며 뒤를 이어 변강쇠 시리즈 같은 에로틱 버전물이 호황을 누렸다고 회상했다.한 감독은 월남전 현역 종군기자로 또 유명 연예인 매니저 겸 에로배우로 현재는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성인영화는 극장 개봉용이었으나 1990년부터 16mm 비디오가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에로비디오 시초인 ‘야생마’는 3만장이라는 기록을 세워 에로 비디오의 붐을 일으켰다. 해당 출연자들은 극장용인지 비디오인지 모르고 출연했다”며 열악했던 시절 배우의 꿈을 키운 이들의 고충을 설명했다.

“그 당시는 메이저 영화가 없던 시절이다. ‘마지막 변강쇠’로 3만 5천 장을 판매하는 진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뒤를 이어‘서울 변강쇠’, ‘돌아온 변강쇠’ 시리즈가 나왔는데 6~ 7만 장이나 팔렸다. 16mm 비디오 시장 역시 지명도가 높은 배우들을 써야했다.

나는 극장용 사극영화에 주연을 많이 했기 때문에 변강쇠 시리즈 중 7편에 주연을 쉽게 맡을 수 있었다”며 비디오 에로배우 경쟁도 치열했다고 덧붙였다.

“그 시절은 출연료만 받고 끝나는 시절로, 주연배우가 200~300만 원 받았다. 일반적으로 16mm 비도오만이 성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극장 개봉 영화도 성인물이 있었다. 뽕, 애마부인, 헬로우 변강쇠, 애마 변강쇠 등이 이에 해당된다”며 “변강쇠라는 타이틀은 내가 다 가지고 있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300편의 출연 1000번의 베드신

한 감독은 300편의 달하는 에로영화에 출연했고, 1000번이 넘는 베드신을 가졌다. “변강쇠 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한편 당 15~20명의 여성들과 베드신을 갖는다. 키스나 가슴애무를 주로 하지만, 간혹 사고가 날 때도 있다. 나 역시 B배우와 촬영 도중 직접 성관계를 가졌다.

업계 은어로 ‘공사’라는 것이 있다. 주요 부위에 테이프를 붙여 접촉을 금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삽입이 이뤄질 때도 있다. 이러는 경우 둘만이 안다”며 서로간의 감정 없이 강제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그렇지만 상복은 없다. 실제로 나에게 들어온 작품을 조형기씨와 안승훈씨가 출연해 신인상을 받았다. 약 오르더라”며 “지금도 충분히 베드신을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좋은 애들도 많아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할 것”이라며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대중들이 에로배우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에로를 한다. 또 이름 있는 배우가 베드신을 찍으면 예술이고, 16mm 에로비디오 배우가 하면 외설이다? 그건 맞지 않다. 똑같은 배우고 장르가 다를 뿐이다. 그러한 선입견이 배우들의 영역을 좁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적인 에로배우는 거의 없다는 한 감독은 “요즘은 케이블방송 아니면 에로배우들이 활동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너무 유치하게 찍는다. 예전 16mm비디오와는 다르게 너무 엉성하게 찍더라. 신경을 좀 썼으면 좋겠다”며 영화를 찍고 싶은 배우들의 순수함을 모독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시집간 배우들 그리고 후유증

1980대 초반 17명의 에로배우들이 돌연 일본AV 진출을 한다. “일본에 진출하면 두 가지 장르의 출연한다. AV(Adult Video)와 SM(sadism and maso-chism)로 나뉘는데, SM은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성인물이고, AV는 실제 성행위를 갖는 노골적인 성인물이다. 나 역시 1989년도에 AV를 출연하기 위해 일본에 갔었다. 총 2편에 12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출연했다”고 당당히 밝혔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에로배우 류미오씨의 근황을 묻자 한 감독은 “류미오는 정말 대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내가 매니저를 하면서 홍보도 많이 했는데, 그녀가 우울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정말 안타깝다. 현재는 일본에서 무용을 하고 있다”며 에로배우를 너무 가볍게 보는 시각에 대해 분개했다.  

사이즈 허위로 작성하면 안돼
에로영화의 출연하는 배우들은 어떤 식으로 오디션을 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한 감독은 “오디션 개념보단 추천 받는 경우가 많다. 호텔보다는 사무실에서 이뤄진다. 배우들은 프로필 (신체)사이즈를 거짓말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가슴 정도는 노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노출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전에 성인물을 찍는 것을 예고하고 ‘보여줄 수 있겠는가’라고 의사를 묻는다. 개중에는 유명한 배우가 가슴을 노출하고 배역을 따 가는 경우도 있다”며 배우들의 치열한 경쟁을 상기시켰다.

현재 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한 감독은 “지금 진행 중인 영화의 레이싱걸 및 미스코리아를 섭외할 예정이다”라며 자신은 남들과 다른 발상, 기획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588(사창가)출신 에로배우도 있었다는 그는 “청계천 사창가 주변에 지나가면 나를 알아본 매춘부들이 ‘변강쇠 오빠지. 오빠 물건 엄청 크지 저리로 가’라고 했다”며 호탕하게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내 친구 마광수와 가끔 연락을 한다. 그 친구보고 놀러 오라고 하면 ‘여자를 소개시켜주면 가겠다’고 한다”며 성 아이콘 마 교수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이어 그는 “이덕화는 고등학교 동기다. 또 송해 선생님은 내 양아버지다”라고 밝혔다.

“지금도 개봉을 못하고 있는 영화가 200편이 넘는다. 그만큼 영화계가 어렵다. 에로배우들은 오죽하겠는가. 나 같은 경우는 배역을 맡고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해 잘 된 케이스다. 배우가 될 때 이대근 씨 뒤를 잇는 변강쇠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룬 셈이다.”

에로배우라고 하면 대중들의 인식이 좋지만은 않다는 그는 “남이 하면 에로고, 자신이 하면 예술이라는 말로 구분지어선 안된다”며 “앞으로도 배우로써 감독으로써 에로틱하면서 해학적인 한국 토속 에로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광수 기자 pizacu@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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