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연간 접대비 1조4000억원의 실체
[직격토로] 연간 접대비 1조4000억원의 실체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3-05-07 10:30
  • 승인 2013.05.07 10:30
  • 호수 992
  • 3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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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주점 안가면 곧장 실적이 떨어지는데…

접대비 상위 10개 기업 중 6곳이 제약사
전문가 “공정한 경쟁에 악영향 줄 수도”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기업들이 법인카드를 사용해 불타는 밤을 보내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와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손원인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접대비 현황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카드 접대비 명목으로 룸살롱, 나이트클럽, 단란주점 등에서 결제되는 액수가 연간 1조4000억 원(2011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매매를 포함한 불건전 접대영업도 만연해 있다는 점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공정경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일선에선 “불건전 접대를 하지 않으면 곧장 실적이 떨어진다. 우리도 살기위해 하는 생계형 접대”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이러한 접대를 대체 왜 끊을 수 없는지 일선에서 활동 중인 영업사원들을 통해 들여다봤다.

“우리도 하기 싫은데 고위층이 더 바란다”

지난 2일 [일요서울]과 만난 제약업계 영업사원 A(32)씨의 말이다. 올해로 6년 째 영업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기업들이 펼치는 접대의 세계는 상상 이상의 규모와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접대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공급에 의한 수요가 아니라 수요를 채우기 위한 공급’이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A씨는 “우리도 사람이고 가족이 있다. 불건전 접대가 좋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느냐”며 “현실은 다르다. 처음 거래처를 방문하면 업무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일단 접대가 선행돼야 업무가 진행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접대를 원하는 계층에 대한 지적을 이어갔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접대를 받는 것이다. 우리 업종을 예로 들면 의사, 병원장, 이사장 등의 고위층”이라면서 “이러한 사람들이 결정권을 쥐고 흔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더 화가 나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을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라며 “접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입을 닫는다. ‘좋은 데 가서 한잔하자’고 하면 우리가 알아서 술과 여성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야 한다. 이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데리고 가는 우리만 나쁜 놈이 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영업사원은 “접대 문화라는 것이 원래는 나쁜 의미가 아닌 것으로 안다. 건전한 접대문화가 쌓이고 공정한 경쟁이 되면 우리도 편하다”면서도 “그렇지만 정부나 기관에서 단번에 일망타진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없어질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우리가 다니고 있는 업체 같은 경우 대기업들에게서 한 자리라도 빼내려면 접대가 정답이라는 인식이 많다”며 “접대가 곧 경쟁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우습지만은 않다”고 전했다.

치열한 중소기업…경쟁력 저하 우려 

실제 손 연구위원이 발표한 자료 중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접대비 차이를 봐도 이 같은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기업은 매출 11조3824억 원 가운데 559억 원, 0.49% 를 접대비로 지출한 반면 중소기업은 매출 5조8368억 원 중 1.25%인 732억 원을 접대비로 사용했다. 매출은 대기업에 비해 절반 수준이지만 접대비는 200억 원 가량 더 높은 수치를 보였다.

게다가 유흥업소 법인카드 결제 규모는 2007년에는 1조5904억 원, 2008년 1조5282억 원, 2009년 1조4062억 원, 2010년 1조5335억 원 등으로 경기변동의 영향을 적게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중 2011년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유흥업소 업종별로 나누면 룸살롱이 9237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단란주점 2331억 원, 나이트클럽 507억 원, 요정 438억 원 순이었다.

특히 2011년 코스피 상장 기업 668개의 기업 당 평균 접대비를 계산하면 연 4억9500만 원 수준을 넘어섰다. 또 접대비 한도 초과율이 가장 높은 업체는 제약사와 주류 제조업체였다. 접대비 한도 초과율 상위 10개사 중 6곳이 제약사였고, 2곳은 소주 업체로 밝혀졌다. 현행 세법상 접대비는 매출액이 100억 원 이하일 땐 0.2%(2000만원), 매출액 100억 초과~500억 원 이하 0.1%, 매출액 500억 원 초과 0.03% 비율로 한도가 인정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지나친 접대 행위가 공정거래 저해, 성매매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각 기업은 공정하고 깨끗한 경쟁을 생각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커졌고, 접대비 명목으로 쓰인 지출은 결국 소비자가에도 영향을 미쳐 괜한 가격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에 손 연구위원은 “매출액 대비 접대비의 비율은 수입금액 규모가 커질수록 비율이 작아진다”며 “기업 당 접대비 규모는 수입금액 규모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 업종에 비해 접대비 지출비율이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는 제약업 및 주류제조업의 경우 과도한 접대행위가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는 불공정한 거래관행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일부 접대비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인 손금산입한도의 상향 조정을 희망하는 기업들에 대해선 “접대비 지출이 유발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손금산입한도를 상향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제도적 유인장치를 마련해 유흥업소 접대비 지출이 문화접대비로 전환되도록 해야한다”며 “비생산적 접대 관행의 개선으로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문제점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노무현 정부 시절 시행됐던 ‘접대비 실명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4년 정부는 접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1회 50만 원을 넘는 접대에 대해서는 이름과 장소를 밝히는 ‘접대비 실명제’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전체 접대비가 다소 줄어드는 효과를 보긴 했지만 결국 기업 관계자들이 유흥업소와 짜고 접대비 금액을 쪼개 여러 번 지불하는 편법에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접대비 실명제’는 결국 이명박 정부였던 2009년 실효성의 문제와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실명제에 대해 “만약 실명제를 다시 검토한다면 모든 접대를 대상으로 하거나 불건전 영업을 전면 금지하는 방향이 돼야 할 것”이라며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언젠간 시행해야 할 정책”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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