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유수정 기자]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달 29일 연임 포기를 공식화함으로써 속칭 ‘MB’맨으로 일컬어지던 금융 4대 천왕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에 금융계의 관심은 회장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 활동에 들어간 우리금융지주와 오는 7월 임기가 끝나는 어 회장의 후임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KDB산은지주에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홍기택 중앙대학교 교수가 회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우리와 KB 역시 박근혜 관련 인사가 뽑힌다면 3대 금융지주에 ‘신(新) 3성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더불어 금융당국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형국에 금융 공기업과 금융 관련 협회까지 벌벌 떨고 있는 실정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대형화·민영화…새 술은 새부대에
금융권 차기 회장 인선에 관심 쏠려
금융계 4대 천왕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학연·지연 등으로 얽혀 재임기간 내내 낙하산 논란이 뜨거웠던 인물들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일컫는다. 이들은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며 임기를 마치기 전에 자진 사퇴하는가 하면 연임 포기 선언을 하기도 해 세간의 관심이 주목된 상태다.
김승유 전 회장은 지난해 2월 가장 먼저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강만수 전 회장이 지난 3월 사퇴 의사를 표명했으며 뒤이어 이팔성 회장 역시 지난달 14일 사의를 내비쳤다.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던 어윤대 회장까지 같은 달 29일 끝내 연임을 포기했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7년간 금융계를 이끌었던 이들이 대거 퇴진하게 된 배경은 국정운영과 공감대를 이룰 인물이 필요하다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신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임기가 남았더라도 필요하다면 금융기관 수장을 교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미리 물러난 김 전 회장을 제외한 3명 모두가 신 위원장 취임 한 달 만에 사의 의사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MB정권’이라는 후광으로 덕을 봤던 이들이 모두 사퇴 또는 사의를 밝힘에 따라 금융권 4대 천왕시대가 막을 내리고 금융권 수장 교체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4대 천왕이라 불리는 만큼 이들은 남다른 지도력을 바탕으로 저마다 업계에 한 획을 그을만한 사업들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자회사 인사와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기도 해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또 이들이 하는 일에는 늘 ‘정권 실세’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2010년 7월 KB 금융회장에 취임한 뒤 임기 3년을 채우고 물러나는 어 회장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교수로서 총장을 지내고 MB정부 출범에 맞춰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황영기, 강정원 전 회장이 잇따라 물러나는 ‘KB사태’의 수혜자로 불리는 그는 우리금융 인수를 추진한데 이어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추진하는 등 KB의 이미지를 올리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지난해 ING생명 인수가 사외이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이사회와의 잡음으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또 ISS 내부 보고서 유출로 최측근을 해임하는 등 곤혹을 치룬 바 있다.
전 정권 후광 업고
굵직한 현안 주도
2008년부터 재임한 이 회장의 경우 한일은행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으로 이 전 대통령의 서울 시장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로 영입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또 이 전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우리금융 민영화 실패를 겪었지만 어 회장과 마찬가지로 금융위기 이후 부진을 모두 씻어내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이 회장의 취임 이듬해인 2009년부터는 3년 연속 1조 원대 순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의 경우 MB 정부 시절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을 역임하던 당시에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지냈다. 또 이 전 대통령과 같은 소망교회 라인이라 대표적인 MB인맥으로 분류된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재임했지만 그간의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다. 금융지주 출범 전 5000억 원에 불과했던 당기 순이익을 2011년 1조4124억 원까지 늘렸다. 또 산은지주와 산업은행의 공공기관 해제를 이끌며 민영화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KDB 다이렉트’로 대표되는 파격적인 소매금융 영업을 펼쳤다. 그러나 고환율 정책 과 부자감세 등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정권 실세에 대한 특혜라는 비난 속에 우리금융 인수 후보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2008년과 2011년 연임에 성공한 장수 회장이다. 그는 우리금융에서 외환은행 인수로 급선회해 4대 천왕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하나금융의 경우 우리·KB·신한 등 시중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 가운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지만 외환은행을 인수함으로써 다른 금융지주와 동등한 위치로 만들었다.
산은지주 회장 교체
‘신 3성시대’ 열릴까 촉각
이미 회장이 교체된 KDB산은지주를 비롯해 우리금융지주, KB금융지주의 새로운 회장 선출이 관심사다. 금융계에서는 이들 3대 금융지주를 두고 “1세대 4대 천왕이 지고 제 2의 4대 천왕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 회장에 선임될 경우 이 같은 관측이 확고해진다. 이로써 금융권의 관심은 자리가 빈 우리금융과 KB금융의 차기 회장 인선에 쏠리고 있다.
이미 산은지주엔 박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 자리했다. 산은지주는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금융위원회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회장을 선임한다. 강 전 회장의 후임으로 선정된 홍기택 중앙대학교 교수는 서강대학교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1년 후배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해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금융은 현재 회추위를 구성해 회장 후보 공모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차기 수장 찾기에 나섰다. 6일까지 후보를 공모해 이르면 이달 중순 최종 후보를 낙점한 뒤 다음달 10일 주총에서 최종 선임 절차를 밟는다.
현재 우리금융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전·현직 우리금융 내부 출신의 이덕훈 키스톤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와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이순우 우리은행장, 이종휘 신용회복위원장 등이다. 외부 인사로는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과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KB금융도 조만간 회추위를 구성, 어 회장의 후임 인선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 하마평에는 민병덕 국민은행장과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민유성 전 산은지주 회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밖에도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임종룡 전 국민총리실장 등 관료 출신도 꾸준히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나금융의 경우 사실상 경영진이 선임한 인사들로 반수 이상 채워지기 때문에 회추위가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금융당국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까닭에 금융권의 분위기는 날카롭다는 의견이다. 대형 금융지주사 수장을 물갈이한 만큼 나머지 금융 공기업과 금융 관련 협회 역시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관에도 일명 ‘MB맨’으로 대표되는 인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은 진퇴 여부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