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새 정부의 금융권 지도에서 옛 재무부 출신인 정통 모피아(Mofia)들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전국은행연합회가 ‘경제기획원(EPB) 안전지대’로 분류돼 주목받고 있다. 특히 EPB 출신인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지난달 출범한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으로 선임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박 회장이 이전 정부에서 선출된 수장이고 초기 경제수석을 역임했음에도 EPB라는 이유로 중용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개 은행 연합임에도 관가 입김 가장 거세
회추위 없고 예정된 후보에 만장일치로 찬성
현재 은행연합회는 22개 국책ㆍ시중은행들이 모인 은행들의 연합체다. 회원사로는 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대구ㆍ부산ㆍ광주은행 등 지방은행, 산업ㆍ기업ㆍ수출입은행과 같은 특수은행이 있으며 주택금융공사를 비롯한 금융공기업도 속해 있는 민간 협회다.
본디 은행연합회의 수장은 현재의 연합회로 개편되기 전까지 한국은행 총재가 겸임해 은행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을 전달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1984년 개편 이후 근 30년 동안 회원사들이 회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식을 취했음에도 대부분 관료 출신의 인사가 선임돼 왔다.
단독 추천에 전원 찬성 관료 시나리오론 대두
이러한 회장 선출이 반복되는 이유는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회장 후보를 단독으로 올려 통과시키는 일그러진 인사시스템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회원사들이 총회를 열어 회장 후보를 추천하고 동의하지만 이렇다 할 회장후보추천위원회도 없이 시작해 만장일치의 거수기 형태로 종료된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역시 지난해 11월 따로 회추위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회 시 추천을 받고 참석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 선출됐다. 박 회장의 이력이 은행연합회의 수장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후보가 추천되자마자 만장일치로 선임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아이러니다. 이로 인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미리 각본을 짜서 연출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는 자조 섞인 시나리오론까지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연합회 회장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다시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회원사들 스스로가 정부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한 회장을 원하는 탓도 크다”면서 “만약 내년 11월에 박 회장이 연임하지 않는다 해도 후임으로는 정통 모피아가 아니라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출 수 있는 EPB 출신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부터 EPB 대거 편중 논란
본래 모피아란 현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옛 재정경제원 출신 인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재무부(MOFE, Ministry of Finance Economy)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사실 이 모피아 중에서도 정통 모피아는 이보다 거슬러 올라간 옛 재무부(MOF, Ministry of Finance) 출신 인사들이다. 또한 정통 모피아에 대비되는 EPB는 경제기획원(Economic Planning Board)으로 각 출신 인사들은 팽팽한 맞대결을 펼치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통 모피아와 EPB를 합쳐 모피아라 칭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앞서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은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보수적인 정통 모피아는 금융ㆍ세제 전문으로 구체적인 현안을 점검하는 데 반해 다소 유연한 EPB는 기획ㆍ예산에 능해 미래의 청사진을 내놓는 식이다. 이러한 성향은 “모피아는 땅을 살피고 EPB는 하늘을 본다”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역대 정부는 정권 교체 때마다 진행한 새 인사 꾸리기에서 한 쪽에 치우치면서도 양측 모두를 고루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근한 예로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EPB가 우세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정통 모피아들이 한껏 기를 폈다. 그렇더라도 보통 힘을 가진 쪽이 주요 감투를 꿰차고 나머지 자리는 분배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현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새 내각을 구성하기까지 EPB를 대거 편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통 모피아들의 불만을 샀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라인 투톱은 모두 EPB 출신이다.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국정기획비서관 역시 EPB가 싹쓸이했다. 그나마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정통 모피아 인사로 금융당국에 외로이 재임하게 됐다.
밀려난 정통 모피아 vs 웃는 경제기획원
정부뿐 아니라 금융사들 역시 정통 모피아 배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정통 모피아로 꼽히는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새 정부의 압력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앞서 제10대 은행연합회장에 올랐던 신동규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역시 정통 모피아로 분류된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신 회장은 직간접적인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새 정부의 미국 방문 경제사절단에서도 제외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 정통 모피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신 회장이 MB맨으로 분류돼 더욱 배제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병원 회장이 MB 정부 시절 EPB 출신으로 초기 경제수석을 지내고 은행연합회의 수장이 된 배경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박 회장이 타 금융권 회장들처럼 교체되지 않고 박근혜 정부의 서민경제정책 중 핵심 사업으로 분류되는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을 겸임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MB 시절 선임된 박 회장이더라도 EPB 인사를 살리는 차원에서 중책을 맡겨 남아 있는 은행연합회장 임기도 보장하겠다는 교감이 형성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MB 시절 경제수석까지 지낸 박 회장이 새 정부에서 MB맨으로 분류되지 않고 EPB 출신 혜택까지 받는 배경에는 정통 모피아 배제가 깔려 있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EPB 출신을 기용하는 새 정부에서 국민행복기금 이사장까지 맡은 것은 은행연합회 수장 자리의 중간교체방지권을 획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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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