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 대기업 오너·임원들 왜 이러나
[집중해부] 대기업 오너·임원들 왜 이러나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4-29 10:20
  • 승인 2013.04.29 10:20
  • 호수 991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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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재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일요서울│박수진 기자]화이트칼라 범죄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20일 포스코(회장 정준양) 계열사 임원이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 승무원을 폭행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사건 당시 운항일지로 추정되는 내용이 상세하게 공개돼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아보기엔 힘든 상황. 앞서 일부 대기업 임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내세워 성추행은 기본, 성폭행까지 저지른 바 있으며 재계 오너는 직접 청부 폭력을 지시하는 등 사회에 각종 문란을 일으켜 왔다. 이에 [일요서울]은 ‘포스코 임원 폭행 사건’을 통해 그동안 사회적 지위에 걸맞지 않은 재계 오너 및 임원들의 사건·사고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포스코 임원,  비상식적 기내 난동에 누리꾼 ‘경악’
STX 임원, 지적장애인 3급 여성 성폭행
CJ임직원, 직위 내세워 성추행 하다 덜미
피죤 회장, 청부 폭력 지시 혐의로 구속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 에너지 임원인 왕모(53) 상무가 지난 15일 인천공항에서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여성 승무원을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지난 22일 왕상무는 해당 사건을 인정, 사표를 제출해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지만 사건은 각종 패러디를 양상하며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더욱이 SNS에서 해당 항공사 승무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운항일지’가 공개돼 논란은 더욱 증폭 됐다. 하지만 현재 해당 운항일지가 진본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항공 측 역시 “공식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공개된 운항일지에는 왕상무가 비행기에 탑승한 후 벌어진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시간 순으로 정리돼 있어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운항일지에 따르면 왕상무는 비행기에 탑승할 때부터 승무원에게 ‘자리가 비어있지 않다’며 서슴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음식 주문 시에는 ‘아침 메뉴에 왜 죽이 없냐’며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 ‘제공된 밥이 삭은 것 같다’며 새 밥을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승무원은 새 밥을 제공했고 왕상무는 ‘제공된 밥도 삭았다. 라면과 삼각 김밥을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제공 된 라면에도 왕상무는 ‘라면이 덜 익었다. 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라면을 다시 끓여 줄 것을 강요했다.

식사 중에는 큰 그릇과 냅킨, 린넨 등을 바깥 통로 쪽으로 던지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계속해 보이기도 했다.

또한 ‘에어컨이 고장 난 것 아니냐’며 기내 환기와 실내 온도에 대한 불만도 표출했다. 승무원의 벨트 착용 제안에는 “몸을 돌리지 못 하잖아”라며 벨트 착용을 거부했다. 이밖에도 면세품 구입과 관련해 ‘이 물건 내가 받을 수 있어? 없어? 돼, 안돼?’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그날 물건을 못 받으면 너 책임이야’라고 하는 등 왕상무의 비상식적인 행동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특히 승무원 폭행은 왕상무가 주문하지 않은 라면을 요구한 뒤, 주지 않았다며 화를 내면서 시작됐다. 그는 “단발머리 얘 어디 갔어?”라고 하며 좌석에서 일어나 막무가내로 기내주방(GLY)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갖고 있던 책으로 승무원의 눈두덩이를 때리며 ‘나는 왜 라면 안 줘? 나 무시해?‘라고 말했다. 이에 해당 승무원은 ‘죄송합니다’ 라며 사과했고, 주문을 재확인 했지만 왕상무의 라면 요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피해 승무원은 곧장 가격 사실을 윗선에 보고했고, 사무장은 왕상무에게 승무원 가격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왕상무는 가격 사실을 부인하며 ‘치지는 않고 눈두덩이 부분에 책을 갖다 댔다고’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승무원의 맞았다고 주장하자 오히려 ‘자기가 그렇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 아냐’고 되물었다. 계속해 왕상무가 가격 사실을 부인하자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한 항공사 측은 ‘기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경찰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왕상무는 미국 공항에 도착해 미 연방수사 당국(FBI)에서 조사를 받을 것인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택하라는 질의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택해 돌아왔다.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지난 22일 포스코에너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왕상무 임원의 비상식적인 행위로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 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를 오늘부로 보직 해임하고 진상을 철저히 파악해 후속 인사조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태가 가라앉지 않자 지난 23일 정준양 회장까지 직접 나서 “포스코가 과연 국민기업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돌이켜 생각해 보고 다시는 이런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우리의 일하는 방식, 남을 배려하고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추행에서 성폭행까지

여성을 상대로 한 대기업 임원들의 폭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성추행은 물론, 성폭행까지 비상식적인 행동은 계속돼 왔다. 

앞서 지난 11일 서울 서초경찰청은 STX중공업 임원인 이모(47)씨를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월 9일 내연녀 임모(38)씨의 집에서 30대 지적장애(3급) 여성인 A씨를 성폭행했다. 범행 당일 임씨의 집을 찾은 이씨가 방 안에 있던 A씨를 상대로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것. 내연녀인 임모씨는 자신의 말에 수동적인 A씨에게 “이씨에게 유사성행위를 하라”고 윽박을 지르는 등 이씨의 성폭행을 도우기까지 했다. 조사과정에서 이씨는 “A씨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며 성폭행도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A씨의 체내에서 자신의 DNA가 발견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자 혐의를 시인했다.

터빈·엔진 등 동력기관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이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약 3개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2일 구속되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회사 주변에선 A씨의 병가 제출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STX그룹 측은 “개인적인 일로 회사 측의 입장은 따로 없다”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물어 이씨의 퇴직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CJ그룹 역시 지난해 2월 계열사의 한 임직원이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해당 임직원인 윤모 부장(43)은 가게 여 사장인 B씨(32)가 돈을 받는 순간 “주방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소리쳤다. 주방이 카운터 바로 뒤편에 위치한 터라 B씨가 고개를 돌렸고 그 틈을 타 윤씨는 B씨의 볼에 입을 맞췄다. 화가 난 B씨는 윤씨를 가게에서 쫓아냈지만 다시 돌아온 윤씨는 적반하장으로 B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CJ기업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하지 못하겠느냐”며 가게 안에서 행패를 부렸다.

결국 B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사건은 남대문 경찰서에 넘겨졌다. 하지만 경찰서에서도 윤씨의 발뺌은 계속됐다. 그러나 B씨의 동생이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를 보여주자 그제야 “미안하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게 합의했으면 한다”며 자신의 추행 사실을 자백했다.

당시 CJ그룹 측은 이와 관련해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그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오너 역시 폭행 사건 가담

더 큰 모범을 보여야 할 재계 오너 역시 폭행 사건에서 빠질 수 없다.

특히 2011년 이윤재 피죤 회장은 직접 조폭까지 동원해 청부폭력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 회장은 회사를 상대로 해임무효소송을 제기하고 언론에 회사의 치부를 제보하는 이은욱 전 사장과 김용호 전 상무 등의 입을 막기 위해 5만 원권 6000장으로 이루어진 3억 원을 두 차례에 걸쳐 김모 이사에게 건네면서 이 전 사장에 대한 폭행 지시를 내렸다. 이에 같은 해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 5단독 임성철 판사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전직 임원을 청부폭행한 혐의(폭처법 위반ㆍ범인도피 등)로 이 회장을 법정구속하고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이윤재 피죤 회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역시 2007년 만취 상태에서 승무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폭언을 내뱉는 난동을 부려 재판까지 받아 2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 받은 바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폭행, ‘역사’로 이어지나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폭행사건은 공공연한 비밀로 발생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최대 기업인 C사의 경우 부인인 D씨와 딸 E씨 간의 안하무인 격 폭행사건이 빈번한 것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하다. D씨는 이 회사에 다니는 딸 E씨에게 임원들이 잘못하면 곧장 달려와 뺨을 때리기 일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광경을 몇 년간 지켜본 E씨는 이제 스스로 임원들의 뺨을 때리는 등 D씨의 행동을 답습하고 있다.

임원들조차 그녀의 행동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속앓이 할뿐 숨죽이고 있는 게 예사라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회사가 입주한 빌딩에 음식점을 개설하고 직원들에게 업무를 전담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욱 일고 있다.

재벌 2세 가운데 F씨는 성격이 아주 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F씨는 지방에서 서울로 오면서 업무 브리핑을 받다 화가 치밀어 오르자 고속도로 한편에 차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는 비서를 밖으로 불러낸 뒤 때리기 시작했고 비서가 아파하는 틈을 타 차에 오른 후 비서를 남겨둔 채 곧장 서울로 직행했다. 사실 건설업을 하던 F씨의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해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와 동반상생이 정·재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오너들을 비롯한 임원들의 잘 못된 언행은 자칫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은 물론,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soojina6027@ilyoseoul.co.kr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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