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 고리 강화, 박근혜 정부와 역행하나
이사진의 독단적 결단에 피해 대상은 일파만파
만도(회장 정몽원)가 위태롭다. 지난 12일 100%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통해 부실우려가 있는 한라건설에 3386억 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존 순환출자 강화, 계열사 부당지원, 공시 위반 등 총체적 문제에 봉착했다. 이미 동종업계 주변에선 “한라중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계열사 간 상호 출자로 빚어진 1998년 한라그룹 부도 및 만도 매각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만도가 결정한 유상증자에 대한 비난의 봇물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라건설이 제3자배정유상증자를 통해 3435억4600만 원을 지원받았고, 이중 만도가 떠안은 자금이 3385억 원 규모라는 내용의 공시가 시발점이었다.
이들 목소리의 골자는 크게 세 갈래다. 첫 번째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 박근혜 정부가 ‘순환출자 규제’를 선언한 가운데서도 만도가 꼼수를 부려 순환출자를 강행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들은 “만도가 현행 공정거래법상 세 기업 이상이 참여하는 순환출자 규제법이 없다는 법적 공백을 이용해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 시킨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는 “비록 현행 법률상 순환출자가 위법은 아니지만 인수위의 국정과제 보고서에서 기존 순환출자 강화도 신규 순환출자로 보고 이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며 “한라그룹의 최근 움직임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이어 “정몽원 회장은 두 회사 모두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라건설 지분 24.28%와 만도 지분 7.54%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번 결정은 정 회장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의사결정한 게 아닌가하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월 인수위원회 시절, 본격적인 경제민주화를 공표하고 올 상반기 입법을 통해 대기업집단 계열회사 간 신규순환출자 금지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내포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의원 발의된 상태다. 때문에 “그룹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반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이미 만도와 한라그룹은 순환출자 고리가 있었다”며 “이번 만도의 유상증자 자체는 순환출자가 맞다”고 밝혀 향후 제재가능성을 열었다.
기업 신뢰성 무너져 피해 심각
두 번째 지적사항은 기업 신뢰도 문제다. 기업 신뢰도 하락은 어떠한 문제보다 회복세가 더디기 때문에 만도의 발목을 꽤나 잡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만도 측은 그간 한라건설 증자 참여 가능성을 부인해오다 납입일(16일)로부터 2거래일 전인 지난 12일에서야 “만도에서 98.5%를 책임진다”고 밝혀 증권가에 충격을 안겼다.
또 출자를 결정했을 당시 출자 이유에 대해 “마이스터의 물류 인프라 강화와 신사업 전개”라고 밝혔지만, 실제 내막은 지속적인 경영악화를 걷고 있는 한라건설에 대한 ‘생존전략’이었기 때문에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아울러 소액주주 가치를 훼손했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만도의 한 소액주주는 “기업경영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지만, 이렇게 갑작스런 만도의 결정은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며 “괜히 우리 같은 개미투자자만 손해 본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부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만도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했다”며 “향후 주가 회복을 위해서는 기업의 신뢰성 회복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지막 문제는 앞서 지적된 신뢰성 하락에 인한 실질적 피해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건설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라건설 리스크가 만도의 경제 여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비록 정 회장이 지난 17일 보통주 1200주를 장내매수, 보유 주식수가 137만5019주로 증가하는 등 ‘주가 방어’에 힘을 쏟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18일 오전 기준, 유가증권 시장에서 만도는 전 거래일보다 1.31% 내려간 7만5600원에 거래됐다. 이는 같은 달 12일부터 5거래일째 약세를 이어간 것이다. 이중 15일에는 상장된 이후 처음으로 종가 기준 하한가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증권가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잇따라 투자의견과 목표가를 하향조정했다. 동부증권은 목표주가로 현재 주가보다도 낮은 7만 원, 투자의견 역시 시장수익률 대비 10% 이상 낮을 때 부여하는 ‘언더퍼폼(Underperform)’을 제시했다. 현대증권, 신한금융투자, KB투자증권, HMC투자증권, SK증권, 키움증권 등 역시 투자의견을 일제히 하향조정했다.
또한 앞으로도 만도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만도 주요 기관 투자자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손해배상 청구’ 및 ‘소액주주권 행사’ 후속 조치를 검토하는 등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더 큰 문제가 예상되고 있다.
흔들리는 만도, 오묘한 해명
이렇듯 상황이 악화되자 한라건설 리스크를 모두 떠안게 된 만도를 둘러싸고 1998년 그룹 부도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또 만도 측이 내놓고 있는 석연찮은 해명에도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이밖에도 일부에선 앞서 한라건설이 지난해 11월 만도 지분 전량(364만주)을 담보로 우리은행으로부터 3000억 원을 조달했던 점과 그동안 만도가 한라건설에 연수원 공사를 맡기는 등 일감 몰아주기로 보이는 움직임을 들어 만도가 이후에도 한라건설에 대한 추가 지원을 이어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만도 측에서 한라건설 지원 목적으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또한 사측이 “노조와도 문제가 없다”고 내놓은 해명도 만도의 강성 노조로 잘 알려진 금속노조 만도지부의 입장과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관계자는 “1998년 사태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라며 “지속적으로 그룹에 항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기업 측이 원만한 합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노조는 기업노조로 보인다. 지난해 직장폐쇄 당시 사측이 기업노조를 끌어들였다”면서 “기업노조는 우리와 별개의 조직이고, 우리의 반대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만도 관계자는 “순환출자는 한라건설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다”며 “이번 유상증자가 분명히 마지막 지원”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향후 기업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에 대해선 “만도의 펀더멘털이 단단하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도 없을 것”이라며 “한라건설의 유동성도 이번 자금으로 확실히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노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화가 오갔고, 원만한 합의가 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혀 대조적인 입장을 보였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