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삼성·LG 등 ‘일감 나누기’ 움직임 확산
현대차·삼성·LG 등 ‘일감 나누기’ 움직임 확산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4-23 09:26
  • 승인 2013.04.23 09:26
  • 호수 990
  • 3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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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통 큰 결단… 중소기업 지원 ‘파란불’

[일요서울│박수진 기자]박근혜 정부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강한 제재의 뜻을 밝히자, 재계는 각 분야의 경쟁 입찰을 확대하고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발 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회장 정몽구)은 “광고와 물류 분야에서 6000억 원 규모의 발주 물량을 중소기업 등 외부업체에 개방하겠다”며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현대차의 파격적인 행보가 재계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삼성·LG·SK 등 다른 기업들 역시 경쟁 입찰을 확대하는 등 일감 몰아주기 해결책 고심에 나서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차  - 6000억 규모의 발주 물량 中企에 개방
삼성  - 지난해 1월부터 4개 업종 경쟁 입찰 확대
SK·LG  - 자사 광고 경쟁 입찰 통해 외부에 맡겨

현대차는 지난 17일 그동안 계열사 거래 비중이 높아 비판을 받아 왔던 광고와 물류에서, 계열사 간 거래를 줄이고 중소기업에 발주하거나 경쟁 입찰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이날 “올해 국내 광고 발주 예상 금액의 65%인 1200억 원과 국내 물류 발주 예상 금액의 45%에 해당되는 4800억 원 등 총 6000억 원 규모의 발주 물량을 중소기업 등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대차는 광고와 물류에 이어 향후 건설(현대엠코)과 시스템통합(현대오토에버) 분야도 내부 거래를 축소한다. 이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쟁 입찰 심사위원회(가칭)’를 주요 계열사 마다 설치해 대상 업체 선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이와 같은 행보가 그동안 계열사에서 수의계약으로 발주해 독점적으로 가져갔던 국내 사업 물량의 일부를 중소기업 등에 넘김으로써 일감 몰아주기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라는 분석이다.

작년 8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의 현대차 내부 거래현황에 따르면, 총수 일가 지분율이 100%인 이노션의 내부 거래 비율은 무려 47.7%였다. 현대글로비스(물류)와 현대엠코(건설), 현대오토에버(시스템통합)도 각각 45.2%, 56.5% 83.5%에 달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광고와 국내 물류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축적된 통합관리 효율성은 일부 영향을 받겠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사업기회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삼성도 지난해 1월부터 광고 등 4개 업종에 대해 경쟁 입찰을 확대하고 있다. 전자·생명·화재 등 3개사에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한데 이어 최근에는 SDI·전기·카드·증권 등 4개사에도 위원회를 추가로 마련했다.

SK그룹 역시 그룹 이미지 광고를 경쟁 입찰에 부쳤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소속의 제일기획이 광고 대행사로 선정됐다. 그동안 그룹 지주사인 SK(주) 이미지 광고는 SK마케팅앤컴퍼니(SK플래닛에 합병)가 맡아왔다. 하지만 이번 경쟁 입찰을 통해 처음으로 외부 업체가 맡게 됐다.

LG그룹도 지난해부터 시스템통합, 건설, 물류 등 3개 업종에 대해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경쟁 입찰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LG전자가 발주한 ‘디오스 김치톡톡’ 김치냉장고 광고는 그룹 내 광고 대행사인 HS애드가 아닌 ‘메이트 커뮤니케이션스’가 맡았다.

오너 일가가 비상장 자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도 내부 거래 시비를 피하는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3남인 조현상 부사장은 지난달 29일 렉서스의 판매사 더프리미엄 효성과 벤츠의 공식 딜러사인 더클래스효성의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도 지난 2월 롯데시네마의 매점 사업을 해왔던 유원실업 등과 사업계약을 해지했다. 유원실업은 롯데 총수 일가가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의 잇따른 일감몰아주기 움직임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파격적인 행보가 재계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다른 그룹 역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해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대기업의 일감 나누기 방침과 관련해 중소기업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췄다. 대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자체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나선 것은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깜짝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며 우려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 중소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경쟁 입찰의 경우, 중소기업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기업끼리 일감을 몰아주는 등 편법이 자행될 수 있다”며 “정부와 감독기관은 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soojina6027@ilyoseoul.co.kr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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