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리스트 공개…재계 노심초사
조세피난처 리스트 공개…재계 노심초사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4-23 09:08
  • 승인 2013.04.23 09:08
  • 호수 990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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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버진아일랜드 은닉 재산 ‘후폭풍’

[일요서울│박수진 기자]‘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재산을 은닉한 세계 자본가들의 명단이 공개되자 국내 기업들이 긴장한 눈치다.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으로 이곳에 은닉한 재산을 찾겠다며 전방위적 조사를 펼치고 있고, 박근혜 정부도 이번 사태를 그냥 바라만 보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TJN(영국시민단체조세정의네트워크)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70~2010년 한국에서 해외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세계 3위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추후에 공개되는 명단에 한국인이 포함될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혹시 모를 불똥(?)에 대해 몸을 움츠리려는 재계의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국 해외 조세피난처 이전 자산 세계 3위로 드러나
향후 공개 명단에 정·재계 인사 포함될 가능성 높아

세계 주요 조세피난처의 투명화 운동을 벌여온 국제탐사보도언론회협회(ICIJ)가 지난 4일 재산을 은닉한 주요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는 ICIJ가 버진아일랜드와 남태평양 쿡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12만 역외 회사들이 지난 30년간 세계 170여 개국 고객들과 주고받은 문서 250여만 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이들이 공개한 대부분의 인사는 전·현직 최고 권력자의 가족 또는 측근이거나 재벌 총수들이었다. 대표적인 인사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친한 친구이자 대선 당시 선거자금을 책임졌던 장 자크 오기에가 20여 년간 재산을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 상원의원의 남편도 80만 달러 이상을 버진아일랜드에서 관리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에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의 두 딸과 필리핀의 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맏딸 등이 이번 공개 명단에 포함됐다.  

버진아일랜드서 사업하는 기업들 ‘전전긍긍’

이들의 명단 공개에 버진아일랜드에 국내에서도 재산을 숨긴 한국인은 없는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버진아일랜드에는 내국인이 투자한 기업만 80여개에 이르고 과거 역외 탈세 조성과정에서 이곳을 이용한 탈세 사례도 수차례 적발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자녀에게 재산을 편법으로 물려주거나 외국인 투자자를 가장해 주식을 매입한 뒤 주가상승을 유도해 차액을 빼돌리는 등 각종 사례가 많았던 터라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게다가 국내 대기업의 주주와 관련된 회사 상당수도 이곳에 소재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추후 공개될 명단에 해당 기업들이 포함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일요서울]이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대기업들의 2012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SK, CJ, 현대상선 등의 기업들이 버진아일랜드에 주주나 계열사, 특수관계회사 등을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SK(주)의 경우 버진아일랜드에 ‘SKY Property Management     Limited'를 두고 있다. SK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7년 6월 20일에 설립됐다. 투자회사로 규정돼 있으며 8026억3900만 원의 자산총액을 가지고 있다.

CJ그룹의 CJ대한통운도 버진아일랜드에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1993년 3월 29일에 설립된 ‘Water Pipeline Works     Limited'라는 회사를 두고 있다. 이 회사의 주요사업은 건설업으로 69억3800만 원의 자산총액을 가지고 있다. CJ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씨제이씨지브이 역시 버진아일랜드에 2004년 6월에 설립된 ‘Envoy Media Partners     Limited’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요사업은 SPC이며 478억9300만 원의 자산총액을 가지고 있다. 

현대상선도 버진아일랜드에 ‘Market Vantage     Limited'라는 외국법인이 ‘특별관계자’로 규정돼 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Hutchison Ports Korea     Limited'다.

이와 관련해 이들 기업들은 모두 “조세피난처나 돈세탁과는 전혀 관계없다”며 “주주나 관련 회사들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SK 측은 “‘SKY Property Management     Limited'는 SK텔레콤의 자회사로 부동산 투자업을 하고 있다"며 “세금 탈루와는 전혀 관계없이 실제 운영 중인 회사"라고 밝혔다.

CJ 측은 “‘Water Pipeline Works     Limited' 회사는 대한통운 인수와 함께 온 회사이다. 해당 회사가 리비아 내전으로 인해 완공 증명서를 받지 못해 아직 처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Envoy Media Partners       Limited’ 역시 베트남 영화 채널을 인수할 당시 함께 온 회사일 뿐, 두 회사 모두 비즈니스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 측도 “회사 지분의 일정 규모 이상 취득하고 있어 감사보고서에 등재됐을 뿐 관련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조세전문가들은 “이들 대기업들이 단순 투자유치나 우호적인 비즈니스 관계형성 목적으로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의 특수법인들과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전혀 관련 없는 회사라고만은 할 수 없다”며 “조세당국은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세청은 정확한 사실 조사를 위해 확인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지난 5일 “재산 은닉자 명단을 입수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내국인 명단이 확인될 경우 이들의 재산 형성과정과 유출된 자금의 출처 등을 확인해 세금 탈루 사실이 드러날 경우 철저히 추징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최근 2년간 10억 원 초과 해외 금융계좌 신고를 받았지만 버진아일랜드 계좌신고는 단 한건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국세청은 기획재정부에 버진아일랜드 등 대표적 조세피난처 국가와의 조세협약, 정보교환협정 체결을 요청한 상태다.

soojina6027@ilyoseoul.co.kr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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