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벗어나길 두려워한다. 그래서 인생의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려는 순간 어떻게 해서든 기차를 궤도 위로 끌고 오기 위해 애를 쓴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처럼 보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달 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상영되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은 이런 이들의 속사정을 가감 없이 노래했다.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상영된 이 작품은 토니상 주요 3개 부문과 퓰리처 드라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더불어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뮤지컬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무대 역시 쇼잉(showing)을 능가하는 뮤지컬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11년 초연해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2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 이번 공연에는 초연 캐스트가 대부분 다시 참여했다. 박칼린, 남경주, 이정열, 한지상, 오소연 등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의 재회로 공연 전부터 세간의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음악감독으로도 유명한 박칼린은 이 작품을 두고 “2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배우를 꿈꾸게 한 작품”이라고 말했고, 뮤지컬계의 대부 남경주 역시 “참으로 오랜만에 뜨거워진 나를 느꼈다”고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뭉친 배우들이 함께하는 만큼 그들의 호흡과 노련미, 앙상블이 한층 깊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 관객들 마음 단박에 사로잡은 까닭
이 공연은 미국 외곽의 어느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곪아터지기 직전의 위태로움이 지금 우리네 모습과 꼭 닮아있어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17년 전 장폐색으로 아들 게이브를 잃은 댄과 다이애나 부부가 있다. 핏덩이를 잃은 슬픔으로 다이애나는 16년째 조울증과 망상증을 앓고 있다. 망상 속에서 그녀는 아들 게이브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균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이애나는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피폐해져가는 몸과 마음이다. 남편 댄은 다이애나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그 역시 지쳐만 간다.
그런 부모사이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딸 나탈리는 가족 내에서 소외감과 절망감을 느낀다. 대학생이 되면 집을 떠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만을 붙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등학생 나탈리. 그녀는 점점 엇나가고 결국엔 마약에까지 손댄다.
그러는 사이 다이애나는 약물치료를 넘어 최면요법, 전기요법까지 받지만 끝내 병을 고치지 못한다. 가족의 불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든든한 가장인 아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 결국 무능을 드러낸다. 죽은 아들에 집착한 엄마는 살아있는 딸을 돌보지 않는 실수를 범한다. 엄마의 상처를 끌어안지 못한 철부지 딸은 끊임없이 엄마를 미워한다.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생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가족이었다. 관객들이 이 공연에 공감하고 눈물 흘린 건 행복하다 믿고 싶지만 진실은 그렇지 못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댄, 다이애나, 나탈리 그리고 게이브까지. 이들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들은 서로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함께 버티고 싸우다 보면 희망이 찾아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도 온 가족이 3층 무대 전면을 활용해 화합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끝 모를 어둠속에서 밝은 빛을 발견한 환희의 순간처럼. 보는 이들에게 전율을 선사한다.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
이야기만 놓고 보면 상당히 우울한 분위기의 극이다. 하지만 뮤지컬 특유의 음악과 춤, 배우들의 에너지가 어울려 우울하지 않은 공연을 만들어낸다. 중간 중간 대사들로 소소한 잔재미도 유발한다. 록을 기반으로 재즈, 팝, 컨트리,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어울러져 캐릭터의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관객의 긴장감도 비트에 따라 고조된다.
여기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수한 무대와 조명은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3층 철제 구조물인 무대는 여러 개로 나눠진 공간을 표현한다. 이로써 인물들의 단절된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연출가는 각 캐릭터의 넘버(음악)를 중복시키고 각자의 이야기를 교차해 다층적 구조의 극을 연출했다. 음악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들은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심리까지 이해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보여주는 반전은 평범함을 지키고자 했던 주인공의 분투에 안타까움 마저 느끼게 한다.
"아픔은 삶의 일부. 느끼기 위한 대가. 사랑은 고통."
쓰라림 없는 밝은 삶을 꿈꾸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는 다이애나가 내뱉는 대사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평범함 속에 각자의 아픔을 가려뒀을 뿐이다. 숨겨진 가족의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낸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통해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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