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號 산은 출범부터 ‘휘청’
홍기택號 산은 출범부터 ‘휘청’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3-04-15 09:07
  • 승인 2013.04.15 09:07
  • 호수 989
  • 2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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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낙하산’이 더 당당하다”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산업은행장도 겸직하게 되면서 산은을 향한 눈총을 키우고 있다. 홍 회장은 15일 열린 산은 임시주주총회에서 행장으로 임명돼 회장과 행장직을 동시에 수행하게 됐다. 앞서 홍 회장은 회장직에 내정되면서부터 ‘서강대-미래연-인수위’를 모두 충족하는 전형적인 낙하산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금융권 ‘新 4대 천왕’이 자리한 첫 번째 금융사인 산은의 뼈아픈 인사 논란을 짚어봤다.

<사진=뉴시스>

박 정부가 금융권에 날린 낙하산 1호 입성
한치 앞 모르는 산은… 수장까지 논란 일색

홍 회장의 취임을 둘러싸고 산은지주 출범 이후 최초로 회장과 행장을 각각의 인사가 맡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홍 회장의 자격 논란이 불거지면서 금융위원회가 회장 임명제청 시 행장 겸임 여부는 결정짓지 않았던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홍 회장은 회장직만 수행하고 행장직엔 실무에 능한 금융통을 앉히는 것이냐”며 “그렇다면 행장직은 내부 출신이냐 또 다른 낙하산이냐”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이에 당황한 금융당국이 “홍 회장이 행장직을 겸임할 것”이라고 뒤늦게 못박아 더 이상의 잡음을 틀어막은 것이다.


헌 낙하산 강만수 가고
새 낙하산 홍기택 왔다

홍 회장은 이미 회장직에 내정될 때부터 대대적인 자질 논란에 휩싸여왔다. 홍 회장이 내정된 지난 4일 산은 안팎에서는 “낙하산 범주에도 없던 새로운 낙하산이 내려왔다”며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은 내정 직후 성명을 통해 “새 정부 들어 산은 민영화가 사실상 중단되고 정책금융기관 재편까지 앞두고 있다”면서 “조직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시기에 금융에 대한 경험이나 대정부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사가 내정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 정권 때도 측근을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소위 4대 천왕을 만들어낸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데 대한민국의 대표은행인 산은에 또다시 측근을 내려보낸 이번 인사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호소했다.

산은 노조는 지난 5일에도 결의대회를 열고 “조직 운영에 대한 경험도 일천한 밀실인사가 은행의 새로운 수장으로 내정됐다”고 성토하며 홍 회장이 산은에 입성하는 8일 아침에도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홍 회장은 노조와 대화를 나눈 다음날인 9일 취임식을 올려 노사 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추측을 낳게 했다.


서강대-미래연-인수위
최적의 朴 인사 조건

외부에서도 금융권 ‘신 4대 천왕’이 조직될 가능성에 주목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5일 논평을 통해 “대통령 사조직이 전면에 등장했다”면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박근혜 정부 정책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 행사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2010년 결성돼 지난해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을 개발했으며 당선 후에는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통하는 조직이다.

또한 홍 회장이 그동안 공동저서에서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고 언론 기고에서 산은 민영화에 찬성한 사실도 논란을 가중시켰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홍 회장은 금산분리를 ‘금융산업 발전의 족쇄’라고 정면비판한 인물”이라면서 “이번 내정은 전문성 부족만이 아니라 박 대통령과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강조해 온 국정철학의 공유조차 의심스러운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홍 회장이 언급했던 금산분리 완화나 산은 민영화 추진은 새 정부의 철학이나 기조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결국 홍 회장은 자신의 과거 발언이나 글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취임 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금산분리가 완전히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다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세계 경제 여건이 바뀌어 민영화에도 회의를 갖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인수위 출신으로서 누구보다도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대내외에서는 “오랫동안 교수를 해온 학자가 자신의 견해를 어찌 한순간에 버릴 수 있느냐”면서 “‘서강대-미래연-인수위’라는 조건을 모두 갖춘 낙하산이 산은에 입성하기 위해 말바꾸기를 한 것”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홍 회장의 급작스러운 해명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음을 입증한 모양새다.


新 4대 천왕 자리한
산은의 앞날은

재미있는 점은 홍 회장 스스로도 자신이 낙하산임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 회장은 취임 전 “낙하산은 맞지만 전문성 있는 낙하산”이라며 “실패한 낙하산보다는 성공한 낙하산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박근혜 정부가 금융권에 처음으로 날려보낸 낙하산 1호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현재 산은의 상황이 이만저만한 낙하산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국면에 처했다는 것이다. 산은은 이명박 정부가 내걸었던 국책은행 민영화를 위해 구 4대 천왕인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을 수장으로 맞이했다. 민영화에 수반되는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한편 잠시나마 HSBC 인수를 검토하고 다이렉트뱅킹을 론칭하는 등 개인금융을 확대하는 모험도 감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책은행 민영화 불가를 외치는 박근혜 정부가 강 전 회장을 내보내고 신 4대 천왕인 홍 회장을 앉히면서 산은의 형편이 크게 달라졌다. 민영화와 IPO 준비는 전면중단에 야심찼던 다이렉트뱅킹도 축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갈라졌던 정책금융공사와의 통폐합까지 거론되는 등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 4대 천왕’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하더라도 금융권 경험이 거의 없는 학자 출신의 이론가는 정말이지 뜻밖”이라며 “현재 산은의 민영화와 IPO가 올스톱된 상황에서 수장의 능력으로 정책금융기관 통폐합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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