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그 열네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인본주의 경영과 이윤추구경영 아래 ‘품질 우위 확보’, ‘기술의 자립’, '경쟁력 확보‘ 등 실천을 통한 사회 공헌에 이바지하는 ‘효성’이다.
효성그룹의 창업자인 조홍제 회장은 스스로 만우(晩愚)라 일컬었다. 만우란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이다. 겉보기에 조 회장의 행보는 이 뜻처럼 늦다. 나이 서른에야 대학을 졸업하고 마흔이 넘어 사업에 입문했으며, 쉰여섯이 돼서야 자신의 독자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은 늦었지만 조 회장이 이룩한 성과는 실로 대단했다.
남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항상 큰 성과를 낳았던 그의 인생 행보는 유년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1906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의 백이산 자락에서 태어난 조 회장은 강직한 선비의 가풍 속에서 성장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열아홉이 돼서야 중앙고보에 입학해 신학문을 접했다. 재학 중이던 1926년 6월에는 순종황제의 국장일을 기해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동해 모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호세이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 뒤 고향 친구 몇 명과 뜻을 모아 동방명성을 뜻하는 ‘동성사’라는 이름의 모임을 조직했다. 그들은 식민지의 어둠을 밝히는 조국의 샛별이 되고자 했다. 후일 그가 일군 기업의 이름을 ‘효성’이라 짓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조 회장은 기업을 육성해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하며 기업가로서 정도를 걷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조 회장은 1945년 조국 광복과 함께 대학 졸업 당시의 포부대로 새로운 기업을 일으키기 위해 서울 명륜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의욕적으로 업종을 모색했다. 그 무렵 조 회장은 인근 동네로 이사를 왔다며 찾아온 고향 이웃을 만나게 됐다. 그가 바로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이었다. 조 회장은 삼성물산의 자본금을 공동출자하는 형태로 이병철과 동업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이 무역업이란 한 배를 타게 된 것이다.
삼성물산에서 조 회장은 100종류 이상의 수출입 품목에 대해 시세, 산지, 이익률, 선편 등을 환하게 알고 있는 최신 무역백과사전으로 통했다. 최신 지식을 쌓아가며, 발로 뛰었던 그의 활약에 힘입어 삼성물산은 급성장 했다.
무역업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조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입이 아닌 제조업을 기반으로 수입대체산업을 시작하기 위해 사업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가 제일제당 설립을 통해 제조업에 뛰어든 것은 이와 같은 이유였다. 제일제당의 건설은 우리 손으로 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주성과 자신감을 확보한 계기가 됐다.
제당업에서 대성공을 거둔 조 회장은 또 하나의 수입대체산업으로서 모직공장을 세우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모직 설비를 조사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돌며 모직공장을 시찰했다. 장장 2년에 걸쳐 4개국을 종횡무진하며 얻은 지식과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독일 스핀바우사의 최고급 직물 기계를 도입했다. 철저한 준비와 공부를 토대로 사업을 시작하자 사업은 거침없는 성공궤도에 오르게 됐다.
새로운 성공신화를 만들다
조 회장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무에서 유로 창조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삼성그룹은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제조업에서의 잇단 성공을 바탕으로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 뒤에는 조 회장의 땀과 열정이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조 회장은 1962년 삼성과 동업을 청산한 뒤,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임직원 15명의 조촐한 출발이었다. 그가 첫 사업으로 선택한 것은 제분업이었다. 당시 도산상태였던 조선제분을 인수해 공장을 보수하고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때마침 정부가 분식장려 정책을 펼치면서 제분업은 큰 호황을 맞게 됐다. 제분에서 나온 이익금은 한 해만에 효성물산 자본금 열 배로 늘어났다.
주위에서는 조 회장이 운이 좋다고 했지만 사업의 성공요인은 철저한 사전조사와 사업을 시작하는 치밀함에 있었다. 이후 한국타이어 경영에 참여해 은행 관리의 부실기업을 3년 만에 정상화시켰다. 또 대전피혁을 인수, 국내 최초로 피혁제품 수출에 성공함으로써 적자운영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이후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을 물색한 끝에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하게 된다. 오늘날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효성의 섬유 사업 역사는 이때부터 관련 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하며 일관생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독자적인 기술개발 능력과 경쟁력으로 우리나라 화섬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1975년에는 산업 발전의 대동맥인 전력 송배전망 선진화를 위해 한영공업을 인수해 효성중공업으로 개편했다. 중화학공업으로의 진출로 2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다.
효성은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타이어코드와 스판텍스를 비롯해 중전기기, 모터, 펌프, ATM, 페트병 등 다양한 제품들에서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효성은 서울 본사를 중심으로 울산, 창원, 구미 등 전국에 14개의 공장을 두고 있다. 중국, 미국, 유럽, 남미, 동남아 등 해외에도 현지 공장을 두고 있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 세계 40여 개의 주요 거점지역에 현지 법인 및 무역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글로벌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도 책임경영체제를 바탕으로 7개의 퍼포먼스그룹과 그 산하에 23개의 퍼포먼스유니트를 구성했다. 섬유, 산업자재, 화학, 중공업, 건설, 무역, 정보통신 등 7개 퍼포먼스그룹은 각각의 분양서 성과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40여 개국 글로벌 경영 체제
스판덱스, 폴리에스터, 나일론 원사를 생산하고 있는 섬유 퍼포먼스그룹은 글로벌 브랜드 ‘크레오라’를 필두로 첨단 기능성 섬유와 친환경 섬유 등 폭넓은 제품군을 통해 고객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특히 효성의 타이어코드는 시장점유율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다. 전 세계 승용차의 3분의 1에 타이어코드를 공급하고 있다. 산업자재 퍼포먼스룹은 뛰어난 품질의 타이어 보강재는 물론 다양한 산업용 원사와 인테리어 제품으로 글로벌시장에서 고객들로부터 호평 받고 있다.
최첨단 공법과 안정적인 생산 프로세스를 자랑하는 화학 퍼포먼스그룹은 PP, TPA 등 다양한 화학 원료와 산업용 필름, 페트병, 첨단 특수가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산업에너지의 핵심인 중전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중공업 퍼포먼스그룹은 송배전 설비와 전동기, 펌프 등 산업기계 분야에서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새로운 기술 분야에도 적극 진출, 신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또한 건설 부문에서도 재개발, 재건축사업, 리모델링, 토목 환경 등 다양한 건설사업 분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환경 분야에서도 수처리, 폐기물처리, 대기오염 방지시설 등에서 환경 친화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업계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무역 부문도 40여 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철강, 화학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금융자동화기기 세계 4위의 노틸러스효성과 국내 유수의 500여 개 업체에 스토리지시스템과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효성 인포메이션시스템 등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다.
효성의 독특한 책임경영시스템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효성을 글로벌 경기침체기인 2008년도와 2009년도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효성의 이러한 사업성과는 내수 위주의 영업에서 시장다면화를 통해 글로벌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경쟁력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해 온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효성의 중공업사업 분야는 글로벌 경쟁력과 신재생 에너지사업 개발을 통해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함으로써 다변화된 수익구조를 갖추게 됐다. 내수 사업 중심 구조에서 탈피,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북미시장을 공략해 노후화된 미 전력시장의 교체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쌓아왔다. 2009년부터는 글로벌 시장의 범위를 확대, 중국 및 남미, 개발도상국인 인도 전력시장 등에 진출을 본격화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효성은 신성장동력 개발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고강도 차별화 섬유인 아라미드를 상업화해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기업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TAC필름사업도 국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진출, 활발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풍력발전시스템과 CNG충전사업, 친환경 원사 개발 등 친환경사업구조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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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수진 기자>
<출처=경영의 神에게 배우는 1등 기업의 비밀│매일경제신문사>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