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 직행 부담감에도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 돋보여
롱런 위한 치밀한 준비와 다르빗슈 같은 빠른 적응력이 과제
지난 3일(한국시간) 괴물투수 류현진이 본격적인 ‘메이저리거’로 탈바꿈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류현진은 타선의 부진으로 패전투수에 이름을 올렸지만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과 단 1개의 4사구를 내주지 않은 컨트롤, 땅볼유도 능력 등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류현진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개막 2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6.1이닝 동안 안타를 10개 맞으면서도 3실점(1자책) 5탈삼진을 기록했다. 평균 자책점 1.42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준수하게 첫 선발 등판 투구를 마쳤다.
물론 팀이 0-3으로 완패하며 패전투수가 된 점이나 10안타를 내주며 피안타율이 3할8푼5리로 대단히 높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한국인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경기 내용이었다. 원조 메이저리거 1호이자 다저스 대선배인 박찬호의 경우 ML 공식 데뷔전이었던 1994년 4월 9일 애틀랜타전에서 구원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에 그친 바 있다.
또 1998년 7월 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으로 데뷔한 조진호는 6이닝 6피안타(1홈런) 1볼넷 1실점을 기록했고 봉중근은 2002년 4월 24일 애리조나전 6이닝 6피안타 2볼넷 4탈삼진 5실점에 그치며 둘다 패전투수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류현진은 조진호에 이어 데뷔전에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두 번째 한국인 선발투수이자 가장 많은 이닝(6.1이닝)을 소화한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류현진의 강심장ㆍ경기운영능력 데뷔전 ‘큰 성과’
류현진의 가능성은 곳곳에서 빛이 났다. 우선 역대 한국인 투수들과 다르게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면서 미국 무대 경험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여기에 26살이 감당하기엔 다소 벅찬 압박감과 긴장감도 그의 데뷔전의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한국프로무대에서 7년간 최정상급 투수로 군림하며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낯선 ML 데뷔전에서도 위축되지 않은 노련한 위기관리능력을 선보였다.
이날 류현진은 불안정한 제구력과 속구의 위력 역시 다소 밋밋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당황하지 않고 볼넷이 단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5개의 삼진과 3개의 병살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관중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이날 류현진은 다소 많은 안타수에도 불구하고 연속 안타에 주눅 들지 않고 경기를 펼치며 괴물투수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류현진이 맞은 10안타는 대부분이 2·3구 이내의 빠른 승부에서 허용한 안타였다. 이는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기 위해 공격적인 승부를 벌인 결과였다. 모두 단타여서 대량실점도 없었고 볼넷이 없으니 투구수 역시 줄었다. 이날 류현진은 6.1이닝 동안 80개의 투구수만을 기록했고 스트라이크가 55개로 69%에 이르면서 감을 찾은 듯 보였다.
이날 경기에서 다소 부족했던 몸쪽 승부와 제구력만 좀 더 가다듬는다면 앞으로 더 좋은 경기가 기대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히려 류현진의 가장 아쉬운 장면은 마운드보다는 타석에서 나왔다. 내셔널리그는 투수도 타석에 서야 한다. 이에 6회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류현진은 평범한 3루 땅볼을 치고 1루로 향하는 과정에서 조깅하듯 안이한 주루플레이를 펼치면서 홈팬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다.
류현진 역시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지만 고교야구 이후 한국무대에서는 타석에 서지 않은 투수로만 활약해온 그로서는 다소 버거운 상황이다. 이 역시도 그가 성공적인 ML 안착을 위해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로 떠올랐다.
다르빗슈는 극복해야 할 숙명
전세계 찬사를 받으며 피겨여왕으로 등극한 김연아 선수에게 항상 아사다 마오의 꼬리표가 따라다니듯 데뷔전을 치른 류현진에게는 다르빗슈 유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투수라는 점 때문에 비교선상에 오르고 있다.
현재 ML을 호령하고 있는 대표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는 데뷔전인 지난해 4월 10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5.2이닝간 8안타 4볼넷 5실점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그는 데뷔 첫해 16승 9패 자책점 3.90 탈삼진 221개의 뛰어난 성적으로 마감하며 신인왕과 사이영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마침 이날 시즌 첫 선발등판을 치른 다르빗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경기서 8.2이닝 동안 1피안타 1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9회 2사까지 퍼펙트 게임을 펼쳤다.
데뷔전만 놓고 보자면 류현진이 다르빗슈보다 더 낳았지만 다르빗슈가 2년 먼저 시작해 이미 ML 적응을 끝마친 선수라는 점은 그가 뛰어넘어야 하는 경쟁자이자 롤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美 폭스스포츠의 존 폴 모로시는 지난 4일 ‘류현진이 기념할 만한, 전망 밝은 데뷔전을 치렀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르빗슈는 지난 1년 동안 긴장감을 모두 극복했다”면서 “류현진은 이날 다르빗슈가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가며 호투한 점에서 용기를 얻어야한다. 둘은 분명 다른 투수지만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적응해야 한다는 점은 똑같다”고 말했다.
매팅리 감독, 기대가 커…선발 생존 확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그는 “시범경기처럼 날카롭게 던지진 못했다”면서도 “스프링캠프때와 별 차이는 없었다. 제구도 좋았고 체인지업도 뛰어났다. 볼카운트가 몰려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 “구속을 바꾸는 완급 조절 능력이 뛰어났다”며 “땅볼 유도도 잘해서 적은 투구 수로 경기를 소화했다”고 높은 점수를 매겼다.
매팅리 감독은 류현진에 대해 “경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계획을 세우고 비디오를 보며 상대 타자들을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앞으로도 이런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할 것”이라며 메이저리거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데뷔전을 통해서 메이저리거 신인으로 첫발을 내딛은 류현진은 분명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특히 높은 몸값과 기대를 받은 선수로서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다는 교훈을 얻은 점에서 이번 데뷔전은 승리만 얻지 못했을 뿐 값진 경기였다.
이처럼 호된 신고식을 치러낸 만큼 이제는 실력으로 팬들의 우려를 떨쳐내는 류현진 만의 가능성을 증명하길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