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자증권 독자신용평가 공개 파장
우리투자증권 독자신용평가 공개 파장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3-04-08 11:05
  • 승인 2013.04.08 11:05
  • 호수 988
  • 3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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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신용평가행위, 시장혼란 초래 불 보듯”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신이 낳은 사태?
일각에선 “시장의 자구책” 옹호하기도

우리투자증권의 독자신용등급평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각종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신용평가사가 아닌 증권사에서 독자신용등급평가를 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를 공식석상에서 공개했기 때문에 더욱 파문이 일었다. 이미 신용등급평가업계가 “시장 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라며 비판에 나섰고, 신용등급이 공개된 기업 중 일부는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신용평가 시장의 신뢰도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게 해주는 사건”이라며 우리투자증권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렇게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우리투자증권은 “자료 유출은 어디까지나 실수였다”는 입장만 밝힌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달 27일 금융투자협회가 주최한 채권포럼을 통해 자체적으로 산출한 독자신용등급을 공개했다. 독자신용등급이란 모기업이나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제외한 기업의 사업·재무상태만 평가하는 신용등급으로 최종신용등급에 이르는 일종의 중간과정이다. 독자신용등급과 최종신용등급의 차이가 많이 날수록 계열 지원 효과가 과대평가돼 있으며, 향후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날 발표를 담당했던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크레딧팀장은 “신용평가사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과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독자신용등급 공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술적인 성격이 강한 포럼에서의 발표이긴 했지만 국내 증권사는 물론 주요 글로벌 증권사들도 자체적으로 기업의 신용등급을 평가해 발표한 사례는 전무하기 때문에 독자신용등급에 대한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찬반 갈린 신용평가시장

특히 이날 문제가 됐던 자료의 내용엔 대기업 계열 건설사 몇 군데가 포함돼 큰 반향이 일었다. 또 이중 일부 기업은 독자신용등급과 최종신용등급이 많은 차이를 보여 공개적 발표에 더욱 부담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발표 당시 자료에는 정확한 기업명과 등급이 명시돼 있었으나 이후 공개된 자료에는 논란이 됐던 내용들이 삭제돼 있었다.

앞서 독자신용등급 공개 제도는 금융당국의 제안에도 자금 조달에 타격 받을 것을 우려한 기업들의 반대로 가로막힌 바 있다. 이번 역시 기업들 사이에선 똑같은 반응이 새어나오고 있어 문제가 될 전망이다. 더구나 신용평가업계에서도 반발이 이어져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점은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일단 우리투자증권으로부터 뜬금없는 신용등급 하락을 맞게 된 기업들은 “별 거 아닌 일을 왜 키우는지 모르겠다”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안 그래도 실적 악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작은 사건도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대한민국에 증권사가 한둘이 아닌데 각자 신용등급을 공개하겠다고 나서면 투자자들이 누굴 믿어 줄 것인가”라며 “이미 신용평가사의 기준이 자리잡았는데 증권사마다 독자신용등급을 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신용평가업계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국내 신용정보법상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은 신용평가사만이 신용등급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의 독자신용등급평가가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독자신용등급은 최종등급으로 가는 과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독자신용등급만 공개하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안타깝다”며 “만약 공식적인 독자신용등급 공개가 이뤄지면 이는 분명한 유사신용평가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시장에서 격렬한 반발이 나오는 이유는 만약 신용평가사가 증권사의 독자신용등급을 인정한다면 스스로 “신용평가사들이 신뢰도가 낮은 신용등급을 제공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이는 꼴이 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우리투자증권의 독자신용등급에 대해 “그간 신용평가사의 독자신용등급 공개를 기다리다 지친 시장의 자구책이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이 같은 우리투자증권의 자체평가로 인해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독자신용등급 공개 제도’가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는 여론 역시 거세질 전망이다.

실제 그간 국내 신용평가사 신용등급에 대해서는 ‘신용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업이 회사채를 평가해 줄 신용평가사를 선택하는 현실이 이 같은 현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생각이었다. 또 이를 뒷받침하듯 현재 전체 회사채에서 A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육박하는 수준이었고 A등급 비중은 2000년 27%에서 2005년 51%, 2011년 77%로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채시장에서 비우량 기업 기피 현상은 날로 심해져 가고 있었다. 이미 시장에서는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회사채 가격이 결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 같은 비판을 낳게 된 것이다.

회사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한 투자자는 “신용등급을 아예 안 본지도 오래됐다”며 “이번 우리투자증권의 독자기업평가 공개로 인해 정확한 신용등급 공개의 필요성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독자신용등급의 필요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라며 “중간 과정이 투명해지면 오히려 시장도 좋아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신용평가사들이 독자신용등급 공개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우리투자 ‘전전긍긍’

우리투자증권의 발표자료 사본

다만 독자신용등급평가 공개와 관련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우리 역시 내부적으로 독자기업평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공개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우리투자증권 소식을 듣고 우리도 조금 의아하긴 했다”고 귀띔했다.

한편 파장을 일으킨 우리투자증권은 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 확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채권포럼 발표를 위해 준비한 자료였는데 예상보다 크게 확대됐다”며 “채권팀의 학술적 논리에 대한 작은 예였을 뿐”이라고 해명, 한발 물러선 상태다. 기업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반발에 대해선 “앞으로 절대 외부로 유출될 일은 없다”며 “공식절차가 아니었던 만큼 업계에서도 이해해줄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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